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벨리니의 ‘노르마’로 만나는 피카소의 입체주의 미술

중앙일보

입력 2021.07.25 11:00

[더,오래] 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11·끝)

한때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드루킹’이란 인물이 있었는데요, 드루킹은 온라인 게임(MMORPG)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나오는 ‘드루이드’ 중 ‘킹’이란 뜻입니다. 드루이드는 고대의 켈트족에게 지식과 지혜의 상징이었으며, 이들은 점술 등으로 신과 교통하는 제사장이나 재판관 등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구요. 이렇게 막강한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왕이나 부족장 같은 지도자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답니다.

1831년에 벨리니가 발표한 ‘노르마’는 바로 이러한 드루이드 교도와 관련된 오페라인데요, 로마 전성기의 갈리아 지방을 배경으로 순결해야 할 제사장인 노르마와 로마총독 폴리오네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막이 오르고, 사제들을 거느리고 등장한 노르마는 로마에 항쟁하려고 운집한 교도들을 진정시킵니다. 그녀는 ‘아직 전쟁의 계시는 없으며 로마는 안으로부터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신탁을 전하지요. 달이 떠오르자 아리아 ‘정결한 여신’을 부릅니다. 성악적으로 상당한 기교를 보여주는, 이 장엄한 아리아는 벨칸토 오페라 중 대표적인 아리아랍니다. 로마에 대한 항전을 원하는 자신의 교도에게 계시를 전하는 동시에 자신의 연인이자 두 아이 아빠인 로마 총독 폴리오네를 위해 평화를 기원하는 심정을 표현하는 등 복잡미묘한 노래이거든요.

한편 사제 신분으로 총독과 사랑에 빠진 아달지사는 총독이 로마로 복귀하면 같이 가자고 하자, 고민 끝에 동행하기로 약속합니다. 허나 신을 배신한 것에 고통스러워하던 아달지사는 믿고 존경하는 노르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게 됩니다. 자신도 같은 처지였으므로 아달지사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르마. 그녀의 고백을 들은 노르마는 아달지사를 용서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이와 행복하라며 격려까지 해줍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노르마는 그 상대가 총독임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집니다. 때마침 그가 나타나자, 자신을 버린 그를 격렬하게 비난하지요. 아달지사에게도 자신처럼 비참한 희생물이 되어 언젠가는 또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며, 비난을 담은 충고를 퍼붓습니다. 로마 총독이 아달지사에게 약속대로 같이 떠나자고 하나, 잔인하고 치명적인 사실을 모두 알게 된 그녀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배신당한 충격에 노르마는 잠든 아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하나, 차마 그러지 못합니다.

차라리 내가 내 손으로 아이들을... [사진 Wikemedia Commons]

차라리 내가 내 손으로 아이들을... [사진 Wikemedia Commons]

노르마는 아달지사를 불러 자신이 죽더라도 아이들은 보살펴 달라고 당부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달지사는 오히려 총독을 설득하여 아이들의 아버지로 돌아오도록 하겠다며 위로하지요. 연적이 된 여사제들이 서로 신뢰하며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노르마여, 보세요’가 감동적으로 울려 퍼집니다.

폴리오네가 다시 돌아오리라 믿으며 노르마는 태양이 다시 비추는 듯한 희망을 갖게 되지만, 아달지사의 노력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허사로 끝나버렸답니다. 이에 격노한 노르마는 성스런 징을 세 번 울리고 전쟁을 선포합니다. 총독이 잡혀오고, 그를 독대한 노르마가 아달지사를 신의 제물로 삼겠다고 하자 총독은 “나는 죽여도 좋으나, 그녀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노르마는 계율을 어기고 신성을 더럽혀 신이 노했다며 그 사제를 처형할 것이니 화형대를 준비하라고 군중에게 지시합니다. 하지만 노르마는 폴리오네의 변심이 서러울 뿐, 아달지사의 순수한 사랑을 처벌할 수 없답니다. 마침내 처형할 사제가 노르마 자신이라고 선언하고 맙니다.

죽음을 각오한 노르마가 폴리오네에게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약속해달라며 변함없이 사랑을 노래하고, 아버지에게는 아이들을 지켜달라고 당부하지요. 폴리오네는 노르마의 죽음을 각오한 사랑에 감동하여 그녀에게 용서를 빌고, 그녀의 숭고한 사랑을 칭송하며 같이 죽기를 각오합니다.

마침내 노르마는 불길이 치솟는 화형대로 뛰어 들고, 폴리오네는 헌신적이고 숭고한 사랑 앞에 용서를 구하며 마지막 길을 함께 하지요.

오페라 ‘노르마’에서 사제 노르마는 연적인 아달지사를 화형으로 처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녀를 처형하는 것은 곧 자기를 배신하고 아달지사를 사랑하는 폴리오네에게 복수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불구덩이에 던집니다. 소중한 것을 버리고 얻은 사랑처럼, 20세기 초 미술계는 수백 년 동안 소중하게 지켜온 회화의 형태를 버리고 새로운 구성을 얻게 되었죠. 바로 대상을 달리 보고 주관대로 짜맞춘 ‘입체주의(Cubism)’랍니다.

피카소는 마티스와 함께 20세기에 새로운 미술을 연 최고의 화가랍니다. 마티스가 색을 해방시키고 새로운 채색의 길을 열었다면, 피카소는 형태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화가이지요.

 ‘아비뇽의 처녀들’(1907), 피카소. [사진 Flickr]

‘아비뇽의 처녀들’(1907), 피카소. [사진 Flickr]

위 작품은 전통적인 형태를 버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최초의 걸작이며 현대미술을 창조한 근원이기도 하지요. 대상을 옆으로 보고 앞으로 본 즉 시점을 달리한 여러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아 큐빅처럼 보여주고 있답니다.

가운데 여인은 얼굴은 정면을 향했는데 코는 옆으로 그려져 있구요. 오른쪽 위의 여인의 검은 눈은 정면을 쳐다보는데 다른 쪽 눈은 옆을 보고 있으며, 우측 아래 여인은 얼굴은 정면을 보고 있으나 돌아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도저히 정상적자세라 할 수 없죠. 이는 복수의 시점에서 본 여러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았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왼쪽 여인의 오른쪽 다리는 마치 깁스라도 한 듯이 조각난 색면을 이어 붙인 것도 보이시지요?

이후 20세기의 미술계를 주도하는 추상미술이 봇물 터지듯 세상에 쏟아져 나오며 대세를 이루었고, 화가는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추상기법으로 제시하고 관객은 온전히 자신만의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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