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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나의 록 스피릿을 불태웠던 30년 전 신촌 대학 카페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67)

“Rock’nRoll!” 

글램한 차림의 남성 메탈 밴드 크랙샷의 멤버들이 ‘난 괜찮아(원곡 진주)’를 부르며 무대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TV로 보다가 외친 말이다. 세상에, 얼마 만에 느껴본 락 스피릿인지. 라이브 공연이 어려운 시기라, 가끔 방송을 통해 밴드 뮤직을 들을 기회는 있었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느낌의 무대는 드물었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 주고받는 화려한 속주, 시원하게 지르는 보컬 사운드를 듣고 있자니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몸이 움직였다. 척박한 밴드 뮤직 시장, 게다가 그중에서도 근래 음악 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인 메탈록 밴드를 8년째 꾸려 오고 있다는 팀의 결기와 속살이 펼쳐진 순간이었다.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슈퍼밴드 2'에 출연한 메탈 밴드 크랙샷의 무대를 보며 오랜만에 록스피릿을 느꼈다. [사진 JTBC]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슈퍼밴드 2'에 출연한 메탈 밴드 크랙샷의 무대를 보며 오랜만에 록스피릿을 느꼈다. [사진 JTBC]

사실 밴드 경연 프로그램인 JTBC의 ‘슈퍼밴드2’를 빠뜨리지 않고 보고 있는 이유도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다. 밴드를 해보겠다는 뮤지션들의 에너지와 그들의 합이 만들어낸 음악에 나이가 들어 단단하게 굳어진 마음이 움직이곤 하니 말이다. 크랙샷의 무대가 쥬다스 프리스트와 머틀리 크루를 연상시킨다는 윤종신 심사위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학시절 들었던 록 음악들을 떠올렸다.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한 나의 20대는 록 스피릿이 충만한 시기였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교 앞 록 카페(당시 신촌의 록카페는 춤을 추는 게 우선이 아닌 음악을 듣는 장소였다)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날의 상태에 따라, 혹은 함께 하는 지인이 누구냐에 따라 다른 카페를 찾았는데, 카페마다 틀어주는 음악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참 윗 선배들과 움직일 때면 ‘레드 제플린’으로 가 하드록을 들었고, 자리에 앉아 몸을 흔들며 취해보고 싶을 때면 ‘러쉬’로 향했다. 바텐에 앉아 맥주 한 잔 올려놓고 음악에 빠져들고 싶을 때면 ‘우드스탁’이었고, 친구들과 시끌벅적 마시고 싶으면 ‘놀이하는 사람들’이 제격이었다. 아주 친한 친구들과 함께라면 아지트처럼 즐겨 찾던 ‘도어스’의 문을 열었다.

30년 전 들었던 록 음악을 하나씩 소환해 봤다. [사진 Mick Haupt on unsplash]

30년 전 들었던 록 음악을 하나씩 소환해 봤다. [사진 Mick Haupt on unsplash]

카페 주인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신청을 해도 못 듣고 가는 곡도 있었고, 가기만 하면 들을 수 있던 곡도 있었다. 그 모든 곳을 관통하는 음악은 물론 록이었다. 젊음과 저항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사운드!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사운드와 사이키델릭 록, 그리고 포크록 사운드가 만연했던 60~70년대 곡들이다. 사랑과 평화를 꿈꾸는 스토리텔링과 세상의 이면을 쓸쓸하게 때로는 몽환적으로 담은 멜로디는 20대의 젊은 가슴을 제대로 뛰게 하였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록 스피릿은 그런 나에게 일종의 강장제 같은 역할을 했다.

밴드 음악을 즐겨 들었던 것은 물론이다. 록은 모름지기 밴드 아닌가. 밴드의 맴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뿜어내는 아우라가 팀의 분위기가 되고, 그 앙상블이 명곡을 만들어낸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힘이 되어준 밴드 ‘들국화’만 해도 그렇다. 전인권의 탁월한 목소리가 귀에 꽂히는 이유는 베이시스트 최성원의 임팩트 있는 곡과 그걸 받쳐주는 기타(조덕환)와 키보드(허성욱)가 있기 때문이다. 뜻이 맞는 뮤지션이 모여 가사와 멜로디, 리듬과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연출하는 과정, 이를 함께하기에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밴드라고 생각한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스부터 제퍼슨 에어플레인, 도어스, 핑크 플로이드, 퀸, 섹스피스톨스, 니르바나, R.E.M, 오아시스, 니르바나 등 당시에 즐겨 듣던 대부분의 노래가 밴드 음악이었다.

록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다른 곡들에 비해 헤비메탈을 즐겨 듣지는 않았다. 기타와 드럼이 너무 강해 곡 분위기를 압도하고 고음의 샤우팅 보컬이 특징이었던 메탈 사운드가 당시에는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지금은 아니다. 개별 연주자의 움직임과 표정까지 드라마가 되어 느껴지는 건 나이가 주는 미덕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레드제플린(로버트 플랜트)의 ‘Stair way to heaven’, 스키드로우(세바스찬 바흐)가 불렀던 ‘I remember you’, 본 조비의 ‘I’ll be there for you’, 건즈앤로지스(엑셀 로즈) ‘Welcome to the jugle’ 등 메탈 밴드의 몇 곡은 따로 신청해 들을 정도로 좋아했다.(당시 신촌에는 메탈 음악과 메탈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위주로 틀어주는 음악 카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만화책에 등장할 법한 외모의 록커들에게 빠졌던 것도 같다.

연주자와 객석 모두에게 드라마를 선사하는 락앤롤! 그때의 기운을 조금씩 떠올려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사진 Jay Wenningtonon unsplash]

연주자와 객석 모두에게 드라마를 선사하는 락앤롤! 그때의 기운을 조금씩 떠올려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사진 Jay Wenningtonon unsplash]

TV를 통해 들은 노래 한 곡이 30년 전 사운드를 소환해내다니. 한동안은 연주와 합주에 진심인 이 밴드 메이킹 프로그램을 못 떠날 것 같다. 한 곡씩 들으며 젊은 시절 뜨거웠던 가슴을 조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음악을 통한 시간 여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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