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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영끌투자’?…‘집토끼’ 퇴직연금 굴리는 게 먼저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87)

얼마 전 증권사 퇴직연금사업팀의 책임자를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아주 오래된 지인이다. 퇴직연금 도입 초기인 2005년 초에 만났으니 16년도 넘게 퇴직연금을 서로 의논하고 토론하는 막역한 사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저의 지난 1년간 퇴직연금 수익률이 얼마인지 아세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불쑥 자신의 계정 화면을 보여주는데 1년 수익률이 자그마치 42%였다. 과거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대단히 놀라운 수익률임이 틀림없다.

가입자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은 가입자 교육과 디폴트 제도의 도입, 이렇게 두 가지로 추려진다. 하지만 이들이 명쾌한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사진 piqsels]

가입자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은 가입자 교육과 디폴트 제도의 도입, 이렇게 두 가지로 추려진다. 하지만 이들이 명쾌한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사진 piqsels]

그 팀장의 수익률이 탁월한 이유를 찾자면 여러 가지겠지만, 뭐니 뭐니해도 그 팀장의 자산운용 능력이 첫째로 꼽힌다. 당연히 증권사에서 투자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해 왔고 퇴직연금제도 도입 때부터 관련 업무를 해온 터이니 퇴직연금 자산운용에 관한 한 최고의 실무 능력을 갖췄을 법하다. 둘째는 시장 상황일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증시 상황은 수익률을 올리기 좋았다.

그런데 만남의 말미에 그 팀장이 한가지 던진 말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가입자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가지는 뭘까요?” 그는 현재 퇴직연금 마케팅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런 질문을 받으니 우선 답답해졌다.

“그러니 가입자교육부터 바로 잡아야지요”라는 말이 바로 목까지 올라왔으나 또 가입자교육 타령이냐 할까 봐 참았다. 또 “디폴트제도(사전지정운용제도)를 하루 속히 도입해야지요”라고 답하려는 것도 참았다. 이것도 명분은 가입자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속내는 철저하게 퇴직연금사업자의 업권 이익보호이기 때문이다. 결국 잠깐이지만 침묵이 흐르고 그냥 웃었다.

아래 ‘운용방법별 연간수익률 추이’에서 실적배당형 상품 수익률을 보면 2020년은 10.67%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3.82%였다. 반면 원리금보장상품 수익률은 1.56~1.68%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전체 수익률은 1.01~2.58%로 나타났다.

운용방법별 연간수익률 추이(%) [자료 김성일]

운용방법별 연간수익률 추이(%) [자료 김성일]

결론은 뻔하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 것인가 그냥 원금보장에만 만족할 것인가다. 그런데 원금보장 만족에는 한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물가상승률로 인해 수익률이 온전히 보전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는 계속 하락한다는 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선택은 퇴직연금 가입자의 몫이다. 다만 그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게 절대 쉽지 않다. 제도 도입 이래 진취적인 제도 진화를 찾기 힘들다.

다시 그 팀장의 대화로 돌아가서 42%의 수익률은 매우 부럽기 그지없다. 그도 2018년에는 아마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투자란 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 수익률은 우상향한다는 것을 그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위의 〈그림〉에서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자산을 운용한다고 그 팀장처럼 42%가 넘는 수익률을 올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지난 1년간 42%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가입자도 분명 있을 것이고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극히 예외적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낸 가입자도 있을 것이다. 그게 투자고 자산운용인 것이다. 이 점을 가입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행동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허들이 바로 지식과 정보 부족이다. 그럼 퇴직연금 이해 당사자들의 역할은 자명하다. 가입자에게 지식을 주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게 퇴직연금이 노후복지 수단으로 기능하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이낸스(Z+finance)’ 시대란 말이 있다. 이른바 ‘MZ’세대의 ‘Z’와 영어 ‘finance’의 우리말 발음을 합성한 말이다. 코로나 시대에 MZ세대는 투자자산을 레버리지에 의존해 늘리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자이낸스란 신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영끌 대출’로 주식과 암호화폐 상승장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듯이 2021년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20·30세대 가계대출 잔액은 1년간 44조7000억원 증가했다. 전체 가계대출 증가분(88조1600억원)의 50.7%를 인구의 35%가량인 MZ세대가 차지한 것이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MZ세대가 주로 활동하는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금융사업을 접목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MZ세대는 너무 큰 것을 단시간 내에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MZ세대는 저축을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여긴다. 대신 투자를 한다. 그런데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하는 것만 투자가 아니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차곡차곡 쌓이는 퇴직적립금을 활용한 투자도 투자다. 오히려 퇴직연금 자산운용을 기본으로 하고 그다음 투자를 모색하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집토끼가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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