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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피고 지고 또 피며 100일 동안 화려함 뽐내는 꽃

중앙일보

입력

무더위가 시작됐습니다. 비가 몇 차례 오더니 다시 해가 나고 30도를 넘는 본격적인 여름 날씨가 찾아왔어요. 폭우와 폭염이 너무나도 사이좋게 찾아오는 요즘, 정말 더워서 건물 안에만 머무르게 되는데요. 이런 무더운 계절에도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원추리·참나리·접시꽃·해바라기 등의 초본(풀) 식물과 능소화·자귀나무·석류나무·배롱나무·무궁화 같은 목본(나무) 식물이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16 배롱나무, 백일홍나무

흔히 꽃을 떠올리면 봄을 생각하지만 사실 사계절 내내 꽃은 피어나고 있습니다. 겨울엔 남부 지방의 동백꽃 등 일부만 피기 때문에 조금은 삭막한 느낌이었다가 새봄에 추위를 이겨내고 꽃들이 피어나니 반가움에 봄과 꽃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름에도 많은 꽃이 피어나죠. 그리고 여름에 피는 꽃들은 색깔도 화려한 게 많아요. 많은 꽃 중에서도 자기가 눈에 띄려면 아무래도 화려한 게 좋겠지요.

특히, 배롱나무는 쨍쨍한 햇빛 아래서 자주색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정말 정열적으로 여겨집니다. 배롱나무의 꽃이 피는 개화기가 길어서 백일홍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소리가 변하면서 배롱나무가 됐다고 해요. 마찬가지로 꽃이 100일 동안 핀다는 백일홍이란 일년생 초본식물도 있는데요. 이름은 같지만 다른 식물이에요. 배롱나무는 이름 그대로 나무(낙엽활엽소교목)로 부처꽃과에 속하고, 백일홍은 국화과에 속하죠. 이를 구별하기 위해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백일홍에 얽힌 전설
백일홍에는 전설이 있어요. 바닷가 어느 섬에서 괴물에게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있었는데요. 어느 해는 처녀 대신 한 용사가 괴물을 무찌르고 오겠다고 나섰습니다. 처녀는 그 용사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며 100일 동안 기다렸죠. 마침내 용사가 탄 배가 저 멀리 수평선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돛대에 달았던 흰 깃발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무사히 성공할 경우 흰 깃발 그대로 온다고 했는데 말이죠. 붉은 깃발을 본 처녀는 용사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맙니다. 이 처녀의 무덤에서 하나의 식물이 자라났는데, 바닷가에서 100일간 용사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그 모습처럼 꽃이 100일 동안 붉게 핀다 해서 백일홍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예요. 소년중앙 독자 여러분도 아마 동화를 통해서 접한 적이 있을 겁니다.

배롱나무 꽃

배롱나무 꽃

그렇다면 배롱나무 꽃은 정말로 100일간 피어날까요? 저도 궁금해서 집 앞에 있는 배롱나무를 관찰했습니다. 계속 살피며 기록을 하다 보니 정말로 100일이 넘게 꽃을 피우고 있었죠. 그렇다면 한 송이가 피어 100일을 유지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피어서 꽃가루받이가 된 것은 시들고, 새로운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고 다시 그 꽃이 꽃가루받이가 되면 지고 다른 꽃이 피고. 그렇게 피고 지고를 거듭하면서 100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이어가면서 꽃을 피우는 걸까요? 한꺼번에 다 피어도 될 텐데.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곤충이 오랜 시간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오늘 모든 꽃이 피었다가 내일 모든 꽃이 지면 하루 사이에 곤충들이 찾아와서 모든 꽃을 꽃가루받이해 주기는 어렵잖아요. 그러니 오랜 시간 조금씩 조금씩 꽃가루받이를 하려는 계획일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 꽃 무궁화도 같은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새봄, 4월에 짧은 기간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은 불리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벚꽃은 짧은 기간에 화려하게 모두 피어서 주변에 있는 곤충을 독차지하면서 역시 꽃가루받이가 될 확률을 높여요. 전혀 다른 방식의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꽃가루받이가 잘되게 하려는 작전입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해요. 저마다 다르게 생기고, 다른 일을 하며 살지만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것은 ‘행복한 삶’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모두가 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멋지게 추구해가면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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