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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사이트 '北코너' 따로 있다…제재 구멍 헤집는 北외화벌이

중앙일보

입력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집체 노동을 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강동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집체 노동을 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강동완]

2019년 12월 22일.

북한 노동자 러 건설현장서 인기 #양질의 노동력 싸게 이용 가능해 #코로나19로 약 500명 남아 있어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제2397호에 따라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이 고국으로 귀환해야 하는 시한이었다.

철수 시한을 앞두고 일각에선 일부 노동자들이 편법을 동원해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변수가 생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북한 당국이 지난해 1월 말부터 국경을 걸어 잠갔다.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에게도 단속을 강화했다.

지난 2월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이 철길 수레를 직접 밀고 국경을 넘어온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꿈에 그리던 가족과 상봉을 앞두고 러시아 극동에 발이 묶인 북한 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 극동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외화벌이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 한켠에 자리한 '스파소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공사를 하는 북한 노동자의 모습. 안전장구 없이 가설 파이프에 오른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사진 강동완]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 한켠에 자리한 '스파소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공사를 하는 북한 노동자의 모습. 안전장구 없이 가설 파이프에 오른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사진 강동완]

WP에 따르면 블라디보스토크의 유명 광고 사이트에는 주택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를 위한 채용 정보만 다루는 코너가 별도로 운영될 정도다.

러시아 건설현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은 인기가 좋다. 양질의 노동력을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러시아판 생활정보지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에 구직광고까지 내는 등 공개활동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북한 노동자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를 속도에서 찾는다. 강 교수는 "북한 노동자들이 인기 좋은 이유는 작업 속도 때문"이라며 "현지에서는 작업 완성을 기준으로 돈을 지급(도급제)하기 때문에 공사 기간을 단축하면 그만큼 서로에게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광고를 통해 WP와 연결된 한 북한 노동자는 인터뷰에서 "수년간 러시아에서 일해 왔다"며 "소득의 절반가량을 정권에 상납하지만, 북한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납하는 금액은 정해져 있다"면서 "돈을 많이 벌면 수익을 많이 남길 수 있고, 적게 벌면 적은 돈만 가져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주택 리모델링 작업을 하는 북한 근로자의 모습. [사진 강동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주택 리모델링 작업을 하는 북한 근로자의 모습. [사진 강동완]

바쁘게 움직여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인데, 한국인과 마찬가지인 역동성과 '빨리빨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천리마 운동'과 같은 속도전을 경험해서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북한에서 해외노동자로 나가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의 허가를 받고, 출신 성분 등을 고려하는 등 일종의 선발절차를 가진다. 이 과정에서 뇌물까지 오간다. 선발되면 당국을 위한 외화벌이 일꾼이라는 명분과 함께 개인적 실리를 취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파견된 근로자는 대부분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합숙하며 집채 노동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언어와 기술이 숙련된 노동자의 경우에는 개인이나 2~3명 정도의 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일감을 찾아 돈을 벌면 일정 금액을 상납하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강동완 교수는 "이런 노동자를 '청부 나간다'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낡은 집 리모델링’인데, 그들 사이에선 러시아어 철자 그대로 읽어 레몬트(ремо́нт)로 부른단다. 강 교수는 "청부를 나가려면 관리직 간부와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며 "만약 노동자가 도망가면 관리자가 엄중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신뢰 형성과 함께 별도의 뇌물을 바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블라디보스토크 대표 관광지인 아르바트거리에 위치한 '해적커피'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 강동완]

블라디보스토크 대표 관광지인 아르바트거리에 위치한 '해적커피'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 강동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전까지 북한 당국은 중국 5만 명과 러시아 3만 명을 포함해 약 10만 명의 노동자를 해외로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매년 벌어들인 수입은 약 5억 달러(약 575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20일(현지시간)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러시아에 남아있는 노동자는 약 500명이라고 밝혔다. 대사관은 러시아 국영 통신 리아노보스티에 "2020년 1월 말부터 현재까지 외국인은 물론 자국인들에게도 국경이 폐쇄돼 있다"며 "북한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방법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WP가 지적한 북한 노동자의 외화벌이와 관련해 대사관은 "남아있는 노동자들에게 노동 활동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이들이 불법으로 노동 활동을 했을 수 있다"며 "이런 사례는 아주 적으며 북한 체제에 기여할 정도의 외화벌이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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