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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에 살살 쳐도, 日에 세게 쳐도…'말발' 안 서는 한국 외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최근 중국과 일본 측 주한 외교사절의 언행에 대해 잇따라 주의를 줬지만, 도무지 말발이 서지 않는 분위기다. 외교 결례에 대해 정부가 '로 키(low key)'로 대응한 중국은 당연한 일을 했다며 적반하장식으로 나오고, '하이 키(high key)'로 대응한 일본의 경우 가시적 후속 조치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일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관 대사,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 뉴스1

지난 8일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관 대사,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 뉴스1

주한 중국 대사관은 싱하이밍(邢海明) 대사가 지난 20일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를 만나 "한국에 있는 중국 정부의 대표로서 중국의 국가 이익과 양국 관계 수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22일자 홈페이지 게시글을 통해 밝혔다.

싱하이밍, 주의 받고도 "당연한 일 했다" #소마 '막말 논란' 후속 조치 감감무소식

앞서 싱 대사는 지난 16일 "한·중관계는 한·미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라는 중앙일보 기고를 통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드 관련 발언 등을 공개 반박한 뒤 외교 결례 및 대선 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외교부는 싱 대사의 기고 이튿날인 지난 17일 입장을 내고 "주재국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외국 공관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양국 관계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흘 뒤인 20일 여 차관보는 싱 대사와 상견례를 겸한 면담에서도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다만 초치 등 별도 조치 없이 구두 경고에 그쳤으며, 면담 사실도 보도 자료 배포 등을 통해 공개한 게 아니라 외교부 당국자가 문의하는 언론사에만 사실관계를 확인해주는 식의 '로 키' 대응이었다.

반면 중국 측은 "마땅히 할 말을 했을 뿐"이라며 한국 정부의 당부를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지난 21일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중국의 해외 주재 대사는 중국의 중대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선 즉시 입장을 밝히는 게 책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사드 문제 및 주한 외교관의 언행에 대한 입장은 앞서 밝힌 것과 같다"고만 밝혔다. 현재로서 추가 조치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20일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와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의 면담 사진. 주한중국대사관 홈페이지 캡쳐.

지난 20일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와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의 면담 사진. 주한중국대사관 홈페이지 캡쳐.

일본은 한국 측 공개 우려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지난 16일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막말 논란이 불거진 후 외교부는 이튿날인 17일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대사를 초치했다.
이어 "가시적이고 응당한 조치 요구에 응답하길 바란다"(19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라디오 인터뷰), "일본 측의 납득할만한 조치가 없다"(19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 서면 브리핑), "응당한 조치가 곧 있을 것이라 믿는다"(20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 한ㆍ일 외교차관 회담 후 취재진 질의응답) 등 수차례 일본의 적절한 조치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소마 공사에 대해 징계나 인사 조치를 하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도쿄 올림픽 계기 방일 여부를 놓고 막판 저울질을 하던 지난 19일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소마 공사의 발언에 대해 "부적절했다"며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실제 인사 조치에 대해선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이 판단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당시 청와대는 소마 공사에 대한 조치를 문 대통령의 방일에 연결시켰는데도 일본 측으로부터 유감 표명 이상은 없었다.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 연합뉴스.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 연합뉴스.

결국 문 대통령의 방일이 무산된 뒤 한국 정부가 요구한 "가시적이고 응당한 조치"는 열흘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이 열려 있던 19일 오전만 해도 "소마가 곧 경질될 것"이라는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지만, 어느새 쑥 들어갔다.
일본 정부가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음달쯤 별도의 후속 조치 없이 정기 인사의 일환으로 소마 공사를 복귀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과 일본이 잇따른 외교 결례에도 응당한 후속 조치 없이 버티는 데 대해 정부가 항의의 시기와 수준을 잘못 판단, 오히려 추가 조치를 요구할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싱하이밍 대사의 경우 논란이 불거진 직후 초치 등 분명한 대응에 나섰어야 하고, 소마 공사의 인사 조치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어야 한다"며 "한국에 주재하는 외교관에 대해 전반적으로 한국에 대한 존중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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