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학대에 미쳐버린 연인, 영화·사진·뮤비로 부활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24 00:21

업데이트 2021.07.2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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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호 22면

[영감의 원천] 밀레이의 ‘오필리아’

① 존 에버렛 밀레이의 유화 ‘오필리아’(1852), 런던 테이트 브리튼 소장. [사진 테이트]

① 존 에버렛 밀레이의 유화 ‘오필리아’(1852), 런던 테이트 브리튼 소장. [사진 테이트]

“그 애는 화관을 늘어진 나뭇가지에 걸려고 기어오르다, 심술궂은 가지가 부러져 화관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는구나. 옷이 활짝 펴져서 잠시 인어처럼 물에 떠 있는 동안 그 애는 자신의 곤경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면 본래 물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재처럼, 옛 노래 몇 절을 불렀다더라. 그러나 오래지 않아 물에 젖어 무거워진 옷은 그 가엾은 것을 아름다운 노래에서 진흙탕의 죽음으로 끌어들이고 말았다는구나.”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에 등장
애처로운 듯 기이한 카타르시스
‘라파엘전파’ 밀레이 작품만 인기

사진작가 톰 헌터, 연작으로 재현
영화 ‘멜랑콜리아’엔 치유의 힘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1601)에서 햄릿의 어머니인 덴마크 왕비가 햄릿의 연인이었던 오필리아의 죽음을 알리는 대사다. 오필리아는 순수한 마음으로 햄릿을 사랑했지만, 햄릿은 숙부와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으로 여성 혐오에 빠져 애먼 오필리아를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그러던 햄릿이 실수로 오필리아의 아버지까지 죽이자 오필리아는 그간의 고통이 폭발해 미쳐버렸고, 머리에 꽃을 꽂고 횡설수설 노래를 부르며 다니다가 이렇게 죽음에 이른 것이다.

사실 원작에서 오필리아는 나오는 장면도, 대사도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설교에 순종하고 남친의 폭언에 눈물밖에 흘리지 못하던 가부장제의 모범 규수가 미쳐버린 후 대담한 노래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울분을 드러내고 슬픈 해방구인 죽음으로 전진하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수많은 화가들이 오필리아를 화폭에 담은 이유다. 지난주 개봉한 클레어 맥카시 감독의 영화 ‘오필리아’(2018)처럼 ‘햄릿’을 비틀어 오필리아를 주인공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오필리아는 수초가 우거진 냇물에 꽃을 쥐고 누워 반쯤 떠 있다.(사진4) 수많은 오필리아 그림 중에서 19세기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그림 ‘오필리아’(1852)를 오마주한 것이다.(사진1) 이 영화뿐 아니라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주연의 고전적인 ‘햄릿’ 영화(1948)에서도 오필리아 장면은 밀레이의 그림을 따랐다. 또 ‘햄릿’과 관계없는 ‘멜랑콜리아’(2011) 같은 영화 속 장면(사진3)이나 패션 사진, 국내외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차용했다. 다른 화가들도 오필리아를 그렸는데 왜 유독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유명하고 영화로, 사진으로, 뮤비로, 끊임없이 부활하는 걸까?

젊은 화가·모델의 고생과 열정이 만든 그림  

④ 지난주 국내 개봉한 영화 ‘오필리아’(2018)의 한 장면.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④ 지난주 국내 개봉한 영화 ‘오필리아’(2018)의 한 장면.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일단 밀레이의 그림은 오필리아의 죽음을 묘사한 ‘햄릿’의 시적인 대사를 절묘하게 구현해냈다. 물에 반쯤 떠서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과 살짝 벌린 입, 가볍게 펼친 손은 “자신의 곤경을 모르는 사람처럼” 죽음에 초연한, 아니 오히려 죽음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모습이다. 이승의 온갖 번뇌를 씻어 보내고 “본래 물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재처럼” 태아일 때 양수로 접했던 정다운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사방에 있는 꽃 덤불과 수초가 마치 오필리아를 에워싸고 다정하게 감싸는 듯하다. 싱그러운 냄새와 촉감까지 느껴질 듯한 수풀의 정밀한 묘사 덕분에 오필리아가 느낄 자연의 위로는 화면 너머 관람자들에게까지 전달된다.

