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고

거대 여당의 ‘언론개혁법’ 몰아치기

중앙일보

입력 2021.07.27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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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대호 인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대호 인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거대 여당이 이른바 ‘언론개혁’ 관련 법안들을 밀어붙이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는 미래 지향적인 법안이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따라 채찍과 당근을 구사하려는 구시대적인 법안들이라 안타깝다.

정권 입맛 맞는 언론 만들려 하나
국민 내세워 어용단체 입김 키워
언론개혁, 신뢰 회복에 초점 둬야

여당은 언론의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 조작 보도의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태세다. 또 모든 정정 보도를 신문 1면 또는 인터넷 초기 화면, 방송 첫 화면에 싣게 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이런 법안은 언론의 역할을 위축시키는 위헌적 과잉 입법이라며 그동안 학계와 언론계에서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도 여당은 오히려 손해배상 규모를 3배에서 5배로 크게 늘리는 법안을 내놨다. 당초 유튜브와 SNS, 1인 미디어의 가짜 뉴스를 규제하겠다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이번에는 SNS 등을 빼고 기존 언론에 대한 규제만 강화했다. 언론계는 물론 언론 전문가들의 고언에 귀를 막은 셈이다.

여당은 ‘국민 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일명 미디어바우처법)도 제정하려 한다. 국민이 일종의 투표권인 미디어바우처를 이용해 언론사와 기사를 평가하면 그 결과를 다음 해 정부 광고비 집행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기관·공공기관 등 2100여개 기관이 집행하는 정부 광고비는 연간 1조원에 달한다. 이런 막대한 세금을 제공하는 과정에 정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국민 참여라는 이름으로 개입해서 언론에 영향을 주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 참여란 얼핏 보기에 국민을 내세우니 좋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관변 시민단체 위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같은 시민 이름을 내건 단체가 이미 ‘사회적 흉기’가 됐다고 비판하면서 “스스로 해체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적인 책임을 표방한 공영방송은 공공성과 거리가 먼 상황에서 정권을 옹호한 반대급부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어 서글프다. KBS 이사회는 억대 연봉을 받는 임직원들의 방만한 경영 문제는 그대로 놓아둔 채 월 2500원인 수신료를 3800원으로 52%나 인상하는 안을 최근 제시했다. 국회에서 통과돼서는 안된다.

지금 많은 국민은 웨이브·왓챠·티빙·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언론을 이용한다. 이 때문에 수신료 자체가 필요한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거대 여당의 법안은 정작 필요한 언론개혁과 거리가 멀다. 지금 인공지능과 소셜미디어가 정보를 유통하는 플랫폼에 널리 활용되면서 여론의 확증편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누구나 의견과 정보를 생산하고 실시간으로 세계를 대상으로 유통하는 언론 기관화되고 있다. 말 그대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1인 미디어 시대다. 그러면서 정보의 사실성과 공신력은 점점 약화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 사회에서 입법부·사법부·행정부 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부동산과 코로나19 방역 등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이것은 국가의 미래에 매우 위험한 신호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그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역설했다. 경제적 번영을 창출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소득도 기술도 아니라 사회적 신뢰라고 그는 주장했다. 언론 개혁은 바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언론개혁을 내세워 언론을 정치권력에 더 예속하려는 방식으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

영국의 대문호인 존 밀턴은 1644년 『실락원(Paradise Lost)』를 발표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함께 현대 언론학의 고전적 자유주의의 경전으로 간주되는 명저다. 의회가 출판 허가법을 공포해 언론을 검열하려는 상황에서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를 발표해 의회의 움직임에 강하게 반대했다.

밀턴은 “그 법을 철회한다면 그것은 진리와 학문, 그리고 국가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제껏 공공연히 아첨을 즐겨온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여러분은 공적인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생각할 것이다”라며 언론검열법 폐지를 호소했다.

밀턴의 호소가 반향을 일으켜 이후 출판허가법은 폐지됐다. 377년이 지난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리한 입법 드라이브도 강행해서는 안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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