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환자가 죽는다는 얘긴가요?”…난 점쟁이 아닌 의사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76) 

“그래서? 죽는단 얘기인가요?”

모른다. 나는 모른다. 의사지만 나는 모른다. 죽을 수도 있다고 했지 죽는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가능성을 얘기했지 확정된 미래를 예언한 게 아니다. 나는 의사이지 점쟁이가 아니다.

“확실히 말해주세요. 그럼 살릴 수 있단 거죠?”
내가 한 걸음 물러서면 보호자는 두 걸음 들어온다. 그럴 땐? 당연히 한 걸음 더 물러선다.

“글쎄요. 해봐야 알죠.”
상대의 수에 말려드는 건 하수다.

환자는 늘 확실한 답을 원한다. 일도양단. 명확하게 절단된 결과를 듣고자 한다. 살리면 고맙고 못 살려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 속 시원히 말해달라 한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테니 숨김없이 말해달라 한다. 엉거주춤 경계에 걸치지 말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전문가답게. 프로답게.

의사 앞의 환자는 죽을지 살지 모르는 존재다. 삶과 죽음이 중첩된 존재. 그게 환자다.[사진 Bill Oxford on Unsplash]

의사 앞의 환자는 죽을지 살지 모르는 존재다. 삶과 죽음이 중첩된 존재. 그게 환자다.[사진 Bill Oxford on Unsplash]

반면 나는 겁이 많다. 그렇다고 내가 특출난 겁쟁이는 아니다. 의사는 대부분 겁이 많기 때문이다. 예와 아니오 중 하나를 꺼내 보이는 의사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왜냐? 모르니까. 환자가 살지 죽을지를.

의사에게 환자는 고양이 같은 존재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고양이. 상자 내부에서 50%의 사망 확률로 독극물이 살포된다. 고양이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정답은 당연히 상자를 열어야만 알 수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얘기다. 이 고양이의 생사는 상자를 여는 순간 결정된다. 뭔 소리냐고? 몰라도 된다. 말하고 있는 나도 잘 모르니까. 어차피 내가 하려는 얘기는 어려운 양자역학이 아니다. 의사 나부랭이가 뭘 안다고 주워들은 얘기로 과학에 아는 척을 하겠는가? 나는 그저 환자 이야기를 하고자 할 뿐이다.

상자 속 고양이의 생사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상자를 열기 전엔. 환자도 마찬가지다. 결국 환자가 죽게 될지 살게 될지는 의사도 모른다. 치료가 끝나야 알 수 있다. 의사 앞의 환자는? 죽을지 살지 모르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런 표현을 환자에게도 써보려 한다. 삶과 죽음이 중첩된 존재. 그게 바로 환자다.

‘의사인 나와 보호자인 당신이 앞으로 하기에 따라 환자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

똑똑한 보호자는 한술 더 뜨곤 한다. 흔히 이과 출신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그들은 확률을 요구한다. “깨어날 확률이 얼마입니까?”, “오늘 밤 돌아가실 확률이 몇 퍼센트입니까?” 맙소사. 환장할 노릇이다. 상자 속 고양이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50%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의사는 상자 밖에 있는 관찰차가 아니고, 환자와 세상에 함께하는 참여자다. 환자의 확률을 결코 알지 못한다. 나 또한 상자 안에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구체적 수치 대신 이 정도 설명으로 갈음하곤 한다. “깨어날 가능성이 꽤 있는 편입니다.” 혹은 “오늘 밤을 넘길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환자가 죽을지 살지 확률을 물어보면 고개를 좌우로 저을 따름이다. 해줄 수 있는 말은, 나를 믿고 의지하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여보겠다, 이거 하나다. [사진 Olga Kononenko on Unsplash]

환자가 죽을지 살지 확률을 물어보면 고개를 좌우로 저을 따름이다. 해줄 수 있는 말은, 나를 믿고 의지하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여보겠다, 이거 하나다. [사진 Olga Kononenko on Unsplash]

내친김에 조금 더. 인체는 소우주라고 했다. 아니 인간이 곧 우주라더라. 오묘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라고들 하더라. 나 또한 이 말에 동의한다.

나는 사실 인간의 몸을 꽤 많이 이해하고 있지만, 그래서 국가에서 의사 면허증을 내줬지만, 그래도 인간이 살지 죽을지는 도통 알지 못하겠더라. 수백, 수천의 환자가 눈앞에서 살아났고 또 죽었음에도 도무지 감이란 게 생기질 않더라. 생과 사는 항상 의사의 사고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 있더라. 복잡한 인간을 이해하기에 아직도 의학은 갈 길이 멀다. 그럼 대체 의사는 뭐 하는 존재일지 궁금할 텐데.

인간의 범주 내에서 가능성을 조금씩 더해주는 존재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열과 성을 다해 몸부림치다 보면 어렵던 환자가 어느새 해 볼 만한 환자로 변해 있더란 말이지.

환자가 죽을지 살지를 물어보면, 나는 그저 모른다고 답할 뿐이다. 확률을 물어보면 고개를 좌우로 저을 따름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거 하나다. 나를 믿고 의지하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여보겠다고. 그러니 점쟁이처럼 확언해주지 않는다고 실력 없는 의사가 아닌가 의심할 필요는 없다. 혹시나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렇더라도 자신의 안목을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매 순간 환자가 살아날 가능성을 단 1%라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 어디를 가도 지금 내가 하는 게 최선이라고 확신한다. 거창할 거 없는 얘기다. 당연한 소리니까. 의사는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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