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이름 못넣는다" 30년간 퇴짜…양재시민의숲 무슨일

중앙일보

입력 2021.07.25 06:00

업데이트 2021.08.16 18:07

지난해 7월 8일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에서 시민들이 우거진 나무 터널 아래 산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7월 8일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에서 시민들이 우거진 나무 터널 아래 산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울시는 최근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시민의숲 명칭을 '매헌 시민의 숲'으로 개정하는 데 대한 시민 의견을 수렴했다. 매헌(梅軒)은 항일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의 호다. 사단법인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측은 30년 넘게 공원 명칭 변경을 시도했지만 여러 이유로 그간 번번이 무산됐다.

서울시 여론조사 완료…'2299명' 투표

서울시 엠보팅 사이트에서 지난 5~20일 진행된 '시민의숲 공원명칭 개정에 대한 시민선호도 조사'. 보름간 2300명 가까운 시민이 투표했다. [엠보팅 사이트 캡처]

서울시 엠보팅 사이트에서 지난 5~20일 진행된 '시민의숲 공원명칭 개정에 대한 시민선호도 조사'. 보름간 2300명 가까운 시민이 투표했다. [엠보팅 사이트 캡처]

서울시는 “지난 5~20일 서울시 엠보팅 사이트를 통해 '시민의숲 공원명칭 개정에 대한 시민선호도 조사'를 진행했다”고 24일 밝혔다.

서울시는 투표 취지에 대해 “기존 시민의숲 명칭에 매헌을 명기해 조국 광복을 위해 몸바친 윤봉길 의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원 인근에 매헌 기념관, 매헌 동상, 매헌 숭모비 등이 설치된 데다 주요 시설물이나 지명에 매헌이 들어가는 만큼 명칭 변경 자체엔 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변경 절차까지 간단한 건 아니다. 윤봉길기념사업회 측은 이 일대에 윤봉길 기념관을 준공한 1988년부터 수차례 공원 명칭을 바꾸려고 시도해왔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명칭을 바꾸려면 자치구, 서울시 지명위원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통과하지 못해서다. 지명위원회에선 전문가들이 공간정보법과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표준화 편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윤봉길 기념사업회, 30년간 고배 마신 이유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시민의숲 내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모습. 뉴스1.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시민의숲 내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모습. 뉴스1.

기념사업회가 고배를 마신 이유는 다양했다. 지명위원회가 2002년 ‘탄생 100년이 안 된 인물의 이름을 공공시설에 명명할 수 없다’는 규정을 들어 기념사업회의 요구를 반려한 게 대표적이다. 현재는 '사후 10년'으로 공공시설 명명 원칙이 바뀐 데다 윤 의사 탄생(1908년)으로부터도 113년이 지났다. 2008년에는 서초구에서 "일부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명칭 변경에 대한 반대 의견을 담은 공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의 이름을 공공시설에 붙이는 건 세계적 추세라는 입장이다. 윤 의사의 '상해의거' 배경이 된 홍커우공원은 1988년 중국 문호인 루쉰(魯迅)의 이름을 따 '루쉰공원'으로 바뀌었다. 미국 노스다코다 주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국립공원 역시 제 26대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인명을 공원 이름으로 했다. 강남구 도산공원, 남산 백범광장, 통영의 이순신 공원처럼 국내·외 사례가 적지 않다는 주장이다.

현장 여론·설문조사→지명위원회 거쳐야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4월 29일 오전 서울 양재동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윤봉길의사 의거 89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4월 29일 오전 서울 양재동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윤봉길의사 의거 89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엠보팅에 참여한 한 시민은 “그냥 양재 시민의 숲이 좋다”며 “용산구 효창원에도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가 있지만 효창공원이라 하고, 남산공원에도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지만 남산공원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명칭 변경에 찬성 의사를 밝힌 B씨는 “(기존) 시민의 숲도 좋지만 매헌이라는 명칭이 들어가면 윤 의사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삶도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 같다”며 “명칭 개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일까지 서울시 엠보팅에는 총 2299명이 의견을 모았다. 투표를 주관한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 관계자는 “엠보팅에 이어 실제 공원을 이용하는 분들에 대한 현장 여론조사, 설문조사 등 절차를 추가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엠보팅 결과가 유일한 지표는 아니다”고 말했다.

윤봉길 기념사업회 측은 지난 4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1943년 전후 처리를 논의한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독립할 수 있도록 선언문에 명기하게 된 계기가 바로 상해의거”라며 “매헌 공원으로 명칭을 바꿔 (이 곳이) 나라사랑, 애국역사 벨트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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