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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입 잘린채 버려진 유기견 순수…1년째 '범인' 쫓는 그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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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와 입이 잘린 채 발견된 유기견 순수가 수술을 마친지 2개월이 지났을 때 찍은 사진. 사진 김연경씨 제공

코와 입이 잘린 채 발견된 유기견 순수가 수술을 마친지 2개월이 지났을 때 찍은 사진. 사진 김연경씨 제공

"순수는 저의 가족이 되기로 했습니다."

개인 동물권 활동가 김연경(32)씨가 지난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글이다. 올해 나이 두 살, 순수가 김씨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이 김씨에게 오기까진 1년 이상 지난한 고비를 거쳐야 했다.

순수는 지난해 5월 4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지역에서 코와 입이 잘린 채 발견된 유기견이다. 발견 당시 몸무게는 2.2㎏, 나이는 한 살로 추정됐다. 김연경 씨는 같은 달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를 통해 처음 순수를 알게 됐다. 사진 속 순수는 코와 입이 잘려있고, 목에 조여진 케이블 타이가 살을 파고든 상태였다.

김씨를 처음 만난 날, 순수는 코가 안쪽까지 망가져 입으로만 숨을 쉬며 몸을 가파르게 들썩였다고 한다. 김씨가 다녀온 동물병원에 따르면 순수가 학대당하지 않았다면 얼굴이 훨씬 예뻤을 것이라고 한다. 펫샵에서 인기 많은 흰색 몰티즈 품종 견이다. 하지만 끔찍한 학대를 받은 존재는 외모는커녕 생존 자체를 위협받았다.

학대 소식에 1600여만원 후원…수술 성공적

김씨는 아픈 순수의 '임시보호자'를 자처했다. 점차 흉터가 아물면서 막힌 콧구멍을 뚫는 수술이 가능해졌다. 지난해 8월 동물병원에서 8차례 수술을 받은 끝에 순수의 콧구멍이 뚫렸다.

수술 뒤엔 많은 이의 도움이 있었다. 김씨가 인스타그램에 순수가 학대당한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하자, 이틀 새 후원금이 1000만원 넘게 모였다. 김씨에 따르면 수술을 마칠 때까지 모인 후원금은 1600여만원. 21일 기준 수술비와 약값을 빼고 남은 금액은 869만6691원이다. 김씨는 "곧 있을 마지막 검진 후, 남은 후원금을 모두 동물단체에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치료를 거의 마무리한 순수는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다. 약 1년간 순수를 입양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다들 가족 동의를 얻지 못하거나 입양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가족 찾기가 번번이 무산되면서 결국 김씨가 순수를 정식 입양했다.

지난 12일 김연경씨가 순수를 입양한다며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사진 김씨 제공

지난 12일 김연경씨가 순수를 입양한다며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사진 김씨 제공

범인 아직 못 찾아…현상금 '100만원' 걸어

김씨는 1년 넘게 순수를 학대한 가해자를 쫓고 있다. 지난해 5월 "동물 학대 가해자를 잡아달라"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최초 목격자인 한국외대 학생이 서울시청에 신고했지만, 서울시가 별도 조처를 하지 않아 경찰 신고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아직 범인을 찾지 못했다. 신고가 늦는 바람에 인근 CCTV 등 증거 확보가 쉽지 않아서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추적할 방법이 없어 수사는 잠시 멈춰있는 상태"라면서도 "목격자가 나타나거나 새로운 단서가 잡힌다면 곧바로 수사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범인 찾기가 쉽지 않자 김씨는 지난해부터 소셜 미디어를 통해 현상금까지 걸고 있다. 그는 가해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사람에겐 사비로 100만원을 주겠다고 밝혔다.

분양절차법 청원 올리자 6만명 동의

한편 김씨는 지난 2월 반려동물 분양 절차를 법적으로 강화해달라는 청와대 청원 글을 올려 6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분양을 원하는 사람은 반려동물 관련 강좌를 수료하고, 분양업자에겐 자격 제도를 도입하자는 취지다. 그는 "국회나 시민단체에서의 호응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김성호 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반려동물 입양 문턱이 낮다 못해 없는 수준"이라며 "구체적인 조항은 추후 정해야겠지만, 최소한 법안 논의라도 시작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김연경씨가 반려견 폴이, 순수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김씨 제공

지난 6월 김연경씨가 반려견 폴이, 순수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김씨 제공

"부정적 반응 이해, 강아지 구조 계속할 것"

물론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김씨는 "나도 처음부터 강아지를 사랑하진 않았기 때문에 유기견 구조 활동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겠냐', '억지 부리지 말라'는 식의 안 좋은 댓글도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세상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10년, 20년을 바라보고 조금씩 동물과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것뿐이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그동안 순수를 포함해 11마리의 강아지를 구조했다. 아픈 경험을 극복한 순수의 최근 상태는 어떨까.

"이제 순수는 산책할 때마다 빠르게 달릴 수 있어요. 다른 개들과 있을 때 씩씩하게 놀기도 하죠. 이달 말쯤 동물병원을 찾아 수술 경과를 보기로 했는데, 그 날이 마지막 병원 방문이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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