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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구 원안위, 원전 안전보다 중요한건 총리의 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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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19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주례회동에서 “이번 주 예비 전력이 최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비 중인 원전의 조기 투입과 수요 관리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화재·일반정비 등 받던 원전 3기 #총리 “조기투입” 발언 뒤 재가동 #원안위 고무줄 안전 기준 논란 #김 총리는 “원자력 기술 포기 안해”

총리 발언 후 원전 조기 투입은 급물살을 탔다. 화재로 고장 정비 중이던 신고리 4호기는 당초 계획대로면 오는 25일까지 정비를 받게 돼 있다. 원안위 승인 일정까지 고려하면 빨라도 7월 말 때쯤 재가동이 예상됐다. 하지만 실제 재가동 승인은 이보다 약 1주일가량 빠른 21일에 이뤄졌다.

원전 정비와 재가동은 독립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소관이다. 원칙적으로 정부를 비롯한 외부 기관 입김이 작용할 수 없다. 정부도 이런 원안위의 독립적 판단과 권한을 강조해왔다. 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 때문에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고, 신규 원전 허가도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였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필요할 때는 정비 중인 원전 투입을 먼저 발표하고 실제 가동도 이뤄지면서, 기준이 자의적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더니 당장 전력난 우려가 커지자 정비 일정을 당기는 등 원전 가동에 ‘고무줄’ 잣대가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 총리의 ‘SOS’를 전후해 재가동에 들어간 원전은 총 3기다. 신월성 1호기는 계획 예방 정비를 마치고 원안위 승인을 받아 18일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원래 6월 말 정비가 끝나는 계획이었지만, 8월 31일로 늦춰졌다가 다시 5주 이상 당겼다. 20일 원안위 재가동 승인을 받은 신고리 4호기도 다음 날부터 외부 전력 공급에 들어갔다. 21일 승인을 받은 월성 3호기는 23일부터 전력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정부가 원전 가동에 관여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6월 김 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원전 사용 승인이 나올 수 있도록 원안위원장에 요청하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안위는 안전 등을 이유로 15개월을 끌어온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를 조건부 승인했다.

그간 정부는 원전이 다른 발전원보다 안전에 민감한 만큼 정비와 가동에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실제 격납 건물 공극이 발견된 한빛 4호기는 2017년 5월부터 4년 넘게, 원자로 헤드 관통관 용접재를 잘못 쓴 한빛 5호기도 지난해 4월부터 1년 넘게 정비 중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학과 교수는 “정비 일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전력 공급 스케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총리는 21일 경북 경주시 감포읍에서 열린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착공식에서 격려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60년 동안 축적한 자랑스러운 원자력 기술을 가져다 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원자력 기술력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자력을 연구하는 연구소에 총리가 들렀다는 것 자체가 원자력 정책에 대한 변화를 시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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