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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힘내시라 ‘정은경’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6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너희 종을 분류하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지. 인간은 순수한 포유류가 아니었어.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데 너희 인간들은 그렇지 않아. 한 지역에서 번식하며 자원을 모두 소모해 버리고는 생존을 위해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그런데 이 지구에 너희와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유기체가 하나 더 있어. 그게 뭔지 알아? 바로 바이러스야.”

코로나 둑 무너지면 모두가 공멸 #지금은 방역 현장에 힘 실어줄 때

1999년 SF 장르의 신기원을 연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은 모피어스를 취조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을 바이러스와 동급으로 취급해 화제를 모았던 그의 대사는 당시만 해도 “세기말 분위기니까 가능한 얘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은 골리앗과 다윗의 차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그의 경고를 2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올리는 것은 어느새 현실로 다가온 코로나바이러스 공습과 그에 대처하는 인간 사회의 모습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알파·베타에 이어 델타까지 진화하며 인간 골리앗에게 끊임없이 돌팔매를 던지고 있는 반면, 인간은 막느냐 뚫리느냐를 놓고 절체절명의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서로 불신하고 남 탓만 하며 적전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백신 음모론에 동양인 혐오로까지 번진 서구 사회만 그런 게 아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도 본격 가세하면서 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방역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순간 정쟁의 도구로 변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들이 민란이나 저주 같은 단어를 꺼내는 건 듣기에도 민망하다. 독한 말로 쏘아붙이면 지금 당장은 속 시원하다는 말을 듣겠지만 결국엔 제 살 깎기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난이 단지 정권과 방역 당국만 향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고생하는 수많은 의사·간호사·보조요원들의 가슴에도 똑같이 화살처럼 꽂힌다는 점이다. 둑의 구멍을 막아 고향을 구한 네덜란드 소년처럼 코로나 방역이란 둑을 1년 반 동안 사력을 다해 틀어막고 있는 분들의 사기를 뚝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선풍기 바람조차 뜨겁게 느껴지는 폭염에도 부르튼 손가락을 부여잡고 병마와 씨름하는 분들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차마 할 수 없는 비난이란 점이다.

더욱이 여기서 둑이 무너지면 정권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라 온 나라가 노도처럼 밀려드는 바이러스에 휩쓸리면서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코로나 시대 인간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는 서로 분열하는 것”이란 유발 하라리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올 경우 둑이 무너지는 걸 방조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코로나 성적표에 대한 평가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끝낸 뒤 내려도 늦지 않다. “인간이야말로 지구의 암세포”라는 스미스 요원의 비아냥이 틀렸다는 걸 한 번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지금은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한국의 ‘슈바이처’와 ‘나이팅게일’에게 비난 대신 격려의 말 한마디를 건넬 때다. 35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방호복을 입고 헌신하고 있는 여러분의 노고와 희생을 대다수 국민은 잊지 않고 있다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수많은 ‘정은경’ 여러분 덕분에 우리 사회가 미증유의 코로나 공습에도 이만큼 버티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그러니 힘내시라고. 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고. 훗날 손쉬운 배제보다 어려운 연대를 선택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조금만 더 함께 힘을 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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