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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성철의 퍼스펙티브

‘자유’ 외쳤지만 ‘자유 넘치는 세상’의 꿈은 주지 못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윤석열 후보 출마 선언문과 대선 주자들에게 던지는 교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부패로 가득하고 무능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권 교체 여론에 호소했을뿐 미래비전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부패로 가득하고 무능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권 교체 여론에 호소했을뿐 미래비전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정권이 본의 아니게 배출해 버린 ‘정치 신데렐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후보)의 지지도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가 정치의 본질을 아직 꿰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치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꿈을 파는’ 직업이다.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 설렘 때문에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는 꿈을 파는 직업…국민에게 꿈 제시해 설레게 해야 #트럼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마크롱 ‘위대한 행진’ 제시 #꿈을 주려면 ‘~안하겠다’ 대신 ‘하겠다’는 약속 뒤따라야 #윤석열 ‘국민이 신나는 나라 만들겠다’는 꿈을 던졌어야

지난달 있었던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을 듣고 나는 많이 놀라고 실망했다. 이유는 그가 출마 선언을 하면서 ‘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그 연설에 정치의 본질이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그날 그 연설에서 무엇을 ‘안 하겠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러나 ‘하겠다’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 진절머리 나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내로남불을 자신은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국민들에게 후련함과 위로를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꿈은 아니다. 그런 ‘부작위’의 약속은 ‘꿈’이 되지는 못한다. ‘꿈’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작위’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즉,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윤 후보는 그날 문 정권을 통렬히 비판하는 것을 넘어 ‘나는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었어야 했다. 거창하게 ‘부작위’만을 외치고는 단상을 내려오는 윤 후보에게서 국민이 감동을 얻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나는 지지도가 최근 부진한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선 주자의 ‘꿈’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70이 넘어 정치에 입문하여 단숨에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행보는 큰 참고가 된다. 그는 ‘꿈’을 제대로 활용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어떤 ‘꿈’을 제시했던가? 바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꿈이었다. 그러면서 경제·외교·복지 등 자신의 모든 공약들을 이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 포장하여 제시했다. 시간이 가면서 그 ‘꿈’과 그 정책들 간의 연관성과 일관성을 감지하게 된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의 그 ‘꿈’을 정말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이 바로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핵심 요인이었다.

그런 대통령은 또 있다. 바로 프랑스의 마크롱이다. 정치 신인인 39살의 젊은이가 첫번째 출마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버렸다. 그가 내건 꿈은 ‘위대한 행진’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풀었다. “이 ‘위대한 행진’이란 말은 내가 프랑스를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가 우리 국민에게 어떤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어떤가? 심금을 울리지 않는가?

윤 후보가 출마 연설에서 몇 번 반복해서 외친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자유’라는 단어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그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허하게 몇 번 외치고 단상을 내려왔을 뿐이었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에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이 나라가 민주주의의 기본 틀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허하게 그 단어를 3~4번 외치기만 하고 단상을 내려왔으니 그것이 ‘꿈’이 될 수 없었고 자연히 감동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날 우렁차게 던졌던 그 ‘자유’라는 외침은 보기에 따라 대단한 의미를 가질수도 있다. 그가 ‘자유’라는 화두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게 있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시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 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어야 했다. 예를 들어 ‘자유가 넘치는 세상’을 자신의 ‘꿈’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자신이 문재인 정권에 빼앗긴 ‘자유’를 되찾아옴은 물론 훨씬 더 많이 키울 것임을 밝히고, 그 자유를 되찾아온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를 실감나게 그려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자고로 ‘자유’를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와 ‘정부’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국민이 향유하는 ‘자유’의 양은 궁극적으로 그 나라 정부가 ‘설치는 양’에 반비례한다. ‘정부’가 설치는 만큼 국민이 누리는 ‘자유’는 필연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가 절제하고 자제하면 국민의 ‘자유’는 그만큼 커진다. 이것을 경제학자들은 흔히 ‘시장’의 역할이 커진다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권 하에서는 ‘정부’가 엄청나게 ‘설쳤다’. 정부가 나서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며 온갖 것을 다 건드렸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이 누리는 자유의 양은 급격히 줄어들어 버렸다. 이 현상은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무분별한 진보정권이 범하는 전형적인 폐해다.

대부분 진보 정부는 ‘평등’을 이루기 위해 설친다. 물론 그것을 통해 약자의 복지가 신장되는 효과는 일정 부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거대한 대가가 있다. 국민이 누리는 ‘자유의 양’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사회가 생산하는 에너지와 활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경제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분야가 침체된다. 공산주의의 집단적 몰락은 궁극적으로 이 침체 때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의 가장 큰 피해자는 궁극적으로 사회의 ‘약자’ 들이라는 점이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대표되는 그 ‘설치는 정부’의 폐해와 유사한 증상들이 사회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윤 후보가 출마하면서 자신의 꿈을 다음과 같이 던졌더라면 어땠을까? “이 정권은 ‘국민’ 대신 ‘정부’가 심하게 설치는 정권입니다. 한 마디로, 너무나 많은 국민들이 너무나 많은 자유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 결과 정부는 신이 났지만 국민은 다 기가 빠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 나라를 반드시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설치는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그를 통해 ‘국민이 신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국민이 신나는 나라’ 이것은 하나의 ‘꿈’으로 어땠을까? 이런 꿈이 없이 하는 지역 방문은 자칫 도리어 점수를 깎아먹는다.

윤 후보가 이 시대의 화두로 ‘자유’를 잡은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공부가 더 필요하다. 얼마 전의 ‘주 120시간 근로’ 논란도 사실 ‘자유의 논리’로 쉽게 풀 수도 있었다. 그가 만일 “자유가 넘치는 나라에서는 국민은 자기가 원하면 120시간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바로 ‘국민이 신나는 나라다’”라고 했다면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지금 이 나라는 두 가지 거대한 질곡에서 신음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이 ‘~파’와 ‘비(非)~파’로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정권이 안면 몰수하고 한 정파만을 챙길 때 항상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둘째, 진보 정권이 채워놓은 온갖 종류의 사슬들로 국민의 삶 곳곳이 쉴 새 없이 삐걱거리며 마찰과 고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2가지 문제를 다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보수 정당이 먼저 ‘보수의 영혼’을 되찾아야 한다. 얼마 전 이 보수당의 중진이 이 당을 ‘좀비 정당’이라고 낙인 찍으며 불출마 선언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보수의 영혼’은 ‘자유’다. 아무도 이 ‘자유’를 외치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좀비’다. 그런 당이 ‘~파’로 똘똘 뭉친 이 진보를 이겨낼 수 있을까? 윤 후보가 미약하나마 그 ‘자유’를 외침으로써 시동은 걸었다.

보수당은 그것을 받아 더 크게 더 넓게 외쳐야 한다. 이번 대선은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는 전쟁이기 때문이다.모든 보수파 대권 후보들에게 충심으로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먼저 ‘자유’를 깊이 고민하라. 그리고 그에 대해 해답과 확신을 얻고 국민에게 꿈을 던져라. 그러면서 서로 뭉치며 경쟁하라. 또 5년간의 진보 세상, 자유를 빼앗기는 세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