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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에 감읍하길 바라나, 고래밥 격려 받은 군인들의 SOS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7.25 05:00

업데이트 2021.07.2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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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사회2팀장의 픽: “Save Our Soldiers”

SOS는 조난 또는 구조 신호로 통용되는 표현입니다. 모스 신호로 표현된 알파벳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전화기가 나오기 전인 무선 전신의 시대에 미국 발명가 모스는 점과 선의 배합으로 문자나 기호를 나타내는 무선 신호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2019년 여름에 흥행한 재난영화 ‘엑시트’에서 SOS 신호가 등장했죠. 영화 속에서 독가스에 중독될 위기에 처한 시민들이 건물 옥상에서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라고 소리 지르는 명장면이 선명합니다. 모스 신호 따따따(...)는 S, 따 따 따(---)는 O입니다.

영화 '엑시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엑시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SOS를 조난 신호로 쓴 건 독일이 처음이었는데, 1906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무선전신협약에서 국제 조난 신호로 채택돼 1908년부터 7월 1일부터 국제적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다른 국가 신호보다 가장 쉽고 빠르게 타전할 수 있고 헷갈리지 않는 조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군에서 터져 나오는 SOS  

지금의 SOS는 100년도 넘은 모스의 체계보다는 그냥 위기와 구조의 메시지 덩어리가 됐습니다. 영어 약자로 이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Save Our Ship”, “Save Our Souls” 등의 표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SOS가 갑자기 떠오른 건 최근 우리 군인들이 사회로 보내는 메시지가 그것과 닮아서입니다. 사상 초유의 감염병 사태로 조기 귀국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의 ‘지옥’ 같았던 상황이 알려진 뒤 한 확진 장병이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이런 소식을 전했습니다. 국방부가 지난 20일 고래밥과 아이비 등 과자가 든 격려품을 보냈다면서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 서럽다”고 분노했습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 명의로 보낸 격려품 사진을 공개하면서 “목이 너무 아파서 음식 삼키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팠고, 현재도 미각과 후각이 없는 상태여서 맛도 못 느끼는데 이런 걸 주면 뭐하나 싶어서 헛웃음만 나왔다”고 했습니다.

국방부가 지난 20일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에게 격려품이라며 '과자 한 상자'를 보냈다. 국방부가 보낸 과자에는 고래밥·미쯔 등 시중에서 파는 과자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사진=청해부대 34진 장병]

국방부가 지난 20일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에게 격려품이라며 '과자 한 상자'를 보냈다. 국방부가 보낸 과자에는 고래밥·미쯔 등 시중에서 파는 과자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사진=청해부대 34진 장병]

“서러워서 직업 군인 못하겠다”

그 장병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대가가 이거인가 싶었다. 서러워서 직업 군인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을 방치하게 된 경위, 이후 대처하는 모습, 먹지도 못할 과자를 담아 보낸 ‘격려’까지 개선되는 게 없는 군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는 얘기입니다. 그의 하소연은 마치 “Save Our Soldiers”라는 의미의 SOS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국가 안보와 국민의 SOS를 살펴야 할 군에서 오히려 국민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서 한 군의관도 후배 기자에게 e메일을 통해 비슷한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는 “국방부 예하 군 병원에 일부 군의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못 하고 생활치료센터 등 코로나19 관련 업무 파견에 나가거나 군 병원 선별진료소 근무를 서고 있다”고 했습니다.

장군님 격려품에 감읍하길 바라나 

30대의 군의관 중 지난 3월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대상자였다가 각종 진료와 당직ㆍ휴가 등의 사정으로 미뤘다가 다시 백신을 맞지 못한 이들이 반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AZ 백신 접종 연령을 상향 조정하면서 ‘30세 이상 군의관’이 먼저 맞을 수 있는 백신이 없는 상태라는 겁니다. 각 지역 생활치료센터와 예방접종 센터로 파견을 가면서도 정작 백신은 전 국민 연령대별 접종 시기에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군의관의 항변은 “Save Our (army) Surgeon”이라는 또 하나의 SOS인 셈입니다.

정부와 국방부는 우리 장병들이 사회로 보내는 SOS를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까라면 까고, 장군님 행차하면 당연히 대청소하던 군인들이 아닙니다. 조국을 지키는 충성심과 사명감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자부심을 느끼는 게 공정하다고 여기는 MZ세대 군인의 합리적인 항명입니다. 영혼 없는 보여주기는 군의 기강만 갉아먹을 뿐입니다. MZ세대 군인은 합리적이고 주도면밀한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군님 격려품 하나에 감읍하는 군인은 북한에서나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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