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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아, 보고 있지?"…38세 김정환의 세 번째 올림픽

중앙일보

입력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을 수상한 뒤 기뻐하는 김정환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을 수상한 뒤 기뻐하는 김정환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펜싱 국가대표 김정환(국민체육진흥공단)은 1983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마흔을 앞뒀다. 한 차례 은퇴도 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딴 뒤 검을 내려놓았다. 그런 그가 올해 다시 올림픽 피스트에 올랐다. 자신을 '왕년에 펜싱 좀 했던 남자'로만 알고 있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제 아내는 남편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볼 것 같다. 김정환은 지난 24일 일본 도쿄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펜싱의 새 역사다. 그는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16 리우올림픽 개인전 동메달을 이미 갖고 있다. 도쿄 대회 동메달로 최초의 올림픽 3개 대회 연속 메달리스트가 됐다.

김정환은 지난해 9월 항공사 승무원 변정은(34) 씨와 결혼했다. 은퇴 후 인연을 맺은 변 씨와 1년 여 열애 끝에 평생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잘 몰랐다. 그냥 '사람 김정환'을 좋아했다. 안그래도 펜싱에 미련이 남았던 남편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정이 끓어올랐다.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을 딴 뒤 관계자와 기쁨을 나누는 김정환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을 딴 뒤 관계자와 기쁨을 나누는 김정환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후배의 자리를 빼앗는 건 아닌지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 사브르는 유독 세대교체가 더뎠다. 김정환의 빈자리를 메울 실력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 남자 사브르의 맏형은 결국 다시 검을 들었다. 달콤한 신혼 생활을 뒤로한 채 지루한 합숙 훈련을 시작했다. 김정환은 "혼자였을 때 나간 올림픽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준비하는 올림픽은 기분이 사뭇 다르더라. 훈련을 하면서 그 차이를 많이 느꼈다"고 했다.

펜싱은 순발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특히 사브르는 플레뢰, 에페와 달리 '베기'도 가능해 체력 소모가 유독 크다.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정환의 장점은 2021년에도 유효했다. 키(1m78cm)에 비해 긴 팔을 활용해 상대의 허를 찌르고 타이밍을 빼앗았다. 활력 넘치는 기합과 제스처로 경기 분위기를 주도했다. 세계랭킹 1위 오상욱(25·성남시청)과 8위 구본길(32·국민체육진흥공단)이 중도 탈락하는 동안, 15위 김정환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김정환(왼쪽)이 공격하는 모습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김정환(왼쪽)이 공격하는 모습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수 차례 고비도 겪었다. 준결승에서 자신보다 키가 12cm 큰 루이지 사멜레(이탈리아)를 만났다. 12-6까지 앞섰다가 연속 9점을 내줘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중엔 사멜레의 발을 밟아 발목을 다칠 뻔했다. 산드로 바자제(조지아)와 맞붙은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11-10에서 공격하려고 다리를 뻗다 결국 오른 발목이 꺾였다. 응급처치를 하고 경기를 재개했지만, 이번엔 상대가 휘두른 검에 뒤통수를 맞았다. 보호장비가 닿지 않은 부분이라 통증이 극심했다. 온 몸이 만신창이. 김정환은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세 번째 올림픽 메달을 손에 넣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아보고 싶었다"던 그가 결국 한국 펜싱에 새 길을 냈다.

3년 전의 첫 번째 은퇴는 스스로 결심했다. 두 번째 은퇴 시기는 혼자 선택할 수 없다. 김정환은 "은퇴 여부는 이제 아내와 상의하고 결정하겠다"며 웃었다. 그 전에 이뤄야 할 중요한 목표도 있다. 그는 오는 28일 후배 구본길, 오상욱, 예비 멤버 김준호(27·화성시청)와 함께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에 재도전한다. 맏형에게는 아내 곁으로 돌아가기 전에 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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