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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염전노예 낙인' 7년…신안 "장애인 불법고용 금지" 초강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장애인 불법고용시 염전 허가 취소·고발” 왜?

지난달 28일 전남 신안군청에서 열린 간부회의장. 박우량 군수가 “신안군 관내에서 장애인 불법고용이 적발되면 염전 등의 허가를 취소하고, 고발 조치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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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군수는 “염전·새우 양식장에서 장애인을 불법고용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이 원해도 못하게 해야 한다”며 “신안군에서 장애인을 고용한 것 자체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4년 신안에서 발생한 염전노예 사건의 여파가 7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여전한 것을 두고 한 발언이다. 다른 곳과는 달리 신안군의 지자체장이 ‘장애인 불법고용 금지’ 지시를 내린 것을 놓고도 논란 대신 “나름의 고육지책”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박 군수의 지시에 따라 신안군은 관내 염전과 새우 양식장 등의 장애인 불법고용 실태에 대한 특별조사를 벌이고 있다.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인부들이 천일염 생산 작업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인부들이 천일염 생산 작업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신안의 낙인으로 남은 염전노예 사건

염전노예란 2014년 신안의 한 염전에서 노예처럼 강제노역을 하던 장애인들이 극적으로 구출된 사건이다. 당시 장애인을 고용한 악덕 업주들이 제대로 된 식사나 잠자리, 임금도 제공하지 않은 채 감금 및 폭행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 공분을 샀다. 염전에 감금된 장애인들은 “탈출도 시도했지만, 매번 발목이 잡혀 매질을 당했다”는 진술도 했다.

당시 구출된 장애인 피해자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유인했다. 3개월만 일하라고 속인 후 섬에 팔아넘겼다”고 적혔다.

또 염전노예 피해자 중 한 명인 A씨는 2018년 10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 나와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법정에서 “노동청에 일한 노임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첫 번째 찾아갔을 때는 조사를 해주지 않았고 두 번째 조사 때에는 ‘갑갑하다’며 그냥 가라고 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2017년 9월 8일 서울중앙지법이 A씨 등 염전노예 피해자 8명이 국가와 전남 신안군·완도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박모씨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3천만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뒤 김재왕 변호사(왼쪽 셋째)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17년 9월 8일 서울중앙지법이 A씨 등 염전노예 피해자 8명이 국가와 전남 신안군·완도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박모씨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3천만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뒤 김재왕 변호사(왼쪽 셋째)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염전노예 알고도 외면한 기관들…경찰 사과

A씨 법률대리인은 "처음에는 노동청에서 고용주가 '먹이고 입혀줬는데 무슨 소리냐'고 주장해 돌려보냈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다"며 "두 번째 조사를 받을 때는 맞았던 기억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신다"고 설명했다.

이후 A씨는 "약 15년간 염전 일을 하면서 힘들어서 도망치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동네 사람들과 연락한 뒤 자동차를 타고 따라온 염전 주인에게 붙잡혀 나가지 못했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또 "주인이 돈이 없다며 노임을 못 준다고 했고, 경찰에 신고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며 "주위 염전에도 돈을 못 받는 처지인 사람이 많고, 약을 먹고 자살하려 한 이도 있다"는 등의 증언을 했다.

지난 21일 전남 신안군 천사대교 앞에 숫자 '1004'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1일 전남 신안군 천사대교 앞에 숫자 '1004'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신안주민들 “지역 차별과 혐오에 고통”

경찰이 “염전노예 실태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후 전남지방경찰청은 2019년 국정감사에서 “지역 경찰들이 염전 상황을 일부 알았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주민들은 “염전노예 사건 후 무분별한 지역 차별과 혐오에 고통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신안지역 한 천일염 생산업자는 “염전 노예의 섬 신안에서 만든 소금이라는 오명은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며 “신안에서 천일염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끝내는 차원에서라도 신안군의 이번 방침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에 신안군은 염전노예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펴고 있다. 천사섬이란 ‘이름 마케팅’과 퍼플 섬이란 ‘컬러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지난 21일 보랏빛으로 물든 전남 신안군 반월·박지도.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1일 보랏빛으로 물든 전남 신안군 반월·박지도. 프리랜서 장정필

