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우리 김치를 ‘신치’라 부르자는 괴이한 발상

중앙일보

입력 2021.07.2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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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 고유 음식인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신기(辛奇·중국어 발음은 신치·xinqi)’로 바꾼다고 지난 22일 발표했다. 이를 위해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 훈령을 개정했다. “후보 용어 16개를 검토한 결과, 신치(辛奇)가 김치와 발음이 유사하고 ‘맵고 신기하다’는 의미를 나타내므로 김치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용어로 생각되어”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선정했다고 한다.

‘신치’로 인해 김치의 고유성 퇴색
한자·영어를 병기한 대안 검토해야

중국 정부는 중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상품에 중국 문자(한자) 명칭을 표기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김치를 중국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한자 명칭을 사용해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중국의 이런 문화패권주의가 우려를 낳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치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신치’를 고안해 공표한 처사는 황당하다.

한자는 결코 중국만의 문자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2000년 이상 사용해왔고 일본도 사용하는 동아시아 공동의 문자다. 따라서 한자에는 당연히 한국식 한자 발음이 있다. 김치를 ‘辛奇’로 표기하는 순간 중국 발음으로는 ‘신치’가 되지만, 한국식 한자발음으로는 ‘신기’가 된다. 자랑스러운 고유명사 ‘김치’가 ‘신기’로 둔갑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야 김치를 신기라고 부르지 않겠지만, 세월이 흐르면 김치의 또 다른 이름이 된 신기로 인해 김치의 고유성이 퇴색하고 김치의 국적이 불분명해질 우려가 있다. 문체부의 이번 조치는 한국에서는 한자를 전혀 사용할 일이 없다는 전제 아래 오로지 중국만을 의식해 취한 졸속 조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국문자 표기를 ‘수이(首爾)’라고 만들어 ‘서울시’가 ‘수이시’로 둔갑한 전례처럼 허무맹랑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최근 중국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김치를 중국의 파오차이(泡菜)와 동일시하는 관점이 조작돼 보급되면서 김치가 중국의 고유음식이라는 억지 주장이 대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인은 중국의 파오차이와 한국의 김치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줄곧 한국 김치를 ‘한궈 파오차이(韓國泡菜)’라고 불러왔다.

어느 사회, 어느 국가라도 자신들에게 없는 문화를 이해하기 쉽도록 명명하기 위해 자신의 문화와 가장 근접한 용어를 택한다. 그래서 중국인들도 한국의 김치와 가장 근접한 문화라고 여기는 그들의 ‘파오차이’를 택해 김치를 번역하고, 대신 한국의 김치가 자신들의 파오차이와 다른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한궈(한국)’라는 접두어를 붙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써는 ‘한궈 파오차이(韓國泡菜)’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괄호 안에 [Kimchi]라는 영어 발음표기를 병기해주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韓國泡菜[Kimchi]’는 중국의 파오차이와 한국의 김치를 자연스럽게 차별화하는 용어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김치를 중국의 파오차이와 구별해 알리려고 신치(辛奇)라는 기괴한 조어를 한 것은 큰 실수다. 자칫 이미 세계인이 알고 있는 자랑스러운 이름인 김치의 의미를 흐리게 할 수 있다. 이미 ‘한국 파오차이’로 중국에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자칫 김치의 종주국은 중국이고 한국은 신제품 ‘신기’를 개발한 것으로 오인할 우려마저 있다.

중국인들은 머지않아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신치가 있잖아요? 김치, 즉 파오차이는 중국의 고유음식입니다.” 우리가 ‘재중동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중국이 쓰는 ‘조선족’이란 용어를 덩달아 사용함으로써 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격하하려는 중국의 계략에 휘말리게 된 악몽을 반복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문체부는 신치(辛奇)라는 표기를 당장 철회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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