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향약에서 얻은 주민자치 교훈 “충분히 지원하되 절대 간섭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11:38

업데이트 2021.07.26 11:48

지방의회 및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맞아 지방의회 가치를 제고시키고 진정한 지방분권시대를 열기 위한 제3회 대한민국 의회·행정박람회가 7월 22일(목)부터 24일(토)까지 부산광역시 벡스코에서 열렸다. 이번 박람회에서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주민자치, 조선의 향약에서 답을 찾다’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쳐 주목을 모았다.

전 회장은 특강 전 있은 개막식 축사에서 “지방의회는 민주화와 자치화의 중심이다. 저는 주민자치를 일대사인연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방의회와 의원님들과는 주민자치로 거부할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지방자치는 30년 만에 괄목할 발전을 이뤘지만 주민자치는 20년 동안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지방자치는 법령과 권한, 조직과 인력, 재원이 있지만 주민자치에는 그런 분권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분권 없는 자치는 허구다. 지방자치의 두 축은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다. 주민자치는 주민이 민주화 과정과 절차를 통해 지방의 대소사에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다. 읍면동과 통리에서 제대로 작동한다면 정치와 행정적으로 멋있는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한국자치학회와 한국주민자치중앙회도 멋진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혼신을 힘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이미지 1] 제3회 대한민국 의회·행정박람회에서 특강을 펼친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

[이미지 1] 제3회 대한민국 의회·행정박람회에서 특강을 펼친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

이어 특강에서 전상직 회장은 “오늘 나눌 이야기는 조선의 주민자치다. 한국 역사에 주민자치가 없다고 하는데 정말 주민자치가 없었던 것일까? 오랜 시간 연구해왔는데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주민자치에 대한 선견지명이 있었다. 단지 일제가 멸살시켜 그 맥이 끊어진 것이다”라고 서두를 열며 “주민자치는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일을 주민들끼리 하는 것이다. 혼자 하면 개인자치고 공무원이 하면 관치이지만 주민들이 이웃과 함께 할 때는 주민자치가 된다. 물론 주민과 마을이 함께 자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조선은 주민자치를 어떻게 해온 것일까?”라고 의문점을 제기했다.

전 회장은 이어 “현재 대한민국 주민자치를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읍면동과 통리다. 읍면동과 통리를 민주화, 자치화 시키는 것이 주민자치의 출발이다. 가장 현실적인 절충안은 읍면동을 자치단체화시켜 읍면동장을 선거로 선출하고 읍면동의회와 주민총회를 설치해 협치하는 것이다. 통리에는 주민이 자치하는 주민자치회를 만들어 읍면동/통리 이중구조로 구축하면 된다”고 주장하며 “주민자치위원회가 행정 소속이었다면 주민자치회는 사회소속이다. 주민자치의 주체가 자치단체에서 지역사회로 변하고 있으며, 기능도 달라져야 한다. 사회적 자본형성, 사회 서비스공급, 주민의 목소리 대변이 주민자치회가 담당해야 하는 기능인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 모두 수행하지 못하는데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상직 회장은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가 보자. 중국의 여씨 향약은 종친간 상부상조를 위한 규약이었다. 조선에서 이를 향약으로 받아들여 사족들의 향안이 되었는데, 반상에 의거한 수직적 관계를 구축해 상민의 도덕교화에 목적을 두었다. 그리고 통제의 목적에서 수탈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갔다. 모든 규칙은 양반이 만들고 상민이 이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조선 정부에서 이를 통합(상하합계)시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수령향약으로 변모했다. 수령이 친정하기 때문에 수령의 현명함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수령향약은 자치조직이 아니라 통치조직이었다. 결국 조선 향약은 이런 과정을 거쳐 실패한 것이다”라고 역사를 되짚으며 “다행스러운 것은 수령향약의 실패가 향촌자치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수령은 현청에서 업무를 보고 양반은 향교에서 공부하며 수령이나 양반 없이 상민들끼리 함께 한 촌계가 그것이다. 이게 바로 조선의 주민자치다. 향규, 상하합계, 수령향약 다 실패하고 오직 촌계만 성공했다. 조선 향약이 주는 교훈은 주민끼리 수평적, 민주적으로 자치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과 너무 닮았다. 수령 대신 행정이 주도하고 간섭한 주민자치 실패했다. 사족 대신 시민단체가 지배한 주민자치 역시 실패했다. 서울형 주민자치회가 그 명백한 증거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주민자치와 시민운동은 어떻게 다른가? 주민자치회는 주민의 보편적 조직이다. 사람이 중심이고 좋은 사업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시민단체는 소수 운동가의 특수조직이다. 사업이 중심이고 더 큰 조직으로 확장하려 한다. 따라서 주민과 시민단체는 반드시 대립할 수밖에 없다. 단, 시민단체가 주민자치회 내부에 있다면 주민자치에 기여할 수 있으나 주민자치 위로 올라간다면 대립과 갈등으로 번지고 결국 정치화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라고 분석하며 “서울시는 중간조직인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 주민자치를 위탁했다. 더불어 자치구에는 마을자치지원센터를, 각 동에는 동자치지원관을 두어 주민자치회 지배를 공식화했다. 조선의 양반, 사족이 벌인 행태와 똑 같다”라고 역사적 근거를 들어 성토했다.

 [이미지 2] 특강 후 주민자치 관계자들과 함께 했다.

[이미지 2] 특강 후 주민자치 관계자들과 함께 했다.

전 회장은 또 “주민자치 위탁은 실패했다. 주민자치 경험이 없는 시민단체에 주민자치회의 동의 없이 위탁해 주민자치회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보조적 기능은 위탁하더라도 주민자치의 본질은 주민에게 주어야 하는데 주민자치의 주권을 통째로 시민단체에 준 것에서부터 실패는 예견된 것”이라며 “주민자치는 식민지다. 주민자치회에는 모든 주민이 회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입법, 인사, 재정권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주민자치회는 NGO(비정부)·NPO(비영리)·NFO(비사적) 조직의 정체성을 가졌다. 정부든 기업이든 시민단체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의 동기인 이익, 권력, 명예동기를 주민에게 부여하고 숙성시키는 임무를 담당해야 한다. 지금처럼 추첨체로 주민자치회 위원을 뽑는 것은 주민자치의 동기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끝으로 전상직 회장은 “주민자치 정책은 줄탁동시(啐啄同時)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기형성과 실행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지방의회는 중앙정와 지방정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지만 시민단체와 주민자치 간의 균형도 잡아줘야 한다. 지방의회 의원, 국회의원들이 먼저 나서 주민자치 발전을 위해 힘써 주셔야 한다. 조선 향약에서 살펴봤듯 수령과 양반이 간섭하면 주민자치는 망할 수밖에 없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라고 특강을 마무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