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취약계층 몰아붙이는 폭염…주거환경 개선 등 근본 대책 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폭염의 기세가 대단하다. 최근 보름 동안 서울의 최고기온 평균은 33.6도로 평년보다 5도나 높다. ‘최악의 더위’를 기록했던 2018년과 같은 수준이다.

열섬현상, 5도까지 기온 끌어올려 #2018년 초과 사망자 929명 추정 #미세먼지·폭염 고통은 공동체 위기 #끊임없는 기후변화 대응 강화해야

2018년 여름 남동쪽에 들어온 북태평양 고기압과 서쪽에서 확장한 티베트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 동시에 위치하면서 상층부터 하층까지 키가 큰 고기압이 자리 잡았다. 고기압에 의해 하강 기류가 발달하고, 공기가 압축되면서 기온이 상승하는 이른바 단열압축-기온상승 현상으로 폭염은 강력해지고 오랫동안 유지됐다.

이런 열돔(heat dome) 현상이 올해도 나타났다. 티베트 고기압이나 북태평양 고기압이 물러나면 좋겠지만, 8월까지 이어진다면 올여름도 2018년 같은 지독한 폭염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폭염으로 아지랑이가 이글거리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 폭염일수가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폭염으로 아지랑이가 이글거리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 폭염일수가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합뉴스]

지구 온난화가 부른 폭염은 도시 열섬 효과로 증폭되면서 훨씬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열섬 현상은 에너지 소비가 많은 도심 지역이 외곽 지역보다 기온이 높은 것을 말하는데, 여름철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포장된 도로나 주차장·건물은 낮 동안 열을 흡수하고 그 열을 주변 대기로 방출한다. 미국 기후변화 연구단체인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에 따르면, 열섬 효과는 도시의 기온을 최대 5도까지 끌어올린다.

기상청이 얼마 전 발표한 새로운 평년값(1991~2020년 평균값)을 보면,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9도로 훨씬 남쪽인 전남 보성이나 경남 함양보다 높다. 서울의 7~8월 두 달의 평균기온 25.7도는 전남 해남이나 경남 진주·산청보다 높다. 열섬 효과 탓이다.

서울지역 일 최고 기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울지역 일 최고 기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도시 열섬 효과의 강도는 녹지 비율이나 인구밀도, 알베도(albedo, 물체 표면의 태양광 반사 능력), 건물 높이, 도로의 폭, 도시 구조의 불규칙성 등에 의해 좌우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정휘철 연구위원 등은 지난해 ‘기후변화 연구’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부산 동래·수영구, 서울 성동·영등포·양천구를 폭염 위험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았다. 인구밀도가 높고 녹지의 면적 비율이 작은 곳이다.

같은 도시에서도 쪽방촌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주민은 더 심한 폭염을 겪는다. 지난 15일 자 ‘네이처(Nature)’ 기사에 따르면 미국 108개 도시에서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레드라인’ 지역은 평균적으로 레드라인 바깥보다 여름철 기온이 평균 2.6도 높았다. 레드라인은 1933년 미 의회에서 만든 연방 대출 승인 프로그램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출 감독 회사는 239개 도시의 흑인 거주 지역에 대해 대출 위험이 가장 크다는 D등급을 매기고, 도시 지도에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투자가 제한된 레드라인 지역은 녹지 공간이 적은 경향을 보인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김보은 선임연구원 등은 지난해 ‘환경정책’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금의 폭염 위험은 단순히 온도를 기준으로 결정될 뿐 사회·경제·환경적 요인이 반영되지 않아 실제 폭염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취약계층은 대부분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에어컨과 같은 냉방시설을 갖출 수 없어 바깥기온과 유사한 고온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KEI 채여라 선임연구위원 등은 지난해 ‘한국지리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2018년 여름 국내에서 폭염과 온열 질환으로 인해 929명이 초과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초과사망자는 예상 사망자 수와 실제 사망자 수의 차이로 추정한다. 학계에서는 1994년 여름에는 초과사망자가 3384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논문에서 채 연구위원은 “2018년 더위가 1994년보다 심했지만, 초과사망자는 1994년보다는 적었는데, 국민의 건강과 생활 수준이 향상된 것도 있고, 다양한 폭염 관련 정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폭염 대책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피해를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그렇지만 2018년에도 폭염 초과사망자가 1000명 가까이 발생한 점으로 볼 때, 기후변화와 고령화로 앞으로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

에어컨을 설치한 무더위 쉼터나 가림막·살수차, 거리에서 미세한 물방울을 뿜어주는 쿨링 포크만으로는 피해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최근 나타난 북미의 극심한 폭염과 산불, 유럽의 홍수는 기후 위기 앞에서는 선진국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끊임없이 다듬고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호흡공동체』라는 책을 쓴 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전치형 씨 등 저자는 ‘더러운 공기(미세먼지), 위험한 공기(코로나 19), 뜨거운 공기(폭염)’의 공격 앞에서 각자도생하는 시민들 모습에서 공동체의 위기를 봤다. 폭염은 교활한 코로나바이러스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 이 여름 뜨거운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 앞의 쪽방촌 주민, 뙤약볕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건설노동자와 농민까지 돌아봐야 건강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