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혜명의 파시오네

둔감하고 모욕적인 문화적 고정관념

중앙일보

입력 2021.07.23 00:28

업데이트 2021.07.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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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명 성악가

강혜명 성악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펼쳤던 핀커스 주커만이 지난달 줄리아드 음악대학에서 진행되었던 마스터 클래스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인의 DNA에는 노래가 없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던 거장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자신의 ‘문화적으로 둔감한 언어’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의 음악적 DNA 분류작업을 단순히 한 개인의 어긋난 인성으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가볍지 않다. 줄리아드 측의 표현처럼 그의 아시아계 음악인들에 대한 둔감하고 모욕적인 문화적 고정관념은 그동안 수차례 반복적으로 표현되었고, 우리는 그의 인종 차별적 발언이 학교 내에서 교수와 학생이라는 구조적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여야 한다. 음악적 표현과 해석 능력은 지극히 연주자 개인의 영역이다. 아무리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해도 그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적을 운운하고 인종을 희화하는 듯한 그런 방식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악기 소리에 음악적 DNA를 묻는 것이란 말인가!

“한국인 DNA에는 노래가 없다”
물의 빚은 핀커스 주커만 발언
음악 표현·해석은 연주자 영역
한국 음악가 저력·노력 인정해야

클래식계의 유리천장

파시오네 7/23

파시오네 7/23

‘한국인 소프라노는 프로방스 지역의 여자보다 나비부인에 더 가까워 보였으나 우리에게 섬세한 느낌과 정확한 테크닉의 ‘미레유(Mireille)’역을 선사하였다.’ 이 내용은 2009년 프랑스 마르세유 오페라 극장에서 필자가 타이틀 역을 맡아 공연했던 오페라 ‘미레유’에 대한 르 피가로의 기사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미스트랄(F.Mistral)의 노벨문학상 수상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바스티유 등 프랑스의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구노(Gounod)의 오페라 ‘미레유’를 공연하였는데 그중 유일한 동양인 성악가로서 필자가 타이틀 역을 맡아 공연했던 마르세유 오페라 극장의 프로덕션은 원작자 미스트랄의 고향이자 소설의 배경이 되는 프로방스 지역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으로서 현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프랑스의 오페라 작품 중 소프라노 배역으로는 가장 어렵다는 미레유 역의 성공적인 데뷔는 이후 유럽 활동에 있어 긍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었지만, 당시 필자의 머릿속은 ‘나비부인’ 한 단어에 잠식되어 공연의 성공을 즐길 수 없었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했더라면 이렇게 무기력하지는 않았으련만 ‘나비부인에 가까웠으나’라는 한 줄의 기사는 단숨에 필자의 모든 노력의 결과들을 그들의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나비부인의 외모를 가진 소프라노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늘 최고의 기량을 선보여야 하는 이방인(용병)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져 갔다.

동쪽으로 가라

‘Go East, Young Diva. (동쪽으로 가라, 젊은 프리마 돈나여)’ 2010년 12월 뉴욕타임스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오피니언 코너에서 2011년 글로벌 어젠다로 실은 기사의 제목이다. 오페라의 중심이 이탈리아에서 대한민국으로 옮겨지고 오페라를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기사는 곧 현실화된다.

거대 자본으로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는 중국에서 한해 수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필자 또한 중국 상하이 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 적이 있다. 유럽의 오페라를 배우기 위해 한국인을 초청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굳이 BTS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전 세계 음악 콩쿠르와 주요 무대에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는 한국인 음악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몇 년 전 필자와 함께했던 내한공연 기자회견에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성악가들의 높은 기량을 칭찬하며 기회가 허락된다면 그들과 함께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루하루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한국 음악가들의 저력이며, 부정하고 싶더라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결과이다.

세계적인 거장, 주커만의 시간은 어디에 멈춰있는가! 혹시 아직까지 1967년, 음악적 DNA가 있을 수 없는 한국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공동우승을 차지했던, 혹은 우승의 영광을 나눠 가져야만 했던 리벤트리 콩쿠르에 멈춰져 있는가? 그렇다면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음악의 중심은 제법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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