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없고 과거만 남았다...'한 방' 없었던 올림픽 개막식

중앙일보

입력 2021.07.24 01:28

업데이트 2021.07.24 08:48

넓은 경기장 중앙에서 한 여성이 트레드밀에 올라 달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올림픽을 위한 훈련마저 혼자 해야하는 선수다. 조명이 이동하면 다른 선수가 홀로 실내자전거를 타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로잉머신을 타는 선수가...이곳저곳에서 각자 싸우고 있는 선수들이 빛으로,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23일 밤 도쿄올림픽 개막식 열려
논란 속 문화공연 주제는 '연대'
일본 전통문화, 장인정신 조명
강점인 팝컬처, 기술력 활용 못해

23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각국의 선수단이 입장한 가운데 불꽃이 터지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3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각국의 선수단이 입장한 가운데 불꽃이 터지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3일 밤 일본 도쿄 신주쿠의 국립경기장에서 진행된 도쿄올림픽 개회식은 코로나19시대, 특별한 올림픽을 준비해 온 선수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했다. '감동으로 하나 되다'(United by Emotion)라는 주제 하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연대 의식을 강조하며 네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홀로 연습하는 선수들의 연대를 표현한 도쿄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 [연합뉴스]

홀로 연습하는 선수들의 연대를 표현한 도쿄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 [연합뉴스]

해리포터를 내세운 런던올림픽, 삼바로 거대한 축제를 만들었던 리우올림픽과는 달리 도쿄올림픽의 개막식 공연은 세계적인 위기 상황을 고려한 듯 진지하고 정적으로 꾸며졌다. 개회식 직전 음악감독과 연출자가 사퇴하는 악재가 이어져 공연을 아예 취소해야 한단 목소리도 나왔지만, 일부 내용을 변경해 계획대로 진행했다.

가부키·목공 등 일본 전통문화 전면에

공연에는 회고적 정서가 가득했다, 선수단 입장 전 공연에선 에도 시대 목수들이 나무를 운반할 때 부르던 노래인 '키야리 우타'를 배경음악으로 거대한 목재를 옮기는 장인들의 모습을 댄스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댄서들이 옮겨온 원형의 나무들이 합쳐져 무대 중앙에서 오륜 마크로 재탄생했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가부키 배우 이치가와 에비조가 시바라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가부키 배우 이치가와 에비조가 시바라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나무들은 1964년 도쿄올림픽과 관련이 있다. 당시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자국에서 씨앗을 가져왔고, 이 씨앗들이 올림픽 후 일본 전국으로 흩어져 자라났다. 그 나무들을 활용해 과거 성공한 올림픽과의 '연결'을 강조했다.

성화 등장 직전에는 일본의 유명 가부키 배우인 이치가와 에비조가 재즈 피아니스트 히로미의 반주에 맞춰 무대에 올랐다. 가부키 대표작 중 하나인 '시바라쿠'의 일부 장면을 선보였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 톱가수 미샤가 기미가요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 톱가수 미샤가 기미가요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개회식의 중앙 무대는 후지산과 일본 전통공연인 가부키 무대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가수 미샤가 이 무대에 올라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불렀다. 일장기는 자위대원들이 운반했다. 하얀 후지산을 배경으로 일본 내에서도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논란이 됐던 기미가요가 울려퍼지는 장면에선 과거 일본의 '영광'에 대한 향수가 배어 나왔다.

도라에몽과 키티는 어디로?

리우올림픽 폐막식에서 도라에몽, 키티, 슈퍼마리오 등을 등장시켜 도쿄올림픽을 광고했던 일본은 정작 이번 개막식에선 팝컬처의 상징물들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개막식 공연의 최초 기획안은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요소 등을 적극 활용한 미래지향적인 컨셉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대회가 연기·축소되고 팀 내부 갈등으로 연출라인이 교체되면서 개막식 컨셉도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신 각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세계적으로 히트한 일본 게임인 '드래곤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몬스터 헌터' 등의 주제곡이 오케스트라 연주로 흘러나왔다. 참가 국가들의 피켓은 만화 속 말풍선 모양이었고, 서포터들이 '코스튬플레이' 의상을 입고 선수들을 안내한 것이 전부였다.

이어 비틀스 멤버였던 존 레넌이 1971년 9월 발표한 노래 '이매진'(IMAGINE) 공연이 이어졌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끝까지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이름을 비밀에 붙였다. 화면을 통해 깜짝 등장한 사람은 베냉 국적의 세계적인 가수 안젤리끄 키드조, 미국 가수 존 레전드, 스페인의 알레한드로 산스, 뉴질랜드 가수 키스 어반이었다. 각 대륙의 가수들이 함께 노래한다는 취지였지만, 놀라움이나 충격은 없었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배우들이 올림픽 경기 종목 픽토그램을 표현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배우들이 올림픽 경기 종목 픽토그램을 표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이라이트는 드론쇼?   

관중 없이 진행돼 좀처럼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았던 개회식의 하이라이트는 픽토그램 퍼포먼스와 드론쇼였다. 올림픽 각 종목을 그림화한 픽토그램을 일본 팬터마임 전문가들이 온몸으로 구현해냈다. 각종 소품을 이용한 신선한 연출에 경기장을 메운 선수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드론으로 만든 올림픽 앰블럼이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드론으로 만든 올림픽 앰블럼이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공연 말미에는 1800여대의 드론이 하늘로 올라 경기장 상공에 도쿄올림픽 공식 앰블럼 모양을 구현했다. 드론의 움직임에 따라 앰블럼이 지구본 모양으로 바뀌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지막 성화주자 오사카 나오미가 성화대에 불을 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마지막 성화주자 오사카 나오미가 성화대에 불을 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관심을 모았던 성화의 마지막 봉송 주자는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였다. 꽃이 피듯 열린 성화대에서 힘찬 불길이 치솟으면서 혼란 속 올림픽이 본격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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