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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후폭풍…영 예술인, 유럽 투어공연 힘들어 ‘울상’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2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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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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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놀즈는 “브렉시트로 인해 발생한 추가 비용이 부담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레이놀즈]

레이놀즈는 “브렉시트로 인해 발생한 추가 비용이 부담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레이놀즈]

“정부는 필리스틴(philistine)입니다. 우리는 세계 각국의 정부, 특히 영국 정부가 우리에게 매일 거짓말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가수 엘튼 존은 최근 영국 정부를 필리스틴이라고 부르며 맹렬하게 공격했다. 지난 6월 27일 영국 주간지 ‘옵서버’와의 인터뷰에서다. 여기서 필리스틴은 물질적인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현대에는 속물, 교양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장비 통과 별도 요금에 비자 필요
EU와 결별 탓 비용 훨씬 더 들어
영 화물회사 이용 땐 2곳만 들러야

엘튼 존 “엔터 대책 전혀 없어” 맹공
일부 짐 싸 독일 등 EU국 이주도
기획사·업계 종사자들 모두 피해

엘튼 존이 정부를 비난한 것은 브렉시트(Brexit)로 인해 영국 예술인들이 입는 피해 때문이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브렉시트는 지난 1월 현실이 됐다.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했으며, 4년 반 동안의 전환 기간이 끝난 지난해 12월 31일 밤 정식으로 탈퇴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영국인들이 EU 내에서 90일 이상 체류하려면 별도 비자를 받아야 한다. 상품 무역을 위해서는 과거와 달리 통관·검역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문화 교류 막고 아이디어 교환 제한

영국 정부 비판에 동참한 엘튼 존의 2011년 뉴욕 공연 장면. [AP=연합뉴스]

영국 정부 비판에 동참한 엘튼 존의 2011년 뉴욕 공연 장면. [AP=연합뉴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협상을 서둘러 진행하면서 유럽 순회공연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수많은 예술인과 그들을 지원하는 스태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제 영국 음악인들은 유럽 투어공연을 할 때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각 나라를 지날 때마다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공연을 위한 모든 장비와 물품들은 국경을 지날 때마다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장비 없이는 공연할 수 없기 때문에 비용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영국 화물 회사를 이용하는 데도 제약이 생긴다. 브렉시트 규정에 따르면 영국 화물 회사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유럽 내 2개 지역만 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투어를 떠난 가수가 2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연할 계획이라면 영국 화물 회사를 통해 장비를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엘튼 존이나 에드 시런과 같은 아티스트라면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지만, 덜 유명한 음악인들은 그럴 수 없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수 있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얻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바이올린을 옮기는 비용이 연주로 얻는 수익보다 많다면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그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런 규제는 문화 교류를 차단하고 아이디어와 기술의 교환을 제한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새비지는 브렉시트 비용을 감수하는 대신 독일 이주를 선택했다. [사진 새비지]

새비지는 브렉시트 비용을 감수하는 대신 독일 이주를 선택했다. [사진 새비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조시 새비지(Josh Savage)는 브렉시트 직전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스포티파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을 들었고, 다수의 라디오 방송에서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4개 대륙에서 그가 출연한 쇼가 700회 이상 방영되면서 대형 기획사들이 그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 인생은 이제 막 성공 가도를 달리려는 참이었다. 새비지는 라이브 쇼를 중심으로 경력을 쌓아 왔다. 공연장이나 집에서 소규모 공연을 진행했고, 팬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돌며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다. 6년간의 순회공연을 마친 새비지는 이제 주류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브렉시트가 닥쳤고,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공연에 드는 비용이 너무 늘어났고, 청중들과 만나는 게 어려워졌다. 새비지는 그 비용을 감수하는 대신 독일 이주를 선택했다. 그가 자신의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제 독일 주민이 된 영국인 새비지는 별도의 비용 없이 두 나라 모두에서 공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모든 가족과 친구들은 여전히 영국에 있다. 고국 영국은 이제 그에게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 됐다.

“꿈을 위해 베를린으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큰 시장을 잃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어요.” 그는 영국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걱정한다. “저는 이제 베를린 주민으로서 영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지만, 저의 영국 친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악인들만 브렉시트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공연 투어 기획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연극·뮤지컬 업계 종사자들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무대 뒤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고 있다. 존 레이놀즈(Jon Reynolds)는 라이브 음악 엔지니어로서 대규모 공연 기획사에서 음악 시스템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그가 참여한 작품의 약 3분의 1은 EU 내 여러 나라에서 진행됐다. 가장 최근에 참여한 작품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로 그는 이 작품의 음향 책임자로 일했다.

브렉시트로 인한 피해 갈수록 눈덩이

엘튼 존의 2019년 미국 일리노이주 공연. [AP=연합뉴스]

엘튼 존의 2019년 미국 일리노이주 공연. [AP=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1년 동안 레이놀즈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영향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브렉시트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될지는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대형 유명 공연의 투어가 아닌 작은 규모의 공연 경우엔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이놀즈는 “소규모 공연에서 나오는 수입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고, 브렉시트로 인해 발생한 추가 비용이 부담될 것이다. 추가적인 서류 작업으로 인한 어려움도 있다. 수익을 내기 어려워짐에 따라 공연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놀즈는 이미 이런 문제를 실감하고 있다. 그가 공연 기획을 논의할 때 처음 받는 질문이 바로 “어느 나라의 여권을 갖고 있나”가 된 것이다.

그는 브렉시트 협상 때 정부가 그런 문제점을 알고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전문가와 상의 없이, 관련 산업에 대해 파악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엘튼 존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하며 격분했다. “브렉시트 당시 정부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었다. 음악인, 영화인, 영화감독뿐 아니라 관련 스태프, 댄서들, 그리고 유럽을 돌며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UK뮤직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음악 산업의 규모는 2020년 기준 58억 파운드(약 9조2000억원)에 달한다. 음악은 영국의 위대한 문화 수출품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정치, 그 이상을 의미했다. 비틀스 같은 밴드는 서양의 대중음악을 재정의했으며 일반 시민과 정치인들이 갈 수 없는 곳, 이를테면 ‘철의 장막’ 뒤에서도 공연할 수 있었다. 엘튼 존은 비자 제도가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소련을 여행하면서 공연했다.

음악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국경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투어 공연은 여전히 음악인들의 삶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다. 앨범을 사는 사람이 극소수가 돼 버린 스트리밍과 유튜브 시대에 라이브 공연은 음악인들이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방법의 하나다.

브렉시트로 인한 영향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 때문에 국가 간 교류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정확하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브렉시트로 인한 피해가 명확해질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영국인들의 48.11%가 브렉시트에 반대했고, 그 후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많은 사람도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EU는 유럽이 이뤄 낸 가장 진보적인 경제 실험 중 하나다. 하지만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EU에 속하지 않고 홀로 있는 게 더 낫다는 결정은 영국이 다른 유럽의 모든 나라보다 우위에 있다는 잘못된 생각과 편협함의 결과다. 영국은 이 결정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끊임없이 상기하며 앞으로 10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역: 유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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