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한국 입장때 세월호 쓴 격"…체르노빌 사진 띄운 MBC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21.07.25 16:54

업데이트 2021.07.25 17:06

23일 열린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입장하는 화면 옆에 체르노빌 핵 발전소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사진 MBC 방송화면 캡처.

23일 열린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입장하는 화면 옆에 체르노빌 핵 발전소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사진 MBC 방송화면 캡처.

MBC가 도쿄 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때 참가국을 소개하는 부적절한 사진과 문구를 사용해 큰 논란과 비판을 불렀다. 구체적인 내용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됐고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여러 언론에도 다뤄졌다.

체르노빌, 핵실험장… 아픈 과거사진 내걸어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 발전소 위에 차단시설을 새로 덮은 모습. 체르노빌은 역대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곳으로 꼽히고, 아직도 남은 방사성 물질의 처리와 차단이 계속되고 있다. MBC는 지난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생중계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소개하는 화면에 대표 사진으로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띄워, 국제적으로 입길에 올랐다.REUTERS=연합뉴스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 발전소 위에 차단시설을 새로 덮은 모습. 체르노빌은 역대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곳으로 꼽히고, 아직도 남은 방사성 물질의 처리와 차단이 계속되고 있다. MBC는 지난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생중계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소개하는 화면에 대표 사진으로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띄워, 국제적으로 입길에 올랐다.REUTERS=연합뉴스

MBC는 23일 개막식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할 때 화면 한쪽에 각종 국가 정보와 함께 체르노빌 발전소 사진을 띄웠다. 체르노빌은 구소련 시절인 1986년 최악의 원전 폭발 사고가 벌어져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십년간 후유증이 이어진 곳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에서는 즉각 시청자들의 비판이 일었다. 러시아 출신의 귀화 방송인 일리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을 넣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MBC는 아이티를 소개하는 장면에는 아이티 폭동 사진을 실었다. MBC 방송화면 캡처

MBC는 아이티를 소개하는 장면에는 아이티 폭동 사진을 실었다. MBC 방송화면 캡처

이뿐이 아니다. 각국 선수단 입장 때 엘살바도르는 이 나라가 최근 법정통화로 지정한 비트코인 이미지를, 아이티는 현지 폭동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란 문구를, 마셜제도는 ‘한 때 미국의 핵 실험장‘이라는 문구를 붙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양귀비 운반 사진을, 시리아는 '10년간 이어진 내전'이란 문구로 소개하는 등 부정적 측면을 내세웠다.

"국제적 비난 국민이 떠안을 판… 조사해달라" 청원도

MBC의 실수는 외신에도 실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우크라이나에 체르노빌, 이탈리아에 피자 사진 낸 한국 방송사가 사과했다'는 기사를 통해 이 내용을 전했다. 가디언 홈페이지 캡쳐

MBC의 실수는 외신에도 실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우크라이나에 체르노빌, 이탈리아에 피자 사진 낸 한국 방송사가 사과했다'는 기사를 통해 이 내용을 전했다. 가디언 홈페이지 캡쳐

또 노르웨이 선수단 입장 때에는 연어, 이탈리아는 피자, 터키는 아이스크림 등 음식 사진을 국가 소개에 띄웠다. 루마니아는 '드라큘라' 사진을, 사모아는 사모아 출신 할리우드 배우 드웨인 존슨 사진을 쓰는 등 지나치게 단편적인 사례를 내세운 국가도 여럿이다. 스웨덴 소개는 '복지 선진국' 대신 '복지 선지국'이라고 오타를 냈다.

논란이 일자 MBC는 23일 중계방송 말미에 사과한 데 이어 24일 사과문을 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우크라이나에 체르노빌, 이탈리아에 피자'를 사용한 한국 방송국이 올림픽 중계에 대해 사과했다는 기사를 인터넷판에 실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MBC 올림픽 개막식 중계에 대한 조사를 해달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시청률 경쟁, 매번 바뀌는 인력… 실수 필터 못해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선거 개표방송 때처럼, 지상파 3사가 서로 재치있게 하려는 시도를 하려다 보니 황당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쓰면서 실수가 생긴 것"이라고 추정하며 "국제 행사에 참여한 각국을 대표하는 소개로 사건사고, 음식 등 너무 쉬운 접근만 생각한 측면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또 "시청자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교적 결례를 범할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민간 방송사의 실수지만, 우리나라가 외교적으로 쌓아둔 좋은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 있다는 측면에선 아쉬운 실수"라고 말했다.

방송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황용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보도국이었으면 사회적 의미 등을 고려해 이미지나 멘트 등을 걸렀을 수도 있는데, 주로 '재미'를 위주로 콘텐트를 만드는 스포츠국이다 보니 전 국민이 집중하는 올림픽 개막식에는 걸맞지 않은 가벼운 접근방식이 그대로 방송된 것"이라고 짚었다. 한규섭 교수는 "올림픽 같은 큰 행사는 이전에 해봤던 인력이 투입돼야 역량이 쌓이는데, 최근 MBC는 특히 주요 인력이 바뀌는 상황이 많아 업무 연속성이 떨어진다"며 "결국 예전에 했던 실수가 반복되고, 급하게 돌아가는 제작 상황에서 문제가 더 극명하게 노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MBC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도 '조세회피지로 유명',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 '오랜 내전으로 불안정', '살인적 인플레이션', '구글 창업자 결혼식 장소' 등 각 참가국을 폄하나는 자막을 사용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주의'를 받았다. 방송이 국제친선과 이해의 증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MBC "당사국 배려 부족, 변명 여지없는 잘못" 사과

MBC는 23일 중계방송 직후 사과방송을 한 데 더해 24일 공식 사과문을 통해 재차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자료 MBC

MBC는 23일 중계방송 직후 사과방송을 한 데 더해 24일 공식 사과문을 통해 재차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자료 MBC

이번 개막식 중계와 관련해 MBC는 24일 홈페이지에 국문·영문으로 "해당 국가 국민과 시청자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과문은 "개회식에 국가별로 입장하는 선수단을 짧은 시간에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로 준비했지만, 당사국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크게 부족했고 검수 과정도 부실했다"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자인했다.

또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영상 자료 선별과 자막 정리 및 검수 과정 전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엄정한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며 "나아가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 유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