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깨고 "코리아 파이팅" 외쳤다…'괴짜' 소년 신궁의 패기

중앙일보

입력 2021.07.25 19:32

업데이트 2021.07.25 19:55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이 24일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전 결승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이 24일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전 결승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양궁은 정적인 스포츠다. 사대에서 과녁까지 거리가 70m. 10점 원은 지름이 12.2㎝로 사과 하나 크기다. 사대에서 바라보면 작은 점으로 보인다. 선수들은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영점(零點)을 잡는다. 그래서 대부분 조용하다. 감정을 드러낼 때는 활시위를 당긴 뒤 동료와 하는 하이파이브 정도다. 그런 면에서 '소년 신궁' 김제덕(17·경북일고)은 '괴짜'다.

김제덕은 지난달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미디어데이에서 힘차게 "파이팅"을 외쳐 눈길을 끌었다. 함께 포토라인에 선 선배 오진혁(40·현대제철)과 김우진(29·청주시청)이 당황할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찼다. 양궁대표팀 막내인 그가 패기를 보여주려고 연출한 장면 같았다. 그러나 그의 포효는 더 큰 무대에서 더 커졌다. 도쿄 올림픽에서 계속 "파이팅"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10대 젊은 나이.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서 그의 당당하고 독특한 스타일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4일 열린 혼성전 결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산(20·광주여대)과 짝을 이룬 김제덕은 경기 초반 흐름을 스테버 베일러르-가브리엘라 슬루러르 조(네덜란드)에 내줬다. 1세트를 35-38로 패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았다. 2세트부터 파이팅 목소리가 커지더니 경기력도 덩달아 상승했다. 결국 5-3(35-38, 37-36, 33-36, 39-39)으로 역전승, 대표팀에 도쿄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겼다. 안산은 경기 뒤 "제덕이가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니까 덩달아서 긴장이 풀렸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궁 경기장의 침묵과 관례를 깨는 김제덕의 사자후를 상대 선수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 혼성전 예선부터 결승까지 그처럼 소리 지르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박채순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김제덕의 외침을 반긴다. 박 감독은 "제덕이에게 소리 지르라고 시켰다. 그런데 저렇게 크게 할진 몰랐다"며 껄껄 웃었다. 박 감독은 이어 "(파이팅을 외치는 건) 우리에겐 사기 진작일 수 있고 상대편을 흥분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규정에) 문제 되지 않는다. 긴장될 때 말을 하면 오히려 침착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몇몇 국가는 더한 방법으로 상대편의 리듬을 깨트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중국 관중이 한국 선수들이 활시위를 당길 때 노골적인 야유를 쏟아냈다. 호루라기를 불고, 페트병까지 두들기기도 했다. 심판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가 제지하지 않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경기장 안에서 감정 표출을 하지 않는다. 올림픽이라는 무대가 주는 중압감이 더 그렇게 만든다.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김제덕의 파이팅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포효할 때보다 사대에 섰을 때 더 강하고 용감했다. 박채순 감독은 "(한국 양궁이) 세계 1등인데, (소리 지르는 것보다) 지는 게 더 창피한 것"이라고 했다.

혼성전이 끝난 뒤 김제덕은 '미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외신 기자 질문에 간단하게 답했다.

"파이팅하라고 하고 싶다."

그다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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