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이순신의 거북선도 당했다, 5000명 쓰러뜨린 '숨은 적' [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중앙일보

입력 2021.07.25 06:00

최근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졌다. 창문도 없는 비좁은 함정 내부에서 순식간에 전파됐다. 밀폐 구조가 집단 감염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난중일기 “병에 걸려 고통 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함정은 감염에 취약
이번엔 역병 알면서도 해이한 대응
장병 아끼지 않은 지휘부 무한책임

함정 내 감염 취약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전염병에 걸려 고초를 겪었다. 거북선 내부 공간도 비좁아 질병이 쉽게 번졌다. 이처럼 군대와 전쟁은 전염병에 취약하다. 6·25 전쟁 기간에 새로운 질병이 발견되기도 했다.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최수종. 사진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최수종. 사진 KBS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3월 충무공은 『난중일기』에 “남해에 전염병이 번졌을 때 병에 걸려 12일 동안이나 고통을 당했다”고 적었다. 1594년 4월 당시 3도 수군 병력은 총 2만 1500명인데 이 중 5663명이 전염병에 걸렸다고 기록됐다.

난중일기와 조선왕조실록 등 당시 문헌에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조선 수군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질병으로 생사의 기로를 넘었다는 기록이 꽤 많이 남겨져 있다.

조선 수군에서 수인성 전염병인 이질이 번졌고 말라리아(학질) 때문에 피해를 키웠다. 신장 손상과 혈소판 감소 등 다양한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질병이다. 수군의 생활 공간인 거북선과 전선(전투함선) 내부는 비좁고 밀폐된 공간이다. 게다가 당시는 꽤 불결한 환경이라 감염률이 높았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은 비좁고 불결한 거북선과 판옥선 내부에서 생활했다. 당시 모습을 재연한 드라마 장면. 사진=KBS 드라마 '징비록' 영상캡처

임진왜란 당시 수군은 비좁고 불결한 거북선과 판옥선 내부에서 생활했다. 당시 모습을 재연한 드라마 장면. 사진=KBS 드라마 '징비록' 영상캡처

당시 수군은 면역력이 부족해 질병에 더 취약했다. 1594년부터 시작한 대기근이 전염병 피해를 키웠다.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 재직 시설 작성한 장계의 초고인 『임진장초』는 “군량이 부족하여 계속 굶게 되고 굶던 끝에 병이 나면 반드시 죽게 된다”고 기록했다. 왜군 진영에서도 감염병이 발생해 큰 피해를 줬다.

21세기 세계최강 미군도 전염병에 쓰러졌다.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은 지난해 3월 승조원 1300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장교 1명이 합병증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브렛 크로지어 함장이 “지금은 전시(wartime)가 아니다. 승조원들이 배 안에서 이렇게 죽어갈 이유는 없다”며 하선 요청을 했지만 군 지휘부가 이를 거절해 사태는 악화했다.

지난 5월 포츠머스 왕립 해군기지를 출항해 한국으로 향하던 영국의 항모 퀸 엘리자베스함에서도 승조원 100여명이 감염됐다는 소식이 지난 14일 전해졌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지만 코로나 침투를 완벽히 막아내진 못했다.

영화 '명량' 출연진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재연했다. 중앙포토

영화 '명량' 출연진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재연했다. 중앙포토

집단생활 군대는 전염병에 취약

역병은 군대가 가장 취약하고 전쟁 중 많이 발생했다. 고려 시대 475년간 36회, 평균 12.7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전쟁 기간에만 26번 창궐했다. 전시에 대규모 병력이 모여들면서 집단 감염의 배경이 됐다.

군대는 장기간 집단생활을 하는데 전쟁 중에는 각종 부상병과 전사자 시체도 곁에 쌓여 더 취약하다. 영양 부족과 피로가 누적돼 면역력은 극도로 떨어진다. 전염병 한가운데에서 적의 칼과 전염병을 모두 피해 생존하는 건 기적과 같았다.

해군 특임단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함정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해군 특임단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함정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전쟁터에는 당시 유행하는 여러 질병이 모여든다. 660년 6월 신라와 당나라 군대 15만 명은 백제 사비성 앞으로 집결했다. 이때 나당 연합군 진영에서 콜레라ㆍ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했다.

