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초여름의 제주도…선탠과 서핑 즐기는 청춘 남녀들

중앙일보

입력 2021.07.23 13:00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20)  

봄에 싹을 틔워 꽃을 피우면 여름은 식물을 성장시켜 가을의 결실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초여름 꽃은 봄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제주도는 다르다. 육지보다 빠른 시기에 수국과 해바라기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실외에서 선인장 꽃을 볼 수 있다.

제주시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구좌읍 하도리에 ‘문주란로’가 있다. 도로변에는 문주란이 드문드문 꽃을 피웠다. 잡힐 듯이 눈앞에 보이는 작은 토끼섬은 우리나라에서 문주란이 자생적으로 밀집되어 자라는 유일한 곳이기에 주변 길을 ‘문주란로’라고 한다. 썰물 때는 걸어서도 건널 수 있는 곳이건만 물이 들어오는 시각이라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토끼섬에는 바람이 많고 기온이 낮아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데다, 천연기념물이 자생하는 곳이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뿜으며 온 섬을 하얗게 뒤덮은 문주란을 생각하며 부푼 가슴을 안고 달려왔는데 너무나 안타깝다.

문주란로 길가에 피기 시작하는 문주란. [사진 조남대]

문주란로 길가에 피기 시작하는 문주란. [사진 조남대]

종달리 길가에 핀 수국.

종달리 길가에 핀 수국.

아쉬움을 달래며 동쪽으로 해안도로를 조금 더 달려 종달리 해변에 다다르자 만발한 수국이 우리를 반긴다. 도로를 따라 1.5km에 걸쳐 핀 수국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자주와 연보라와 흰색이 어우러져 솜사탕처럼 풍성하게 핀 수국은 도로 양쪽에서 두 팔을 벌리고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햇살을 잘 받는 해안가라 이미 절정을 조금 지난 느낌이다.

지나가던 관광객은 길거리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신비로운 색깔의 수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보석 같은 느낌을 준다. 자동차도 쉬엄쉬엄 달린다. 도로변뿐 아니라 골목길 곳곳과 게스트하우스 돌담에도 수국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종달리 게스트하우스 담벼락에 핀 수국.

종달리 게스트하우스 담벼락에 핀 수국.

상효원에 핀 싱싱하고 아름다운 수국.

상효원에 핀 싱싱하고 아름다운 수국.

제주도에서 수국을 볼 수 있는 곳은 여럿 있다. 좀 더 싱싱한 수국을 보기 위해 한라산 중턱에 있는 상효원으로 달렸다. 종달리보다 생기 넘치고 풍성한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멋진 수국에 흠뻑 빠져 사진 촬영하다 상효원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구상나무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며 여유를 만끽한다. 적절한 피곤 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은 피로를 멀리 날려 보낸다.

해바라기 꽃도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이맘때 제주에서 제일 먼저 볼 수 있다. 제주에서 번영로를 따라 조천 쪽으로 달리다 보면 김경숙 해바라기농장이 보인다. 1만 평이나 되는 넓은 농원에 순차적으로 식재를 해 3월 말부터 12월까지 해바라기 꽃을 볼 수 있단다. 굵직한 줄기에 한 아름은 될 것 같은 커다란 해바라기 꽃이 가슴을 뛰게 한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 꿀벌은 꽃을 찾아 윙윙거리고, 잎에는 노란 꽃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다. 꽃말이 사랑, 기다림, 일편단심이라 그런지 연인들은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김경숙 해바라기농장에 활짝 핀 해바라기.

김경숙 해바라기농장에 활짝 핀 해바라기.

주인 부부는 10여 년 전 국내 해바라기 시장이 비어 있는 것을 알고 농사도 모른 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수많은 고생을 하며 농장을 일구었다. 지난해부터는 또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단다. 해바라기 씨를 원료로 아이스크림, 초콜릿, 기름, 육포까지 생산하고 있다. 초보 해바라기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작목지도도 하고, 종자도 보급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시련 끝에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것 같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7월에는 해바라기가 만발한 농장에서 처음으로 작은 음악회를 계획하고 있단다. 입장권을 구입하면 주는 쿠폰으로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며 느긋하게 관람할 수도 있고, 제품을 사면 할인해 주기도 한다. 제주도를 찾아온 관광객에게 풍성하고 멋진 해바라기를 구경시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에게 하루빨리 좋은 소식이 함께하기를 빌어본다.

노랗게 핀 선인장 꽃.

노랗게 핀 선인장 꽃.

제주 서쪽 한림읍 월령리에 가면 주변에 온통 노랗게 핀 선인장 꽃을 볼 수 있다. 척박한 해안가 돌 틈이나 담벼락과 밭에도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천연기념물 429호 지정된 월령 선인장 군락지는 멕시코에서 해류를 타고 밀려와 기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줄기의 형태가 손바닥과 닮아 손바닥 선인장으로 불린다.

선인장의 파란 열매가 노란 꽃을 피웠다가 지면 11월경에는 보라색으로 익는다. 이 열매가 백년초다. 백년초는 식이섬유와 무기질이 풍부하여 소화기 질환과 변비에도 좋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약용뿐 아니라 술과 꿀을 얻기도 하고, 가시가 있어 뱀과 쥐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담 옆에 심기도 한단다. 가시로 온통 뒤덮인 겉보기와 다르게 참 유용하게 쓰이는 것 같아 대견했다. 사람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식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선인장의 자주색 열매인 백년초로 만든 주스.

선인장의 자주색 열매인 백년초로 만든 주스.

해안가에는 데크로 잘 만들어진 산책로가 있어 편안하게 걸으며 바다와 어우러진 선인장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샛노란 선인장 꽃이 활짝 핀 해변과 바닷가 멀리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모습은 누가 봐도 이국적인 멋진 한 폭의 풍경화다. 걷다가 힘들어 해안가 카페 야외 벤치에 앉아 달콤한 백년초 주스를 마시며 여유를 가져 본다. 카페 앞 조그만 모래사장에는 청춘남녀들이 해수욕이나 선탠과 서핑을 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조금만 더 젊었다면 옷을 훌훌 벗고 시원한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갔으면 좋으련만 부러운 눈길로 싱싱한 젊음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초여름의 제주도는 조금 덥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시원한 바람과 볼 만한 꽃이 있어 즐겁게 해 준다. 풍성하고 수수하게 핀 수국은 어머니 가슴에 안기는 것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커다란 얼굴로 태양처럼 밝게 웃는 해바라기에서는 농장주인 부부의 밝은 희망을 볼 수 있어 덩달아 행복했다. 저 멀리 멕시코에서 건너와 세찬 해풍을 견디고 꿋꿋이 피어있는 조그맣고 노오란 선인장 꽃에서는 어떤 고난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의 참모습을 볼 수 있어 흐뭇했다. 푸근한 가슴에 안겨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면서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는 인내를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 제주도로 날아가 보자. 환상의 섬 제주도가 두 팔 벌려 반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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