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인류'의 출현…한국 음악계 ‘팀 DNA’가 자라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11:51

지난 5월 체코 프라하의 봄 콩쿠르에서 우승한 아레테 콰스텔. 왼쪽부터 장윤성, 김동휘, 전채안, 박성현. [사진 목프로덕션]

지난 5월 체코 프라하의 봄 콩쿠르에서 우승한 아레테 콰스텔. 왼쪽부터 장윤성, 김동휘, 전채안, 박성현. [사진 목프로덕션]

“학교 수업에서 다른 친구들과 연주하는 팀을 하나 만들어야 했어요. 하나만 해도 되는데 다섯 팀을 만들었죠. 앙상블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첼로를 전공한 박성현(28)은 “연주자들이 합을 맞추고 소리를 모아 음악을 만드는 희열은 혼자 연주할 때보다 몇배 더 컸다”고 했다.

'노부스' 이후 '에스메' '룩스' '아레테'까지
젊은 연주자 중심 실내악 팀들 속속 등장
한예종서도 실내악 과정 곧 개설 계획

박성현은 2017년엔 현악기 연주하는 친구 여럿을 모아 앙상블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학교 수업의 의무가 아니었다. “앙상블에 관심 있는 친구를 한 명 한 명 모으다 보니 꽤 됐다”고 했다. 2019년 여기에서 현악 4중주로 팀을 다시 꾸려 ‘아레테 콰르텟’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바이올린 전채안(24)ㆍ김동휘(26), 비올라 장윤선(26)과 함께였다. “앙상블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모인 이 팀은 지난 5월 13일 제72회‘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 현악 4중주 부문에서 우승했다. 심사위원상, 프라하 도시상 등 특별상 5개도 함께 받았다.

혼자 연주하던 한국 음악가들에 ‘팀 DNA’가 자라고 있다.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실내악, 앙상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결성 2년 만에 명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아레테 콰르텟이 강력한 예시다. 박성현은 “예전에는 앙상블이 음악을 공부하기 위한 의무적인 일이었지만 이제 후배들을 보면 실내악 연주를 전업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더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 앙상블 팀으로 자리잡은 노부스 콰르텟. 왼쪽부터 김재연, 김영욱, 김규현, 이원해. [사진 목프로덕션]

한국의 대표적 앙상블 팀으로 자리잡은 노부스 콰르텟. 왼쪽부터 김재연, 김영욱, 김규현, 이원해. [사진 목프로덕션]

그는 “아무래도 ‘노부스ㆍ에스메’효과”라고 덧붙였다. 현악 4중주 팀인 노부스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은 각각 2007년, 2016년 결성된, 한국 2030 연주자들의 팀들이다. 독일ㆍ영국 등 세계 주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후 유럽ㆍ북미의 주요 공연장에서 초청받아 무대에 서면서 ‘팀’으로 쌓을 수 있는 음악적 경력의 모범을 보이고있다.

이들의 등장은 독주자 위주였던 한국 음악계의 흐름을 바꿔놨다.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독주가 아니라 팀을 꾸려 국제 대회에 참가하고, 실내악 연주자를 직업으로 꿈꾸게 됐다. 노부스 콰르텟의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은 아레테 콰르텟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2015년 트론하임 국제 콩쿠르의 3위 트리오 제이드, 2016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른 아벨 콰르텟, 2018년 독일 ARD 콩쿠르 3위의 룩스 트리오 등이 한국의 대표적인 실내악 팀이다.

물론 개인들의 노력만으로 ‘앙상블 인류’의 출현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2008년 금호영체임버콘서트 오디션을 시작했다. 1998년 시작한 독주자 오디션을 피아노 듀오, 피아노 3중주, 현악 4중주, 목관 5중주, 금관 5중주 등 앙상블로 확대한 것이다. 오디션에 응시하는 팀은 서서히 늘고 있다. 2008년에는 상반기 8팀, 하반기 6팀이었던 응시 팀은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20팀, 21팀으로 늘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측은 “일시적으로 모여하는 연주하는 팀이 아닌, 앞으로도 팀으로 활동할 이들에 한해 응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재단법인 아트실비아는 2012년부터 대상 상금 3000만원의 실내악 오디션을 매년 열고 있다. 노부스 콰르텟, 제이드 트리오 등이 이 오디션 출신이다.

에스메 콰르텟. 왼쪽부터 배원희, 허예은, 김지원, 하유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에스메 콰르텟. 왼쪽부터 배원희, 허예은, 김지원, 하유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교육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이강호(첼로) 부원장은 “대학원에 수년 내로 실내악 과정을 만들 계획이며 현재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음악대학들처럼 ‘앙상블 전공’을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 음대의 백주영(바이올린) 교수도 “학교에 실내악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앙상블을 안 하고 솔로만 하는 연주자는 살아남기 힘든 경향이 세계 음악계에서 더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독주와 앙상블은 단지 연주자 숫자만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백주영 교수는 “솔로보다 더 어렵다. 연주 잘하고 실력 있다고 앙상블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레테 콰르텟의 박성현도 “현악 4중주로 첫 레슨을 받았을 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며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데 여기에서 할 때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야만 했다”고 했다. 아레테 콰르텟은 현재 독일 뮌헨 국립음대의 실내악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강호 부원장은 “실내악이 문화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독주가 외향적으로 드러낸다면, 실내악은 내적 깊이를 보여주는 장르다. 실내악 무대와 청중이 늘어나면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다고 본다.”

연주자들의 팀플레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까운 무대로는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가 준비돼 있다. 다음 달 28일 오전 11시에 아레테 콰르텟, 리수스 콰르텟, 이든 콰르텟이 콘서트홀 무대에 올라 앙상블의 저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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