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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유죄확정 괘씸죄?…與,판사 임용 개정안 발목 잡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재수감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재수감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대법원이 판사 임용을 위한 법조 경력을 5년으로 낮추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개정안을 직접 발의한 여당이 갑작스럽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안 처리를 무산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법안을 처리하려던 법사위 전체회의 전날인 지난 21일 대법원이 '친문 적자' 김경수 경남지사의 유죄를 확정판결한 게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대법원에 괘씸죄를 적용해 숙원 사업을 저지했다는 뜻이다.

김경수 유죄 확정되자 민주당 "법안 상정 미루자" 

26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2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었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측의 요청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추진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판사 임용을 위한 최소 법조 경력 기준을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안이다. 경력 10년 이상 중견 변호사의 지원자가 없어 법관 정원 미달 사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 법안은 지난 15일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위원장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서 여야 모두가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아 가결됐다.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법안이 상임위 전체회의 안건에 오르지 못한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김경수 판결 전혀 고려 안 해"

야당 측에선 김경수 지사 유죄 판결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원래 1소위를 통과하면 법사위 전체회의에 바로 상정하는데, 민주당 측에서 김 지사 판결이 나오자마자 다음에 상정하자고 했다"며 "왜 상정을 미루는 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선거 전후로 현 여권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드루킹' 김동원씨와 주요 포털사이트 댓글 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김 지사는 징역형 확정판결로 도지사직을 상실했고 26일 창원교도소에 재수감됐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당이 대법원 압박 카드로 썼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며 "대법원이 여당에 협조하지 않으면 법안 통과도 어렵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김 지사 판결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법조일원화 취지에도 어긋나고, 민변과 이탄희 의원 등의 반대 의견이 있어 이를 조정해보자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주민 위원장 직무대리가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주민 위원장 직무대리가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10년 경력 요구하니 인재 지원 안 하고, 사건 처리 기간 늘어

현행 법원조직법은 판사 임용 기준으로 법조 경력 10년 이상을 요구한다. 다만, 2018~2021년까지는 5년 이상, 2022년~2025년까지는 7년 이상으로 유예기간을 뒀다. 이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경력 7년 이상인 법조인만 판사 임용에 지원할 수 있고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인 법조인만 지원 가능하다.

이는 2013년 법조일원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시행됐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자 대상 변호사시험으로 변호사 배출 제도를 단일화한 데 따른 후속 제도 개혁이다. 사회 경험과 경륜이 풍부한 법조인을 임용해 법관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고 재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취지다.

[사진 연합뉴스TV]

[사진 연합뉴스TV]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10년 이상 변호사들이 판사 지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이는 법원에 우수 법조 인력을 유치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도 지난 15일 법안심사1소위에서 "10년이면 이미 로펌의 파트너(구성원 변호사)가 다 된 사람들이라서 법원에 지원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며 "현재도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가 판사를 지원하는 비율은 7~11%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판사 수 감소에 따라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권리가 제약된다는 입장이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법원행정처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판사 임용 기간을 현행 기준대로 유지할 경우 당장 내년부터 판사 현원(신규 임용, 퇴직 인원 등을 고려) 27명이 줄어든다. 법조 경력 10년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2026년에는 37명이 감소한다. 결국 올해 3115명이던 판사 현원은 2029년에 2919명으로 196명 감소한다. 이 경우 2010~2029년까지 민사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159.4일, 형사사건은 155.4일로 예상된다. 현재(2010~2020년 평균)는 각각 147.7일, 122.8일 수준이다.

법조 경력을 5년으로 하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내년부터 매년 73명씩 늘어 2029년에는 3699명으로 증가한다. 이 경우 민사사건 처리 기간은 평균 145일, 형사사건은 115.7일로 현재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여야 의원들도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 공감하며 관련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홍정민·정청래·소병철 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전주혜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안은 특허법원과 고등법원 판사 임용을 위한 최소 법조 경력까지 5~7년 이상으로 규정해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안(15년 이상)보다 더 적극적인 개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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