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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영웅” 인권운동의 전설 밥 모지스 별이 되다

중앙일보

입력

2014년 2월 미시시피 자유여름에 대해 강연 중인 로버트 패리스 모지스. AP=연합뉴스

2014년 2월 미시시피 자유여름에 대해 강연 중인 로버트 패리스 모지스.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나의 영웅”이라고 칭했던 흑인 인권운동가 로버트 패리스 모지스(밥 모지스)가 86세로 숨졌다.

킹 목사에 비견되는 美 인권운동가 #84세 타계에 오바마 추모 트윗 올려

25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모지스의 부인 자넷 모지스 박사는 이날 남편의 사망 소식을 밝혔다. 사인은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모지스는 한국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비견되는 전설적인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교육자다.

1935년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의 해밀턴 칼리지를 졸업한 직후 1957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뉴욕 브롱크스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는 대학 시절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에게 영감을 받았고, 아래로부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풀뿌리 사회운동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14년 6월 자유여름 50주년을 맞아 강연 중인 로버트 패리스 모지스. AP=연합뉴스

2014년 6월 자유여름 50주년을 맞아 강연 중인 로버트 패리스 모지스. AP=연합뉴스

모지스가 미국 역사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1960년대 흑인 유권자 운동을 벌이면서다. 1960년 비폭력 학생위원회(SNCC)에서 민권운동을 시작한 그는 1964년 미시시피 지역 민권운동 단체를 총괄하는 연합조직위원회(COFO) 공동이사를 맡아 그해 6월 ‘미시시피 자유여름’ 운동을 지휘했다. 북부 지역 백인 대학생 1000여명이 미시시피로 내려와 비폭력 운동을 벌였지만, 이 과정에서 흑인 운동가 6명이 살해됐고, 1000여명이 체포됐다. 모지스 역시 구타와 체포 등 수난을 겪었다.

미시시피 자유운동 총지휘

그는 이후 미시시피 자유민주당(MFDP)에도 관여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치 참여에 나섰다. 백인 지배 체제이던 민주당 전당대회에 MFDP 대의원을 입성시키려 했지만, 린든 존슨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에 환멸을 느낀 모지스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투신하면서 함께 활동했던 민권운동가를 포함한 모든 백인과의 관계를 단절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모지스는 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건너갔다가 탄자니아에 머무르며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1990년 4월 대수학 프로젝트 수업 중인 로버트 모지스. AP=연합뉴스

1990년 4월 대수학 프로젝트 수업 중인 로버트 모지스. AP=연합뉴스

1976년 사면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온 모지스는 민권운동을 다시 이어갔다. 제2막은 1982년 맥아더 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대수학(代數學) 프로젝트.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수학 문해력 수업을 통해 대학 진학을 장려하는 국가 프로그램이다. 모지스는 이 교육사업을 자신이 60년대 벌였던 민권운동의 연장선으로 여겼다고 한다.

소외계층 수학 교육에 전력 

모지스의 사망 소식에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를 추모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밥 모지스는 내 영웅이었다”며 “모지스의 조용한 자신감은 민권운동을 형성했고, 청년들에게 변화를 만들어내라는 영감을 줬다”고 썼다. 모지스는 2009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투표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처음으로 정말 투표하고 싶게 만든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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