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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탈 얼룩진 ‘얼룩빼기’…토종 한우 칡소가 부활했소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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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일제가 앗아간 토종 한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향수(響愁)’ 첫 소절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시 속엔 감춰진 반전이 있습니다. 향수라는 토속적인 내용의 시 속에 외국에서 들여온 젖소(얼룩백이)를 언급한 겁니다.

학자들은 “향수 속의 ‘얼룩백이’는 젖소가 아니고, 토종 한우인 칡소”라고 말합니다. 황갈색 몸에 호랑이처럼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 게 특징인 소 입니다.

동요 ‘송아지’에 나오는 ‘얼룩송아지’ 또한 칡소입니다. 한반도에는 노란색 황우(黃牛) 외에도 칡소와 검은색 흑우(黑牛), 흰색 백우(白牛), 검푸른색 청우(靑牛) 등이 2000년 이상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한우’라고 하면 황우만을 떠올리게 된 걸까요? 칡소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개체수가 급감한 탓입니다. 칡소의 맛을 본 일제가 일본으로 대량 반출해간 게 시작입니다. 이후 칡소는 일제가 한우를 황우로 표준화하는 심사제까지 시행하면서 멸종위기에 몰립니다.

종 복원을 위해 개량중인 토종 한우 칡소. 전국에 3000두가 있다. 전민규 기자

종 복원을 위해 개량중인 토종 한우 칡소. 전국에 3000두가 있다. 전민규 기자

일제 심사제로 씨 마른 칡소…90년대 부활

잊혀져 가던 칡소는 1996년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충북도가 전통 한우인 칡소를 복원하는 사업에 뛰어든 겁니다. 당시 음성군 농가에서 구입한 칡소 2마리로 종축장에서 개체 수를 늘린 결과 전국적으로 3000마리까지 늘어났습니다. 칡소는 지방산을 구성하는 올레인산의 함량이 높아 맛이 고소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개체수가 늘어난 칡소는 또다시 난관에 봉착합니다. 수십 년을 거치며 품종 개량이 이뤄진 황우보다 중량이 덜 나가고, 사육 기간이 긴 단점이 나타난 겁니다. 당연히 칡소 사육 농가에서는 “황우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청주에서 7년째 소를 키워온 최수호(29)씨는 “30개월 된 칡소의 출하 가격은 황우보다 200만 원 정도 낮다”고 했습니다. 최씨는 “아버지에 이어 칡소를 키우고는 있지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다”고도 했습니다.

고심 끝에 충북도는 ‘칡소 우량 송아지 생산’이라는 카드를 꺼내 듭니다. 전통 한우의 종(種) 보존과 농가소득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복안이라고 합니다. 우수 형질의 칡소와 암컷 황우를 교배하는 방식을 통해 우량 개체를 생산하려는 게 목표 입니다. 한마디로 기존 칡소보다 몸집이 더 크고 질병에 강한 우수 종을 늘리겠다는 것이지요.

토종 한우인 칡소. 중앙포토

토종 한우인 칡소. 중앙포토

칡소, 우량 송아지 10마리 출산 눈앞

고난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온 칡소들에게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내수읍 축산시험장 내 암컷 황우 10마리가 오는 10월께 개량된 칡소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입니다. 지난해 12월 경북에서 가져온 우량 칡소 정액을 황우 난자와 인공수정 시키는 데 성공한 효과입니다.

시험소 측은 이후 태어날 송아지 중 암컷을 다시 칡소(씨수소)와 재교배하는 방식으로 2025년까지 개량된 우수 칡소를 증식할 계획입니다. 확률상으로는 둘의 장점을 가진 우량 송아지가 나올 확률이 50%, 황우와 칡소가 나올 확률이 각각 25% 정도라고 합니다. 모쪼록 종 개량에 성공해서 일제가 앗아간 칡소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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