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재창의 퍼스펙티브

정부의 K방역 자화자찬은 염치 없는 일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0:38

업데이트 2021.07.2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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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코로나 방역과 정부의 역할 

박재창의 퍼스펙티브

박재창의 퍼스펙티브

K방역이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월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유입된 이래 일일 확진자 수가 지금처럼 가파르게 상승한 적은 없었다. 수도권 밖으로의 확산도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고 있다. 이미 질병관리청은 일일 확진자 수가 2000명대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심신이 지쳐있던 국민으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크게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내놓은 낙관적 신호가 사태를 악화시킨 기폭제였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총리가 나서 대국민 사과까지 했겠나. 이로 인해 지구촌 모범 사례로 평가되던 K방역이 사실은 허상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의문마저 제기됐다.

K방역 성공으로 이끈 건 정부 아닌 국민의 위기 대응력
상황이 심각할수록 정부 지도력에 대한 의존도 낮아져
합리주의에 기초한 문명이 쇠락기 들어섰다는 지적 나와
위기 일상화 뉴노멀 시대 가족주의 국가관이 해답일 수도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껏 K방역을 성공으로 이끈 건 정부의 견인력이라기보다는 국민 각자의 위기 대응력에 있었다. 필자가 최근 펴낸 『코로나-19와 한국의 거버넌스』(박영사 간행)가 사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1년간의 경과를 추적해 보면 상황이 극도로 심각해지면 어김없이 국민이 스스로 전면에 나서는 능동적 대처로 사태를 진정시켜 왔다. 정부가 뭘 하건 국민 각자가 알아서 위기를 달래 온 것이다. 이는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국가의 지도력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다는 의미다. 감염병 퇴치가 요구하는 시간의 촉박성에 비추어 정부를 통해 대응하는 경우 거기에서 발생하는 전환 비용을 최소화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국면이 진정되면 어김없이 정부의 견인력에 길을 내주고 수동적 대응 태세로 전환했다. 질병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일의 일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뜻이다.

위기 때 헌신·희생 마다치 않아

이렇듯 국민이 전면에 나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대한제국 말기 국가의 채무로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흡수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재산을 털어 나라의 빚 탕감에 나서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었다. 일제 치하에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져 일제의 요인 암살에 나서는 의혈단 운동이 빈발했다. 이는 우리처럼 일제의 침탈에 시달리던 당시의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근자에는 외환위기에 처하자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나라의 경제를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태안반도의 기름 유출 사건 때도 연인원 수백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해변의 기름때를 지우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경제적 합리성에 순치된 서구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헌신과 기여를 마다치 않는 우리 사회 특유의 문화적 특성은 그 연원을 고려 말 조선 초 이래 한국 사회를 관통해 온 유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에서 보듯 유교의 공직관에 따르면 국가와 사회는 가족의 연장체에 다름 아니다. 그런 가족에 헌신하는 일이야말로 교양있는 인간이 취해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그런 탓에 공적 영역으로서의 국가와 사적 공간으로서의 가족 사회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유동적인 것이 우리의 사회·문화적 특성 가운데 하나다. 나라에 공을 세우고 출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크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로 여기는 것도 같다. 이를 가족주의 국가관이라고 한다면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위기에 처해서도 내 가족, 내 나라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마다치 않는 가족국가 패러다임이 작동할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정부의 방역 완화가 상황 악화시켜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감염병으로부터 내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동체 전체의 방역이 선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개인의 불편함이나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고 마스크 쓰기에 나서거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충실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지가 된다. 실제로 코로나 발생 초기 대구에서는 정부가 마스크 쓰기를 권장하거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하기도 전에 시민이 먼저 나서 마스크를 쓰거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선 바 있다. 문제는 이런 가족국가 의식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황이 위기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근대화의 결과 일종의 이중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서구적 개념의 개인주의에 기초한 핵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개인과 전통적 개념의 대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중층적·혼성적 결합을 통해 이중 구조를 이루다가 사회적 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이 주어지는 경우 그 결합이 풀리면서 전통적 개념의 가족주의 국가관이 전면에 나서는 현상을 발현한다. 이성과 합리에 기초한 계약 국가 프레임으로부터 정의(情誼,사귀어 친해진 정)와 감성에 기초한 가족국가 프레임으로 인식의 중추가 이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국가 의식이 발동하기 위해서는 위기 상황의 발현이라는 사회적 긴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상황의 완화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거듭 전달함으로써 가족국가 의식의 발동에 필요한 사회적 긴장의 강도를 이완시키는 경우 그렇지 않아도 피로감이 누적된 가족국가 의식이 긴장의 끈을 놓으면서 가족국가 프레임에 의한 선제적·주동적 방역이 탄력을 잃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다.

가족국가 프레임으로 해석 가능

이런 가족국가 프레임에서 보면 위기가 심화할 때마다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진다거나 지난 21대 총선에서 실정을 거듭한 여당이 압승한 것처럼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도 이해가 가능하다. 가족국가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은 넓은 의미의 가족 공동체를 관장하는 가장에 해당한다. 한 가정이 위기에 직면할 경우 가족끼리라면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헌신하고 기여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 먼저지 가장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엄혹한 질타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 누구라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앞다투어 나서야지 가장의 견인력에만 기댈 일은 아니라는 뜻도 된다. 위기의 심각성 정도가 높아질수록 이런 인식은 보다 더 심화한다. 21대 총선에서도 위기 극복의 책임을 집권 세력에 물어 사회 질서를 재편하면서까지 문제 해결에 나설 만큼 상황이 안이하지 않고 위기 상황인 만큼 집권 세력을 객관화하기 이전에 자신이 속한 정서적 공동체의 일부로 여겨 국민이 스스로 위기 극복 과제를 짊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선행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탓에 가혹한 책임 추궁을 삼간 셈이다. 위기라는 상황 변수와 가족국가 의식이 국가 견인력의 건전성 여부에 대한 평가를 유예한 결과다.

국민이 위기 극복 과제 짊어져

이는 국가와 시민사회 또는 공적 영역과 사적 공간 간의 경계가 명료하고 개인의 자유 보장을 위해 입헌주의를 통한 국가의 개입과 기여를 계약해두었다고 보는 서구 사회와는 인식의 프레임이 근본부터 다르다. 이성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서구 사회가 코로나 방역에 실패를 거듭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이는 단순히 서구 문명이 감염병 확산이라는 위기의 대응에 무력하다는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 이상을 함축한다.

특히 합리주의에 기초한 근대 문명이 쇠락기에 들어섰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곳에서 제기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가 일상화하는 뉴노멀 시대가 도래하는 경우 서구 문명의 변증법적 대안이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이 빈발할 것은 손쉽게 예견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위기 극복을 선도해 온 우리의 가족 국가 프레임은 단순히 범 지구 차원의 감염병 극복을 위한 전략적 도구 이상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류 문명의 대안을 예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이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서구 사회로부터 지식을 수입하는 나라로 살아온 우리가 서구 문명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이를 보다 중립적 관점에서 객관화해 볼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문명사적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말을 되뇌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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