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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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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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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을 앞두고 털끝까지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야 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식사는 일종의 신성한 ‘의식’이다. 지난 1996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쇼트트랙 대회를 앞두고 한국 국가 대표팀엔 특이한 주문이 떨어졌다. 계란 볶음밥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빙판 위에서 찰나를 다투는 선수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감독이 금기 음식을 정했는데, 바나나·미역 같은 미끌미끌하거나 달걀처럼 깨질 수 있는 것이 금지 대상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징크스였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엔 독특한 음식들이 선수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베를린 올림픽(1936년) 마라톤 금메달 영웅, 손기정 선수가 그랬다. 부족한 염분과 단백질 보충을 위해 후배 선수를 훈련시킬 땐 새우젓과 통닭을 고집했다. 같은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가 가장 사랑한 마라톤 보약은 찹쌀떡. 대회 당일엔 꼭 찹쌀떡을 먹어야 했던 남 선수는 급히 구해온 떡 비슷한 것을 먹고 출전했는데, 3위에 그친 게 찹쌀떡을 못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음식은 만국 선수들의 공통 관심사인데, 애틀랜타 올림픽(1996년) 땐 중국 역도 대표 감독이 먹는 문제 때문에 버럭했다. 선수촌 식단에 중국 음식이 아예 빠져있었기 때문. 배짱 좋던 감독은 웃지 못할 말을 언론에 남겼다. “이럴 줄 알고 비장의 무기를 넉넉히 준비했다. 바로 라면이다.”

이번에도 먹는 문제로 시끌시끌했다. 2020 도쿄 올림픽 선수촌 인근에 한국 선수단이 급식 지원센터를 마련하자, 일본 일각에서 “(식자재를 공급하는) 후쿠시마 주민 마음을 짓밟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미국 선수단도 자체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대는 머쓱해졌다.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오늘 밤 열린다. 코로나19로 한해 미뤄졌던 올림픽 성화가 불타오른다. 사상 최초로 이뤄지는 코로나 올림픽이다. 피땀 흘려 대회를 준비한 선수들은 관중의 환호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한다. 감염 우려 때문에 금메달을 따더라도 스스로 메달을 목에 걸어야 하고, 시상식에선 단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하이파이브나 상대 선수와 악수도 할 수가 없다. 게다 ‘중도 취소’ 언급이 나올 만큼 엄중한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세까지 선수들에게 녹록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드라마는 시작됐다. 이미 당신들은 챔피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