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오빠 만나볼래?" 초딩 모인 '제페토'에 나타난 그놈

중앙일보

입력 2021.07.24 21:52

제페토에서 교실 테마로 꾸며진 장소에 모인 아바타들. 사진 네이버Z

제페토에서 교실 테마로 꾸며진 장소에 모인 아바타들. 사진 네이버Z

“여소(여자친구 소개) 받고 싶었는데, 너 진짜 이렇게 생겼어?”

성인남성이 13세에 메시지
메타버스 '검은 손길' 주의보

초등학생 A(13)양은 얼마 전 메타버스 SNS ‘제페토’에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오빠랑 만나볼래?”라는 제안도 했다. A양은 아이디에 자신의 출생연도를 적어둔 데다, 친구들과 교실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미성년자라는 유추가 가능한 상태였다. A양은 “(그 남성이) 자기 마음대로 저를 팔로우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연락처도 계속 물어봤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콕’ 기간이 늘어나면서 10대들의 새로운 소통 창구로 자리 잡은 ‘메타버스’에 비상등이 켜졌다. 최근 청소년 외에 기업인, 인플루언서 등 성인 이용자가 활발하게 유입되면서 자칫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누적 가입자만 2억명에 달하는 메타버스 메신저인 제페토의 경우 이용자의 80%가 10대 청소년이다. 6개월째 제페토를 이용 중인 초등학생 B(11)양은 “반 여자애들 12명 중 9명은 제페토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상세계에서)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도 보러 가고,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면 해시태그를 타고 더 많은 팔로워를 모을 수 있어서 재밌다”고 했다.

메타버스, 청소년 범죄 사각지대 우려

문제는 10대와 성인이 익명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만큼, 미성년자를 노리는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트위터나 랜덤채팅 앱 등 익명성을 토대로 한 플랫폼이 미성년자 대상 범죄의 사각지대라는 게 증명됐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맘카페 회원은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제페토에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음성으로 이야기도 하고, 저희 집안을 찍어서 배경으로 올려놨다”며 “이러다가 위험한 일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적었다. 여기에는 “n번방 사건도 있고, 나쁜 방향으로 이용될까봐 (아이에게 제페토를) 금지시켰다”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자제시켰다”는 댓글이 달렸다.

앞서 미국에서는 메타버스 열풍을 이끈 ‘로블록스’에서 성인 이용자가 성관계 상대를 찾는 등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영국에서는 23세 남성이 로블록스에서 7~12세 아동에게 접근을 시도해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제페토 내에서 한 여성이 남자 고등학생을 쫓아다니며 말을 거는 모습. 본인 실제 얼굴을 바탕으로 아바타를 만들기 때문에 모자이크 처리 했다. 독자 제공

제페토 내에서 한 여성이 남자 고등학생을 쫓아다니며 말을 거는 모습. 본인 실제 얼굴을 바탕으로 아바타를 만들기 때문에 모자이크 처리 했다. 독자 제공

“감시 체계, 실명제 필요”

랜덤채팅 앱과 트위터, 텔레그램 등 익명성이 보장된 플랫폼이 보편화하면서 미성년자 대상 범죄는 점점 발전해 왔다. 여성가족부의 ‘2019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건만남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87.2%가 온라인 채팅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성착취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n번방 사건 이후 ‘n번방 방지법’이 재·개정됐지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폭력과 성착취물의 유통은 계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병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메타버스의 이용자 수가 증가하면서 메타버스 내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무게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메타버스 이용자는 아바타가 본인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행위나 언행을 하게 되면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업체가 자체 감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n번방 사건도 그렇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메타버스 내 성범죄들도 사실상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나인 줄 모르겠지’라는 인식에서 온다”며 “업체 차원의 가이드라인과 이를 규제ㆍ통제할 수 있는 기관이 명확하게 지정돼야 한다”고 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청소년 조건 만남이 많이 이뤄졌던 국내 채팅앱도 초반에 수익구조로 인해 범죄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실명인증 제도를 도입할 경우 외국 채팅앱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제페토를 만든 네이버Z의 한 관계자는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되거나 조작된 아바타 콘텐트를 포함해 미성년자에 대한 학대ㆍ착취 또는 알몸 노출을 묘사하는 모든 콘텐트는 플랫폼 내 전송을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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