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도 된다’는 유통기한, 먹어도 되는 ‘소비기한’으로 대체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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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김모(51)씨는 장 볼 때 반드시 유통기한을 따진다. 하루라도 더 긴 걸 고른다. 김씨는 하루 이틀 정도 지난 걸 먹기도 하지만 남편(56)은 기한이 지나면 칼 같이 버린다. 두부·요구르트·우유 등이 버려질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았으면 두 개 살 것을 한 개만 산다.

2023년 1월부터…제도 도입 36년만
우유·두부는 지금보다 3일 늘어나
폐기 감소로 연 8860억 절약 효과

김씨는 “매일 먹는 식품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짧은데, 하루 이틀 지난 걸 먹으면 괜히 찜찜하다”며 “밀가루·설탕 같은 마른 음식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멀쩡한 것 같은데 먹어도 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23년부터 식품의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뀌면서 지금보다 사용기한이 다소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1985년 유통기한 제도 도입 이후 36년 만이다. 시행은 2023년 1월부터다. 다만 우유의 경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 수입 관세가 폐지되는 점 등을 고려해 8년 이내에 도입하기로 했다.

강 의원은 “유통기한은 매장에서 판매해도 되는 최종 기한을 말하는데, 소비자와 식품업체가 이걸 섭취 가능 기간으로 오인해 폐기하거나 반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소비기한이란 보관 조건을 준수할 경우 소비자가 먹어도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는 기한이다.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식품 선택권이 확대되고 불필요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폐기 감소로 연 8860억원이 절약되며 식품업체는 5308억원을 아낄 수 있다고 밝혔다.

소비기한은 원료·제조방법·포장법·보관조건 등을 고려해 맨눈 검사, 미생물 측정 등의 실험을 통해 설정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기한 도입으로 품질 변질 시점이 10일일 경우 안전기한이 ‘6~7일’에서 ‘8~9일’로 늘어난다고 본다. 식품업계는 소비기한 도입 시 두부·우유의 유통기간이 14일→17일, 액상 커피는 77일→88일, 빵류는 3일→4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송성완 식품산업협회 이사는 “세계에서 유통기한을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소비기한으로 변경되면 정확한 정보 제공, 폐기물 감소 등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도 소비기한 표시제를 쓰며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도 2018년 소비기한으로 바꿨다.

표시방법 변경은 지난 10년 동안 논란을 거듭해왔다. 박동희 식약처 식품표시광고정책과장은 “냉장 유통 환경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소비기한으로의 변경은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냉장 유통 환경이 많이 개선된데다가 폐기 감소를 통한 탄소 중립 달성 인식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변했다”고 말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소비기한으로 바꾸면 식품이 마트 매대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 적정 냉장 온도가 매우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는 ‘0~10도’인 냉장보관 기준(식약처 고시)을 ‘0~5도’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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