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도입에도, 웃을 수 없는 식품업계

중앙일보

입력 2021.07.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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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식품에 표시하던 ‘유통기한’이 1985년 도입 후 36년 만에 ‘소비기한’으로 바뀌게 된다. ‘식품 등의 표시·공고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매장에서 판매해도 되는 최종 기한을 뜻하는 유통기한은 보통 소비기한의 70~80% 선이다. 따라서 식품에 표시가 유통기한서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아직 먹을 수 있는’ 식품의 불필요한 폐기를 막고 사용 기간을 다소 늘릴 수 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식품류 폐기 감소로 연 8860억원가량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품 판매기한 늘어난 만큼
보관·유통 문제 생길 여지 커져
제조물책임법 따른 배상 부담
편의점·마트는 폐기 줄어 환영

26일 식품업계는 “식품의 각종 유통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서도 “실제로 연 8800억 원대의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한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우선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같은 유통업체는 소비기한을 반겼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유통기한에 따른 간편 식품 폐기율이 5~10% 정도 됐다”며 “점주는 물론 본사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기한이 도입되면서 폐기보다 점포에 진열해 두고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도 “어찌 됐든 더 긴 기간 동안 식품을 유통할 수 있다면 업체로선 나쁠 것이 없다”고 했다.

식품업계는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뀔 경우 실제로 재고 관리비 등이 감소할지를 두고 검토에 들어갔다. 이미 대기업 계열 식품사는 제품 회전율도 빠르고 디지털화한 시스템을 통해 재고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소비량에 맞춰 생산량을 조정하는 만큼 과거처럼 재고가 오래 쌓여 관리비가 많이 들지 않은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대기업 계열 식품사보다 재고관리에 약한 중소업체는 소비기한을 더 반긴다. 중견 두부 제조 업체 관계자는 “유통기한이 2주가량인 두부는 사실 냉장보관만 잘하면 100일 이상 소비와 판매가 가능하다”며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재고관리에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반겼다.

식품업계는 제조물책임법(PL법)도 적잖은 부담이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해 제조업자의 폭넓은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판매 기한이 늘어난 만큼 제품의 보관 및 유통에 문제가 발생할 때 제조물책임법(PL법)에 의한 문제 제기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자의 취급 부주의로 인한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까 봐 업체로선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무덤덤하다. 일단 법 시행은 오는 2023년 1월부터다. 앞으로 17개월여 후의 일이다. 여기에 소비자들은 최근 유통기한이 아니라 생산일자를 보고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늘었다. 유(乳) 업계 관계자는 “우유는 유통기한과 제조일자를 병행 표기한 게 이미 10년이 넘었다”며 “우유뿐 아니라 다른 식·음제품도 유통기한보다 제조일자를 더 꼼꼼히 살피는 소비자가 다수”라고 말했다.

이미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아닌 또 다른 지표를 바탕으로 소비하는 셈이다. 특히 우유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수입 관세 폐지 등의 이유로 추가 유예기간이 적용돼 2031년쯤에야 소비기한을 표기한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유통기한 작용 자체가 이미 30년 넘게 이어져 온 만큼 당장 소비자들이 소비기한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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