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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특검 ‘신입사원’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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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김경수 징역 2년…지사직 박탈’.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를 배회하다 본 속보에 3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6개월의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해진 첫 출근지는 서울 서초대로 77길 5. 이른바 드루킹 특검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다. 2018년 얼떨결에 ‘특검 신입사원’이 됐다.

당시 특검에 파견 나온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특검 수사는 그리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보도되진 않았지만 휴직과 개인 사정을 언급하며 파견을 거부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울었다는 검사도 있었고, 사표까지 꺼내 들며 특검에 오지 않은 검사도 있었다. 정권 초기 대통령의 최측근을 수사하는 건 큰 부담이었다.

정치적 이해를 이해하긴 어려운 특검 신입사원은 허익범 특별검사를 비롯해 아침이면 사무실로 들어서는 100여명의 검사·수사관에게 말을 거는 일을 했다. 땡볕에 서 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이들이 보이면 질문을 던지거나 퇴근을 기다렸다 아는 체를 하는 것도 업무의 연장이었다. 물론 그들의 입은 무거웠기에 오후엔 피의자나 참고인을 찾아 목동·파주·의정부를 오갔다.

조사를 마치고 특검 사무실을 나오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 [뉴스1]

조사를 마치고 특검 사무실을 나오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 [뉴스1]

수사팀의 입을 열게 할 수는 없었지만 출퇴근을 함께 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일을 참 열심히 했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았던 60일짜리 파견직이라곤 믿을 수 없었다. 당시 수사팀의 A 검사는 후배 검사가 태만한 모습을 보이자 “누구를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이 맡겨진 이상 무엇이 맞는지는 확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크게 혼을 냈다고 한다.

토요일·일요일이 특검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주는 휴식은 더운 여름에 셔츠 대신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출근해도 된다는 것뿐이었다. 김 지사가 2차 소환조사를 끝내고 특검 사무실을 나온 시간은 새벽 5시 20분이었다. 김 지사가 “이제 특검이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공정한 답을 내놓을 차례”라는 말을 하고 떠나면서 사무실 앞에 진을 치던 지지자와 취재진은 대부분 귀가했다.

김 지사를 직접 조사한 검사들은 조사 내용을 살펴본 뒤 오전 7시가 돼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 남은 김 지사의 지지자는 없었고, 기자도 몇 명 보이지 않았다. 꼬박 밤을 새워 조사를 했던 B 검사는 주목받지 않고 집에 갈 수 있다며 좋아했다. 지금은 검찰을 떠난 C 검사에게 “원치도 않은 특검에서 왜 그리 밤새워 일했냐”고 묻자 “그냥 그게 일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끝내 허익범 특검팀은 김 지사를 기소했고, 특검 출범 1120일 만에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낸 결과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범인(凡人) 덕에 사회가 돌아간다는 사실은 특검 신입사원에겐 값진 교훈이었다. 검찰과 경찰, 세종의 정부부처…출입처를 옮길 때면 A·B·C 검사 같은 직장인을 본다.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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