이처럼 밀레이의 ‘오필리아’에서 자연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그림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서, 오필리아의 비극을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오필리아 그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심지어 밀레이는 그림을 그릴 때 오필리아부터 그리지 않고 냇물과 수풀부터 그렸다! 당시 불과 20대 초반이었던 밀레이는 다른 젊은 화가들과 함께 반항적인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그룹을 결성한 상태였다. 미술 아카데미에서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전성기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의 화법을 따르는 대신 그 이전의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화법을 본받자는 그룹이었다. 그 특징은 인물은 소박하고 진솔하게, 수풀 등 자연 묘사는 충실한 관찰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밀레이는 1851년 여름, 런던 근교 서리(Surrey)에서 ‘오필리아’의 배경으로 적당한 강둑을 찾아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나절 짜리 사생대회가 아니라 몇 달에 걸쳐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결코 우아하고 한가로운 일이 아니었다. 밀레이는 그림을 그리며 날파리, 동네 주민, 거센 바람 등과 싸워야 했다. 그가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 일부를 보자. “이곳의 파리는 더 근육질이고 사람 살에 달려드는 걸 좋아하지요…게다가 바람이 거세서 물에 처박힐 뻔했어요. 오필리아가 진흙탕의 죽음으로 가라앉을 때 느꼈던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오필리아와는 달리 파리떼에게 먹혀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까지 추가해서 말입니다…살인자에게 교수형 대신 이런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시켜도 되겠어요.” 이런 고생 끝에 밀레이는 마침내 극도로 핍진하고 생명력 넘치는 시냇가 풍경을 그려냈다.

다음엔 주인공 오필리아를 그릴 차례였다. 그는 자신의 런던 스튜디오로 돌아와 모델이 욕조에 담긴 물속에 누워 포즈를 취하게 했다. 모델은 모자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라파엘전파 화가들에게 스카우트되어 뮤즈로 떠오른 19살의 엘리자베스 시달. 밀레이는 빈티지 숍에서 은실 자수가 놓인 옛 드레스를 4파운드에 사서 시달에게 입혔다. 또 겨울이라 욕조 아래에 불 켠 램프를 여럿 놓아 물이 계속 따뜻하도록 했다.

그런데 하루는 램프가 평소보다 일찍 꺼져서 물이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그림에 몰두한 밀레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시달은 얼어 죽을 지경인데도 화가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없이 계속 포즈를 취했다. 모델로서의 직업의식뿐 아니라 시달 자신도 화가 지망생으로서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젊은 화가와 모델의 고생과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이 ‘오필리아’였던 것이다.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속물적인 아버지, 탐욕스러운 왕, 권력과 쾌락의 유혹에 약한 왕비, 냉소적인 남친에 둘러싸인, 홀로 앳된 순수함을 지닌 인물이다. 그 때문에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 그 순수는 더는 상처받지 않는 불멸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극도로 애처로우면서도 기이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래서다. 오필리아를 환영하듯 둘러싼 냇가의 수풀과 수초들이 그 역설적인 치유와 평화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최근 국내 개봉 영화도 밀레이 그림 오마주  

② 톰 헌터의 사진 ‘집으로 가는 길’(2000). [사진 톰 헌터 웹사이트]

② 톰 헌터의 사진 ‘집으로 가는 길’(2000). [사진 톰 헌터 웹사이트]

그렇기 때문에 밀레이의 ‘오필리아’에 영감 받은 후대 작품을 보면 그 비극성과 역설적 평화로움 중 한쪽에 초점을 맞추거나 두 가지를 새로운 맥락에서 섞거나 한다. 후자의 경우로 사진작가 톰 헌터의 ‘해크니’ 연작 중 ‘집으로 가는 길’(사진2)이 있다. ‘해크니’ 연작은 런던 동부의 서민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를 낭만적인 옛 명화에서 따온 구도로 재현해 아이러니를 창출하는 게 특징이다. 그중 ‘집으로 가는 길’은 새벽에 귀가하다 운하에 잘못 빠져 숨진 젊은 여성의 사건을 재현한 것이다. 오필리아와 달리 낭만적이지 못한 현실 배경에 낭만적이지 못한 허무한 죽음. 하지만 그럼에도 오필리아처럼 해탈에 이른 것 같은 익사자의 고요한 얼굴. 이 아이러니가 매력적이지만, 정작 어떤 마음으로 죽었는지 알 길이 없는 고인을 생각하면, 위험성도 느껴지는 작품이다.

③ 영화 ‘멜랑콜리아’(2011)의 한 장면. [사진 iMDb]

③ 영화 ‘멜랑콜리아’(2011)의 한 장면. [사진 iMDb]

대중문화의 경우, 밀레이 ‘오필리아’에서 자연이 주는 힐링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다. 파올로 로베르시 등 여러 유명한 패션 사진작가들이 이 그림을 그런 맥락에서 사진으로 재현했다. 우리가 자꾸 잊곤 하는 사실은, 인간은 자연과 떨어질 수 없고 무엇보다 자연에서 치유의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에서, 자신의 결혼식 날에도 지독한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은, 밀레이의 ‘오필리아’처럼 흐르는 냇물에 몸을 맡기고 수련과 수초 사이로 고요히 흘러가는 환상에 빠진다.(사진3) 물에 유유히 떠내려가듯 온갖 마음의 고통과 부질없는 근심에서 해탈하는 것, 싱그러운 자연의 품에 안겨 치유 받는 것, 이러한 것을 현대인이 갈망하는 한 밀레이의 ‘오필리아’의 인기와 재창조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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