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정호의 시선

임시정부 박은식 대통령의 유언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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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도 활동한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박은싀. [중앙포토]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도 활동한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박은싀. [중앙포토]

“독립운동은 오족(吾族·우리 민족) 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운동 동지 간에는 애증친소(愛憎親疎)의 별(別·구별)이 없어야 된다.”
 독립신문 1925년11월 11일 자에 실린 백암 선생의 유언이다. 백암(白巖)은 독립지사 박은식(1859~1925)의 호다. 기사가 실리기 열흘 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타계한 백암은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공근을 불러 이런 뜻을 남겼다. 최후의 순간에도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이 묵직하기만 하다.
 백암의 또 다른 호는 ‘겸곡(謙谷)’이다. 그의 삶과 사상을 압축한 단어로 보인다. 『주역』의 ‘겸괘(謙卦)’에서 나온 말로, ‘땅 아래에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니, 군자는 많은 데서 덜어 적은 데에 더해 주어 사물을 저울질해 고르게 베푼다’는 의미다. 요즘 우리 사회 화두인 공정과도 통한다.
 역사학자 노관범 교수(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풀이가 흥미롭다. 그는 “박은식은 편파성과 편중성을 없애는 이 말을 평천하(平天下)의 중요한 길로 봤다”며 “겸곡이 생각한 평(平)은 고통받는 인민과 탐학한 양반 사이의 평이자 재래의 구학문과 외래의 신학문 사이의 평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서문. [중앙포토]

박은식의 '한국통사' 서문. [중앙포토]

 시대의 명저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로 이름난 겸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냈다. 1919년 어렵게 출범한 임시정부가 내부 균열로 깊은 수렁에 빠지자 1925년 3월 23일 면직된 이승만에 이어 2대 대통령에 올랐다. 반면 재임 기간은 채 넉 달이 안 됐다. 그해 7월 개정 임시헌법에 따라 통치권이 국무령(이상룡)과 국무회의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 최규하 대통령이 8개월 재임한 것과 견준다면 겸곡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짧은 임기를 마친 셈이다.
 ‘박은식 대통령’의 행적을 임기로 따질 일은 아니다. 나라를 잃었던 100년 전과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오늘을 직접 비교할 순 없다. 그런데 지치(至治·가장 잘 다스려진 정치)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겸곡이 임정 마지막 대통령으로 출발한 첫날의 마음가짐은 내년 대권을 노리는 주자들이 새길만 하다. 그가 취임 당일 독립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오늘날 우리 독립운동의 제일 요소는 각방(各方)의 인심을 통일하여 내부의 결속을 견고케 함이라. (…) 내부 결속이 박약하면 서로 원수로 여겨 죽이는 참극까지 연출케 되나니 (…) 3·1운동 이후에는 각방의 단체가 우후춘순(雨後春筍)과 같이 발생하여 경제의 곤란으로 운명이 장구하지 못한 것이 많았고….”
 독립이란 대명제 앞에서 분열한 여러 세력을 비판한 글이다. 한 세기 전의 외침이건만 지금 우리의 눈앞을 짚어보는 데도 유용하다. 정당의 1차 목표가 집권인 것은 분명하나 여야 없이 볼썽사나운 비방과 모략이 득실대는 현실은 정치에 대한 혐오만 증폭시킬 뿐이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마저 나올 지경이다.

2015년 10월 서울대 사범대 역사관 앞에 세워진 백암 박은식 선생 흉상. [중앙포토]

2015년 10월 서울대 사범대 역사관 앞에 세워진 백암 박은식 선생 흉상. [중앙포토]

 겸곡의 화살은 내부로만 향하지 않았다. 세계정세에 대한 통찰을 촉구했다. 그는 1925년 7월 7일 임시 대통령에서 물러나며 인류 역사는 세계주의를 향하는 시대이기에 한국의 독립운동도 민족 단독으로 한정 짓지 말고 세계 민족과 연합주의로 행동해야 한다는 고별사를 남겼다. 노관범 교수는 “독립운동이 국권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평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동정을 얻을 수 있다는 혜안”이라고 평했다.
 노 교수의 신간『유학자 겸곡 박은식』은 시사성이 크다. 30년 전 대학생 시절 겸곡과 처음 만난 저자가 그간의 연구와 생각을 정리해 박은식과 그가 살아온 시대를 되살렸다. 황해도 시골 선비로 태어난 겸곡이 대한제국·일제강점기 등 파란의 세월을 거치며 언론인·역사학자·독립운동가·혁명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망라했다.
 겸곡의 삶은 한마디로 한국 근대사 자체였다. 노 교수는 특히 겸곡의 세계성을 주목했다. “박은식은 세계인이었고, 그의 역사서는 세계사였다”고 정의했다. 조선의 멸망과 독립운동을 각각 다룬『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또한 동아시아 혁명의 역사, 군국주의와 인도주의가 대결하는 세계사의 극적인 발현이었다고 해석했다.
 책 내용 가운데 ‘구유(拘儒)’와 ‘통유(通儒)’란 단어가 확 들어왔다. 각각 시무(時務)에 어둡고, 밝은 유생을 가리킨다. 과거에 갇힌 자와 미래에 열린 자의 대비다. ‘가지사(假志士)’도 눈에 띈다. 대한제국 말기 유행한 말인데, 겉으론 국민·국가를 외고 다니지만 속으론 제 잇속만 채우는 이들을 말한다. ‘구유’와 ‘가지사’를 솎아내는 시민들의 혜안이 절실한 요즘이다.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지혜는 성경에만 나오는 비유가 아닐 것이다.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독립운동 분열 비판한 임정 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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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욕만 챙기는 ‘가짜 지사’ 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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