1004섬으로 불리길 바라는 신안 

천사섬이란 이름은 신안군이 관내에 유인도와 무인도가 1004개가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주력하고 있는 마케팅이다. 2019년 신안군 압해읍과 암태도를 사이에 둔 ‘천사대교’가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7.22㎞의 바다를 이으면서 펼쳐지는 풍광이 매력적인 다리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했던 신안군을 자동차로 오갈 수 있게 한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21일 퍼플섬이라는 컬러 마케팅이 추진 중인 전남 신안군 반월·박지도에 설치된 보랏빛 '퍼플교'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1일 퍼플섬이라는 컬러 마케팅이 추진 중인 전남 신안군 반월·박지도에 설치된 보랏빛 '퍼플교'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신안군의 외딴 섬의 풍광이 CNN에 소개된 일도 있었다. 신안군에 따르면 지난 2월 8일 CNN에서 반월·박지도를 “사진작가들의 꿈의 섬”이라고 소개했었다.

반월·박지도는 2007년 보랏빛으로 칠한 ‘퍼플교’를 시작으로 보랏빛 색깔 마케팅을 해왔다. 안좌도에서 반월·박지도로 넘어가는 길목 초입부터 보랏빛 지붕의 집들이 늘어서 있고 섬으로 넘어가는 연륙교도 모두 보라색으로 칠해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난 2월 미국 CNN에 보랏빛 아름다운 섬으로 소개된 전남 신안군 반월·박지도. 사진 전남 신안군

지난 2월 미국 CNN에 보랏빛 아름다운 섬으로 소개된 전남 신안군 반월·박지도. 사진 전남 신안군

외신까지 소개된 컬러 마케팅

미국 폭스뉴스도 “한국의 반월도는 퍼플 섬으로 만든 후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며 소개했었다. 반월·박지도 입장료는 3000원이지만, 관광객이 보라색 옷이나 모자 등을 쓰고 오면 무료다. 현장에서 보라색 우산이나 조끼를 무료로 빌려 입어도 무료이기 때문에 사실상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섬’도 신안군이 내세우는 풍광이다. 지난해 겨울에는 천사섬 분재공원 3㎞에 달하는 2004만 송이의 애기동백숲을 꾸미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외딴 섬인 신안군 지도읍 선도에서 열린 수선화 축제를 보려고 7만30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지난 21일 전남 신안군 암태도 기동삼거리에 설치된 벽화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1일 전남 신안군 암태도 기동삼거리에 설치된 벽화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도·1뮤지엄’과 섬 분양 등 다채

내륙 지자체와 섬을 공유하는 사업도 활발하다. 하의도는 김해시의 섬, 하의도는 평택시의 섬이라고 이름 짓는 형태다. 신안군과 자매결연을 한 전국 12개 시·군 중 김해시와 평택시, 하남시, 영동군, 양평군 등이 신안군과 섬을 공유하고 있다.

섬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만드는 ‘1도 1뮤지엄 사업’도 신안군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14개 읍·면에 24개 미술관 및 박물관을 만들 예정인데 현재까지 1004섬 수석 미술관과 조희룡 미술관 등 12곳이 완공됐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 핀 튤립. 사진 전남 신안군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 핀 튤립. 사진 전남 신안군

“아름다운 섬 본연의 모습에 주목해야”

박정현 한국섬재단 사무총장은 “선정적인 섬 관련 범죄보도 때문에 섬이 차별받고 부정적 인식에 고통받고 있다”며 “염전 노예 등 부정적인 인식이 반복되는 행태는 지양하고 섬의 역할과 긍정적인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군 14개 읍·면에 24개 미술관 및 박물관을 만드는 '1도 1뮤지엄 사업'의 일환인 전남 자은도 뮤지엄 파크.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신안군 14개 읍·면에 24개 미술관 및 박물관을 만드는 '1도 1뮤지엄 사업'의 일환인 전남 자은도 뮤지엄 파크.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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