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60대 고무장갑 낄 때…옆가게는 20대 딸 별점관리

중앙일보

입력 2021.07.24 08:00

업데이트 2021.07.24 11:51

"배달의 민족 주문", "쿠팡이츠 주문"
지난 19일 오전 11시 20분쯤 서울시 강서구 화곡본동시장의 한 반찬가게에서는 주문을 알리는 배달 알람 소리가 계속됐다. 점심 시간대를 앞둔 10분 남짓 사이 12번의 주문이 들어왔다.

가게 주인 한지원(52)씨는 주문에 맞춰 분주하게 도라지와 시금치 등을 일회용 용기에 담아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가 간 곳은 시장 중앙에 있는 '동네시장 장보기' 배송 센터. 배달 노동자가 시간대별 상품을 취합해 주문자에게 배송한다. 한씨는 "오전 매출이 30만원 정도 된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매출이 늘어난 한씨의 가게는 확장 공사 중이었다.

반찬가게 주인 한지원씨가 시장 중앙에 있는 '동네시장 장보기' 배송센터에 배달 상품을 넣고 있다. 이영근 인턴기자

반찬가게 주인 한지원씨가 시장 중앙에 있는 '동네시장 장보기' 배송센터에 배달 상품을 넣고 있다. 이영근 인턴기자

매출 증가의 일등공신은 한씨의 딸 편윤선(24)씨다. 어릴 적부터 전화 주문보다 플랫폼을 통한 주문에 익숙한 편씨는 각종 앱 등 플랫폼 대응 업무를 책임진다. 별점 테러나 댓글 대응과 관리 등이 딸의 몫이다. 딸 편씨는 "엄마가 별점이나 악성 댓글 등에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이용자와 소통은 제가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19 상황이 계속되며 전통시장을 찾는 시민들은 줄었지만, 상인들은 비대면 시대 생존을 위해 온라인 배달 플랫폼에 뛰어들고 있다.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뿐 아니라 포털인 네이버도 '동네시장 장보기' 서비스를 출시했다. 화곡본동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동네시장 장보기' 서비스를 통해 하루 평균 200여건의 주문이 들어오고 올해 상반기 약 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고령 상인 대응 어려워, 전통시장도 '디지털 격차'

배달 노동자가 신영시장의 한 치킨집에서 배달 상품을 기다리고 있다. 이영근 인턴기자

배달 노동자가 신영시장의 한 치킨집에서 배달 상품을 기다리고 있다. 이영근 인턴기자

하지만 모두가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앱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상인들, 스마트폰과 앱 활용에 익숙한 자녀가 곁에서 도와주지 못하는 이들은 옆 가게의 성공을 남 일처럼 바라볼 뿐이다. 배달 앱에서 이루어지는 마케팅 경쟁이나 가게 평판에 영향을 주는 리뷰 관리, 배달 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돌발 상황들을 이들이 하나하나 직접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시장에서 반찬을 파는 고말순(68)씨는 "동네시장 장보기 입점해 매출이 소폭 오르긴 했지만 20대 자녀들이 돕는 가게를 따라가긴 어렵다"고 했다. 30년간 영등포구 대림 중앙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한 60대 여성 김모씨는 "젊은 사람들이 온라인을 많이 써서 오프라인 장사만 하면 앞으로 힘들어진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같은 노인들은 온라인은 잘 몰라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고무장갑 끼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고 말했다.

같은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채모(58)씨는 "이달 배달 앱에서 철수했다. 과일은 가격 변동이 심하다. 지난주 수박은 8000원이었는데 지금은 만원이 넘는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아 매일 앱에 접속해 가격을 수정하기 어려워 관리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고충 있지만 변화 불가피" 

폭염과 코로나 4차 대유행이 겹쳐 오프라인 손님이 줄어든 화곡본동시장. 이영근 인턴기자

폭염과 코로나 4차 대유행이 겹쳐 오프라인 손님이 줄어든 화곡본동시장. 이영근 인턴기자

현장에서는 상인들 사이 '디지털 격차'가 있고, 여러 고충이 있지만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서구 신영시장의 이인선 시장육성사업단장은 "비대면 시대 온라인 진출은 피할 수 없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용해 개별 점포와 시장 브랜딩에 힘썼다"면서 "온라인에서 반응이 좋으면 오프라인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상인회에 따르면 신영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온라인에서 30배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플랫폼 사업자는 전통시장 내 '디지털 격차'를 인식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전통시장육성과 관계자는 "전문가들을 시장해 배치해 상인들의 플랫폼 입점과 마케팅, 상품 발굴 등을 돕는 '디지털 매니저' 사업에 올해 예산 24억과 내년 80억원을 배정했다"고 했다.

'네이버 장보기' 운영사인 '우리동네커머스' 관계자는 "상인들에게 직접 찾아가 일대일로 앱 사용법 등을 알려드리고 있다. 다만 전국 100여개 시장을 관리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즉각 대응이 쉽지 않아 매뉴얼이나 영상을 배포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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