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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준다면 감옥가도 괜찮아?”고교생들에게 물으니 [더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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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10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돈에 대한 표현은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돈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의 대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의 표현이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돈이 너무나 매력적인 세상이다. [사진 maxpixel]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돈이 너무나 매력적인 세상이다. [사진 maxpixel]

사랑은 사람을 눈멀게 하고 우상을 만들고 다른 모든 가치기준을 무의미하게 만들곤 한다. 돈에 대한 사랑도 그런 것일까? 지방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서 ‘청소년 머니 코칭’이라는 강의를 진행했다.

경제나 금융이 아니라 돈에 대한 강의를 2시간 하면서 아이들과 나눈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10억을 준다면 죄를 짓고 감옥에 갈 수 있는가?’ 둘째, ‘다양한 직업이 있는데 왜 그 직업을 선택하려고 하는가?’ 셋째, ‘돈이 많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질문과 답변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10억 원을 준다면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에서 매년 진행하는 조사에 나오는 문항을 질문으로 바꾼 것이다.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이렇게 질문하면서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40% 정도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아마도 들고 싶지만 귀찮아서 손을 들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을 것 같다.

2019년에 발표된 흥사단 조사 결과는 초등학생 23%, 중학생 42%, 고등학생 57%가 이 문항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돈이 아이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문항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이들이 죄의 무서움이나 전과자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돈의 힘과 매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 이끌어가는 사회를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무법천지가 이 땅 위에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돈에 서서히 물들어졌다. 가끔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 이끌어갈 사회를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사진 flickr]

아이들은 돈에 서서히 물들어졌다. 가끔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 이끌어갈 사회를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사진 flickr]

두 번째 질문은 ‘왜 그 직업을 가지고 싶냐?’ 라는 질문이다. 변화가 심했던 우리 역사에서 인기 직업의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장교, 택시운전사, 트로트가수, 증권맨, 프로그래머, 공인회계사 등으로 변해왔다. 지금은 부모는 공무원, 교사, 의사를 선호하고 자녀들은 운동선수, 요리사, 크리에이터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온다.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왜 그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물었을 때 아이들의 답은 무엇일까?

‘돈 잘 벌잖아요!’가 그 답이었다. 돈을 잘 벌기 때문에 그 직업을 선택하고 돈을 잘 벌기 때문에 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공부를 한다. 그 직업이 의사이든, 판사이든, 교사이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찾아보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찾아보라.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일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몰입하게 되고 몰입하면 성과를 만들어 내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면 당신의 삶은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다.”

학생들과 나누려고 준비한 멋진 문구는 너무 공허하고 진부하고 재미없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돈이 모든 선택과 가치의 기준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일의 의미’와 ‘행복한 노동’의 의미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세 번째 질문, “돈 많으면 뭐할 거야?”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맨 앞에 앉아 있던 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투자 하려고요. 일단 월세 받게 건물 하나 사고, 대박 날 주식에도 좀 투자하고 싶은데요.” 그래서 또 이렇게 물었다. “돈은 이미 있는데, 왜 또 부동산을 사고 주식을 사?” “돈 많으면 좋잖아요. 돈이 자꾸 불어나야 하니까 계속 투자해야죠.”

또다시 질문 “그러니까 그렇게 불어난 돈으로 뭘 할 거냐고?” “자꾸 불려야죠~”

이 친구는 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계속 대답했다. 나는 몇 번 더 “그러니까 그 돈으로 뭐 할 거냐고?”라는 질문을 했다. 그 친구는 돈을 가지고 할 것이 없었다. 그냥 돈이 많으면 되는 거였으니까!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우리의 생각, 우리의 감정이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사진 quoteinspector]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우리의 생각, 우리의 감정이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사진 quoteinspector]

아이들의 대답은 ‘돈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도 할 수 있다는 것, 돈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된다는 것, 그리고 돈이 수단이 아니라 돈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돈은 그렇게 맹목적인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 시대 우상이 되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가 되었다.

풍덩 빠지는 사랑이 있고 서서히 물들어가는 사랑이 있다. 풍덩 빠지는 사랑은 ‘어이쿠’ 놀라면서 정신 차리고 빠져나올 수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사랑에 빠졌음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서서히 물들어가는 사랑은 헤어나기 힘들다. 나도 모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색으로 물들어버린 사랑은 그 색깔을 지워버리기 힘들다.

지금 이 시대의 ‘돈’에 대한 사랑은 풍덩 사랑이 아니라 물들어버린 사랑이다.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시대는 돈 때문에 점점 아픈 시대가 되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돈이 악의 뿌리’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라는 것이다.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우리의 생각, 우리의 감정이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모든 사랑의 대상이 그렇지만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면 또 다른 세상이 거기에 있고, 눈을 돌리면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또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맹목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돈에 물든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질문을 해 보자. 진지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돈이 많으면 뭐할 건데?”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 나가면서 우리는 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악의 뿌리가 아니라 좋은 도구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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