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익범 "김경수와 찰나의 악연"…文이 고른 특검 탄생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6:00

업데이트 2021.07.26 12:40

“변협에서 추천한다길래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수락했습니다. 모르니까 용감했던 거죠."

허익범(62·사법연수원 13기) '드루킹' 인터넷 불법 댓글 조작 사건 특별검사는 25일 중앙일보에 특검 추천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서울변호사회에 나보다 경력이 훌륭한 분들이 많아 솔직히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이같이 답했다.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이 확정된 21일 입장을 발표하는 허익범 특별검사.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이 확정된 21일 입장을 발표하는 허익범 특별검사. 연합뉴스

“최종 2배수 후보 들어도 가능성 떨어진다 생각” 

2018년 6월 7일 임명부터 두 달간 수사, 약 3년 재판 끝에 지난 21일 김경수 경남도지사 징역 2년 확정까지 허익범 특검의 1140일간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실 당시는 허익범 특검의 임명은 물론 ‘드루킹’ 특검법의 국회 통과 자체를 예상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6·12 북미정상회담의 가교역을 하며 최전성기를 보내던 시절이다.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같은 해 1월 네이버 주요 기사의 대통령 비난 댓글(드루킹의 '역작업')을 경찰에 수사의뢰하며 시작된 사건이지만 그해 4월 드루킹이 구속되며 상황은 반전했다. 곧바로 김경수 당시 국회의원과 연루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야당의 특검법 요구를 한 달간 ‘정치 특검’이라며 거부하다가 5월 14일 지방선거 출마 국회의원 사퇴 시한에 몰려 수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드루킹 특검법은 당시 야 3당이 대한변호사협회의 추천을 받아 최종 후보 2명을 선정하고 문 대통령이 그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첫 관문인 변협 추천부터 극심한 구인난에 시달려야 했다. 후보자로 거론되는 자체를 고사할 때였다. 실제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연수원 17기), 김경수(17기) 전 대구고검장, 강찬우(18기) 전 수원지검장 등 당초 언론 하마평에 거명됐던 인사들 대부분이 추천 과정에서 이름이 빠졌다.

2018년 6월 3일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오른쪽)이 오후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드루킹 댓글사건 특별검사 후보추천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그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6월 3일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오른쪽)이 오후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드루킹 댓글사건 특별검사 후보추천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그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해 6월 3일 변협이 추천한 최종 후보자는 검찰의 대표적 공안통 출신인 임정혁(65·16기) 전 대검 차장검사와 허익범 특검, 오광수(61·18기) 전 대구지검장, 김봉석(54·23기) 전 서울중앙지검 첨수2부장 등 4명이었다. 야 3당은 이튿날 임정혁·허익범 두 사람으로 후보를 압축했고 사흘 뒤 6월 7일 문 대통령이 허 특검을 선택했다.

문 대통령 ‘온건한 공안통’이라 선택한 게 毒이 됐다?

허 특검은 “야 3당의 최종 후보자 2명에 이름이 들어가자 부담이 커졌다. 혹시 몰라 그때부터 드루킹이 뭔가 인터넷 기사도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그때도 다른 추천자와 비교했을 때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봤다”며 최종 임명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인천지검 공안부장을 거쳐 10년도 더 전인 2007년 이미 검찰을 떠난 자신보단 대검 공안2·3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대검 공안부장을 두루 거친 임정혁 전 차장을 임명할 거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3당 원내수석부대표들(바른미래당 오신환, 윤제옥 자유한국당, 민주평화당 이용주)이 2018년 4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에서 민주당원 등의 대통령선거 불법 댓글공작 및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법,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스1

3당 원내수석부대표들(바른미래당 오신환, 윤제옥 자유한국당, 민주평화당 이용주)이 2018년 4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에서 민주당원 등의 대통령선거 불법 댓글공작 및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법,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스1

당시 특검 후보 추천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임정혁 변호사를 강성 공안통으로 허익범 변호사를 온성 공안통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대통령으로선 임 변호사가 너무 강해 보이니까 허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고 말했다.

‘12명 전원 유죄’ 성과에 “어떤 검사라도 할 수 있는 일” 

허 특검은 임명 당일 “여론과 민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고 이를 기계 조작으로 왜곡하면 민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이는 부정부패보다 큰 범죄”라고 말했다. 1140일 뒤 특검팀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드루킹 김동원(징역 3년 확정)씨를 포함해 기소한 피고인 12명 모두에 대해 유죄 판결을 끌어냈다. 임명 당시 밝힌 포부를 수사로 현실화시킨 셈이다.

‘포털 댓글 조작’ 김경수·드루킹 재판별 판단 그래픽 이미지.

‘포털 댓글 조작’ 김경수·드루킹 재판별 판단 그래픽 이미지.

허 특검을 4배수 후보자로 추천한 김현 당시 변협 회장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내가 서울변호사회 회장일 때 허 특검이 부회장이었고 2017년엔 허 특검이 변협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장을 맡아 알고 지냈다”며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어서 자신 있게 (허 특검을) 믿고 추천했는데 역대급 성과를 낸 것 같아 추천자로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특검 본인은 “나로선 철칙인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처벌 가능성을 확신하고 기소한 것이고 그다음 처벌 여부는 법원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며 “내가 아니더라도 어떤 검사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노회찬 의원 투신 당일 모친상 겹쳐…남몰래 상 치러

허 특검에겐 1140일의 시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수사 중반인 2018년 7월 23일 드루킹으로부터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던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날이었다. 같은 날 낙상 사고로 누워 계시던 허 특검의 모친이 돌아가셨다. 허 특검은 당시 긴급 회견을 열어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고 의정활동에 큰 페이지를 장식한 분의 비보를 접하고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정치인으로 존경해 온 분”이라며 노회찬 의원에 애도를 표한 뒤 모친상은 수사팀에도 알리지 않았다. 밤 11시까지 근무를 하고 새벽 6시까지 상주 노릇을 하며 남몰래 상을 치렀다.

그는 ‘그때가 최대 위기였냐’고 묻자 “누가 짐작하더라도 가장 힘들지 않았겠냐”며 “(김 지사의) 대법원 선고 전주 일요일, 선고 이후 기일에도 어머님을 찾아뵙고 왔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이제 쉬고 싶다”

허 특검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제는 쉬고 싶다”고 말했다. 휴일인 이날 “내곡동 산자락의 텃밭에서 아내와 함께 깻잎을 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평생 특검을 하는 것도 아니고 김경수 지사도 평생 국회의원 하는 것도 아니고 잠시 찰나의 악연인 건데 지나치게 부각되는 게 부끄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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