중증의 콜레라 감염자는 4~12시간 만에 쇼크에 빠지고 치료하지 않으면 수일 내에 감염자의 50%가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대규모 군대가 모여들면서 사비성 앞 백마강 물이 오염돼 전염병을 옮겼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조선판 사극 '킹덤'의 좀비 떼 모습. 드라마 속엔 의문의 역병에 걸린 것으로 묘사된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제작한 조선판 사극 '킹덤'의 좀비 떼 모습. 드라마 속엔 의문의 역병에 걸린 것으로 묘사된다. 사진 넷플릭스

그해 9월 철군하던 신라군은 신라 내부에도 전염병을 가져왔다. 특히 ‘마마 귀신’으로 불리는 두창 바이러스 감염 피해가 극심했다. 호흡기와 피부 분비물로 전염되며 공기로도 쉽게 전파됐다.

천연두는 당나라 군대가 사비성 앞에서 신라군에 전파했다. 당나라에선 한반도 출병을 앞둔 652년부터 이미 질병 유행이 시작된 기록이 있다. 신라군은 백제를 명말시켰지만 치명적인 독을 안고 돌아온 것이다.

한국전쟁 중 신종 바이러스 발견도

1950년에 시작한 6·25 전쟁 당시에도 수인성 질병과 결핵 등이 확산됐다. 특히 유엔군에서 출혈성 발열환자가 약 3200명 이상 발생하면서 수백명이 사망해 큰 피해를 줬다.

1951년 1월 한국전쟁에 참전한 인도군이 부상자 치료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AP

1951년 1월 한국전쟁에 참전한 인도군이 부상자 치료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AP

당시 설치류(쥐)가 배출한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 쉽게 전파됐다. 참호를 파고 생활하는 군인은 쥐가 뿌려 놓은 배설물과 타액에 쉽게 노출된다. 다행히 코로나19와 달리 사람 간 전파는 없다.

처음엔 한국형 출혈열로 불렸지만 1976년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했던 한탄강의 이름을 붙여 한탄 바이러스로 명칭을 바꿨다. 이후 198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증후군출혈열(HFRS)로 질병명을 확정했다.

지금도 국내에서 HFRS 환자는 매년 400여명 정도 발생하지만, 효과적인 치료제는 아직 없다. 급성 쇼크와 급성신부전으로 악화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다만, 군에서 일부는 백신을 접종해 감염을 예방하고 있다.

청일전쟁 당시 청군을 참수하는 일본군. 중앙포토

청일전쟁 당시 청군을 참수하는 일본군. 중앙포토

대동강에선 반세기 전 청일전쟁 시기에 질병이 크게 번졌다. 1894년 9월 평양 교전에서 일본군에 패배한 청나라 기병대 시체가 대동강을 떠다녔다. 유일한 수원지가 오염돼 역병이 창궐했다. 660년 사비성 앞에서 오염된 백마강 때문에 나당 연합군이 질병에 쓰러지고도 1000년을 훌쩍 지났는데 달라진 게 없었다.

또한, 이가 물어 세균을 옮기는 발진티푸스도 심각했다. 중추신경계 합병증이 나타나고 치료받지 못하면 감염자의 40%가 사망하는 심각한 질병이다. 일본군 전체 사망자 1만 3000여명 중 전사자는 1500여명에 그쳤다. 대다수 사망자는 전염병과 질병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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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회군’ 누가 책임져야 할까

지난 20일 오후 청해부대 장병을 태운 버스가 성남 서울공항을 빠져나와 의료 시설로 출발하고 있다. 이날 버스에 탄 청해부대 장병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뉴스1

지난 20일 오후 청해부대 장병을 태운 버스가 성남 서울공항을 빠져나와 의료 시설로 출발하고 있다. 이날 버스에 탄 청해부대 장병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뉴스1

시대가 변했다. 군 당국은 청해부대에서 코로나19가 번지자 나흘 만에 군 수송기를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 장병 모두를 귀국시키는 ‘오아시스’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는 어려운 여건에도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능력도 그만큼 갖추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아덴만 회군’의 발생 원인을 꼼꼼하게 따져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지난 22일부터 이번 집단 감염의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집단 감염 사태는 코로나19 위기가 심각한지 알면서도 장병의 안전과 군사 태세 유지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필요하다면 엄중한 문책으로 군 기강을 세워야 한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칼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위가 낮은 청해부대 장병이 책임의 무게를 떠안으면 안 된다. 권한을 더 많이 가진 군 지휘부가 성찰을 넘어 직을 내려놓는 결단까지 고민해야 한다. 과실이 크다면 처벌도 감내해야 한다.

칼자루를 쥐었다고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칼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코로나19 위협에 노출된 장병이 아니라 이런 사태를 막지 못한 군 지휘부에 무한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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