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중 1개 남은 어깨힘줄로 金 쐈다…불혹 오진혁의 투혼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17:05

업데이트 2021.07.26 19:35

9년 만에 다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남자 양궁 국가대표 오진혁. [도쿄올림픽공동취재단]

9년 만에 다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남자 양궁 국가대표 오진혁. [도쿄올림픽공동취재단]

불혹의 궁사 오진혁(40·현대제철)이 다시 정상을 밟았다. 한 가닥 뿐인 어깨 힘줄만으로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9년 만에 금메달
20대 방황, 30대 성공, 어깨 부상 딛고 재기

오진혁은 김우진(29·청주시청)·김제덕(17·경북일고)과 함께 출전한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대만을 세트 스코어 6-0으로 꺾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개인전)을 차지했던 오진혁은 9년 만에 다시 금빛 화살을 쐈다.

가장 부담스러운 마지막 순번이지만 오진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정확하게 과녁 정중앙을 노렸다. 8강부터 결승까지 21발을 쏴 세 선수 중 가장 많은 13번 10점에 꽂았다.

이날 경기에서도 막내 김제덕은 "오진혁 파이팅" "오진혁 잘한다"라며 응원했다. 오진혁은 "제덕은 경기 내내 '오진혁 잘한다!'를 외쳤다. 오진혁은 "(김)우진이가 예전에 그런 적이 있는데 더 어린 선수가 해서 어색했다. 하지만 금방 적응했다. 오히려 그런 응원에 펀해졌다. 나는 어린 선수들이 편한데 동생들은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오진혁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이 끝난 뒤 "우진이가 부럽다"고 했다. 30대 후반인 자신과 달리 20대 중반임에도 화려한 경력을 쌓았고, 앞으로도 더 활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대 시절 오진혁도 김제덕처럼 '소년 신궁'으로 불렸다. 1998년 충남체고 시절 세계주니어선수권 2관왕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오랜 슬럼프를 겪었다. 좌절과 상실감에 방황하기도 했다. 국내 대회에서 '꼴찌'를 한 적도 있었다. 훈련이 없는 주말이 되면 놀러다니기 바빴다. 군복무를 마친 그를 찾는 실업팀이 없을 정도였다. 은퇴까지도 고려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좌절하는 대신 다시 활을 잡았다.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은 "오진혁은 정통파 선수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른바 '예쁜 폼'으로 바람의 방향을 감안해 쏘는 다른 한국 선수들과 다르다. 고득점을 위해 정중앙을 노려 공격적으로 쏘는 스타일이었다.

그 비결은 무거운 활에 있었다. 활은 시위를 28인치(71.12㎝) 당길 때의 장력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남자 선수들은 보통 44파운드 활을 쓴다. 40파운드라는 건, 28인치만큼 당기기 위해 40파운드(19.96㎏)의 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진혁은 50파운드가 넘는 활을 택했다. 바람까지 이겨내는 힘있는 슈팅을 위해서였다.

우리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그의 양궁인생은 꽃을 피웠다. 2009년 마침내 10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단체전)을 따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선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개인전 정상에 올랐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개인전)을 획득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오진혁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오진혁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영광의 순간이 끝나고, 시련이 다시 찾아왔다. 2011년부터 그를 괴롭혔던 어깨 통증이 심해졌다. 검진 결과, 힘줄 4개 중 3개가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강한 활을 계속해서 쏘다보니 어깨에 무리가 갔다.

오진혁은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다. 스타일도 바꿨다. 전보다 가벼운 활을 들고, 바람을 이용했다. 강속구 투수가 구위를 잃은 뒤,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투수로 변신한 셈이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오진혁은 또다시 해냈다. 도쿄올림픽 선발전을 당당히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올림픽에 서고 싶다"던 목표를 이뤘다. 그리고 최고령 금메달리스트란 기록까지 작성했다.

오진혁은 "어깨 부상을 떠안고 있다. 통증도 익숙해졌다. 활시위를 당기면서 통증을 느끼는데 익숙하다. 활을 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어깨가 생각하는 것보다 안 좋지만, 경기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오진혁은 이제 개인전에서 동생들과 선의의 경쟁을 앞두고 있다. 그는 "'끝'이라고 말했다. 딱 쏘면서 무조건 10점이라 생각했다. 값진 금메달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도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 중 뭐가 마음에 드냐는 질문을 받았다. 솔직히 개인전도 좋기는 한데 단체전 동메달이 더 좋았다. 동생들과 함께 해 의미가 있다. 이제 아쉬움이 남아있지 않다. 단체전 금메달이 더 좋다"고 활짝 웃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