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7월 수상작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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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장원〉

그래, 그래

-손창완

가요에선 사랑이 글에서는 어머니가
삼시 세끼 밥처럼 뉘에게나 먹히지만
당신은 밥을 위하여
논이 된 그래, 그래

소에게 밟히고도 아프다 한 적 없고
물새 똥 싸질러도 내색 없이 계시는
피사리 못 해 드려도
난 괜찮다 그래, 그래

표현 못 한 사랑은 비문이 되는 건지
글 한 줄 못 되 보고 흙으로나 사셨던
나 이제 적어 봅니다
그래 그래, 우리 아버지

◆ 손창완
손창완

손창완

1966년 경기도 평택시 출생, 오산시청(스마트징수팀장)근무, 2020년 공직문학상 은상. 2020년 11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차상〉

쌀국수 

-김경아  

면발을 슬쩍 말아 입안에 후룩 넣다가
센 양념 때문인지 사레들린 작은 올케
꾹 누른 인도차이나 들켜 버린 설움이

바다를 횡단하다 둥지 튼 도도새처럼
낯선 땅 찾아들어 날개라도 꺾인 걸까
비행기 뜨는 소리에 두세 번의 헛기침

국물에 다문다문 파릇이 뜬 야채 보며
마치 천하절경 하롱베이 같다는
어쩌면 젓가락 노질로 고향 향해 가나 보다

〈차하〉

무당거미 

-박숙경

배롱나무 가지 사이 굿당 하나 차려졌다
바싹하게 말려진 잠자리 모기 나방
더럽게 재수 없는 놈, 저들끼리 손가락질

고깔을 쓴 바람이 방울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굿 한판이 태풍처럼 지나간 후
낮달이 예인줄에 걸려 마른 잎과 흔들릴 뿐

좌판 삶이 벼랑이라던 여자의 엷은 미소
숨죽여 나부끼면 거미줄보다 더 질길까
무심결 내뱉은 독백 바람이 비껴갔다

〈이달의 심사평〉 

데뷔는 시작일 뿐, 그러므로 더 오랜 습작기를 거칠수록 좋다. 군살을 빼고 근육을 키워야 오래 또 멀리 간다.

주저 없이 손창완의 ‘그래, 그래’를 올린다. 누구나 쉽게 뱉던 말들이 그의 손끝에서 간절한 사부곡을 탄생시켰다. 말에는 영혼이 살고 있다. “당신은 밥을 위하여”나 “글 한 줄 못 돼 보고 흙으로나 사셨던”과 같은 여과 없는 말들이 가슴을 적신다. 시의 생명은 메타포나 이미지에 있지 않고 진실성에 있다. 차상으로 김경아의 ‘쌀국수’를 선한다. 다소 직설적인 표현에도 다문화시대의 족보를 끌어안는 솜씨가 각 수의 종장마다 스며들어 올케를 향한 안광과 관념을 걷어내고 흰소리 없는 표현이 눈에 꽂힌다. 동시에 “젓가락 노질”로 시조를 향해 가는 발싸심에서 담금질이 엿보인다.

시는 말로써 존재할 뿐 아는척하지 않는다. 장원이나 차상의 작품이 그렇다. 차하로는 박숙경의 ‘무당거미’를 택한다. 활유법을 통한 대상에서 생동감을 얻고 있으나 시에 맞는 품격이나 적확한 수사가 아쉽다. “낮달”과 “좌판 삶”과의 비유는 빼어나다. 새로운 이들의 응모와 함께 한영권·구지평·최진도씨에게 격려와 함께 다음을 기대한다.

최영효(대표집필)·김삼환 시조시인

〈초대시조〉

길 위에서

-강인순

길을 가다가 잠시 길을 잃어버리고
걸어온 길 돌아보며 허둥대며 길 찾는다
세상사 눈먼 사내는 푸념만 늘어놓고

길들라, 풍진風塵 세상 몇 번씩 꼬드기지만
지상의 모든 길은 그리 만만치 않아
이승의 길모퉁이서 짐 지고 선 오늘이다

◆ 강인순
강인순

강인순

경북 안동 출생. 1985년 《시조문학》 현상공모 장원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초록시편』 『생수에 관한 명상』 『그랬었지』 『사진 한 장』 등.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프롤로그를 ‘길’에서 시작했다. 모든 인간 삶의 프롤로그일 것이며, 모든 인간 삶의 에필로그일 것이다.

길은 곧 삶이요 인생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삶이라는 길, 길이라는 삶이 주어졌지만 그것은 저마다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 하여 길은 철저히 홀로이기를 요구하며 절대고독이라는 숙명을 얹어 주었다.

시인은 말한다. “길을 가다가 잠시 길을 잃어버리고/걸어온 길 돌아보며 허둥대며 길 찾는다”고. 어디 “세상사 눈먼 사내”만 그러한가. 삶이라는 도저한 길을 가는 자, 누구라서 잠시 길을 잃지 않겠는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겠는가.

첫째 수에서 길로 상징되는 삶이라는 노정의 미망과 미혹을 “눈먼 사내”를 내세워 타자화했다면, 둘째 수에서는 내면화된 시적 자아가 “지상의 모든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고 단정하며 삶을 실존의 무게로 구체화하고 있다. 감정의 무리한 과잉이나 과장 없는 담담한 진술이 주는 공감의 여운이 길다.

가야 할 길, 앞에 놓인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어떤 풍진(風塵)이 걸음을 더디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혼자서 내디딘 프롤로그처럼 그 에필로그 역시 철저히 ‘혼자’일 것일 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길은 만만한 낭만의 상징이 아니라 처절한 실존의 상징이다. 또다시, 아니 늘 “이승의 길모퉁이”에서 “짐 지고 선 오늘”이다. 그 짐을 오롯이 홀로 지고 가는 이 길의 장엄함이 아, 왜 이리도 아득하고 쓸쓸한가.

서숙희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e메일(choi.jeongeun@joongang.co.kr)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응모편수 제한 없습니다. 02-75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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