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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감염 백악관은 그래도 '노 마스크'…커지는 "다시 쓰자"[영상]

중앙일보

입력

"마스크 관련 지침이요? 특별히 바뀐 것은 없습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남쪽 마당인 사우스론에서 마주친 공보담당 직원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에 한해 백악관 내에서 마스크를 안 써도 되게 한 규정은 그대로"라고 이야기했다.
전날 백악관에선 처음으로 '돌파 감염' 사례가 나왔다. 한 직원이 백신을 맞고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건데, 이튿날 찾아간 백악관의 방역 지침은 특별히 바뀐 게 없었다.

[특파원 르포] #백악관 직원·취재진 거리 두기 없이 활동 #'노 마스크' 바이든, 질문 안 받고 헬기 탑승 #젠 사키 "2000명 오가니 돌파감염 발생 가능" #전문가들 "지금이라도 마스크 규정 되돌려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열리는 타운홀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서 전용 헬기인 마린 원에 오를 예정이었다.
탑승 전 한마디를 듣기 위해 모였던 30여 명의 취재진과 백악관 공보 직원들 모두 마스크 없이 옹기종기 모여 그를 기다렸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과 본관 사이의 팜룸(Palm Room)을 통과해, 야외 연회장으로 쓰이는 로즈가든을 지나 사우스론까지 이르는 동안 마주친 직원들, 특수경호국 요원들 모두 마스크 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열리는 타운홀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헬기 마린 원을 타러 백악관 사우스론으로 향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열리는 타운홀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헬기 마린 원을 타러 백악관 사우스론으로 향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앞서 백악관은 확진 판정을 받은 직원이 최근 바이든 대통령 등 고위급과 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은 특별한 조치 없이 예정된 일정을 그대로 소화했다. 이날도 사우스론에 마스크 없이 나타났지만, 취재진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걸으며 질문도 전혀 받지 않은 채 그대로 마린 원에 올랐다.

젠 사키 "하루 2000명 오가는 백악관, 돌파 감염 나올 수 있어" 

지난 5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백신 접종을 마쳤다면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를 완화해도 좋다는 기준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백악관도 출입 때마다 하던 코로나19 검사를 백신 접종자에 한해 면제하고, 마스크도 없이 다닐 수 있게 했다.
다만 고위 인사를 직접 접촉하는 상근 직원, 근거리에서 취재하는 풀 기자의 경우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백악관의 돌파감염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기자들이 사우스론에 모여 있다. [김필규 특파원]

백악관의 돌파감염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기자들이 사우스론에 모여 있다. [김필규 특파원]

백악관은 CDC 기준에 따라 방역을 해왔으며, 해당 직원의 감염 사실도 이런 시스템 속에서 알게 된 거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백악관의 대응은 계속 논란이 됐다.
신시내티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도 젠 사키 대변인에겐 기자들의 날 선 질문이 쏟아졌다.
"먼저 기사로 나오지 않았어도 백악관이 돌파 감염 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나""지난 4일 백악관에 초청한 1000명과 어제 부른 프로미식축구(NFL) 선수들은 모두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했나" 등을 캐물었다.

사키 대변인은 하루 2000명 정도가 백악관을 오간다며 "통계적으로 볼 때 전국적으로 그러는 것처럼(백악관에서도) 돌파 감염자가 나올 수 있다"면서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지금이라도 마스크 기준, '리셋 버튼' 눌러야"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인 마스크 착용을 백악관이 너무 성급하게 내던졌다는 지적이 전문가 사이에선 잇따라 나왔다.
당초 CDC와 백악관은 백신 접종자에게 실내 마스크 착용 규정을 완화하면 사람들이 앞다퉈 주사를 맞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마스크 없이 적극적으로 실내 행사에 참여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접종자들까지 마스크를 모두 벗어버렸고 이때부터 확진자 수가 치솟았다"고 분석했다. 21일 CDC 기준으로 미국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18세 이상 성인은 59.6%다. 그런데 지난달 25일 악시오스-입소스가 실시한 여론조사(18세 이상 1016명)에서 '외출 시 항상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비율은 26%에 그쳤다.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미접종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다.

CDC의 기대와 달리 이런 조치가 백신 접종의 동기부여가 되지도 못했다.
카이저 가족재단이 한 설문조사에서 미접종자의 85%는 CDC의 새로운 기준이 백신 접종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조지워싱턴대 밀켄 보건대학원의 리나 웬 교수는 WP 칼럼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정상화를 추진한 건 중대한 실수"라며 "지금이라도 '리셋 버튼'을 누르고 새 지침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의원들 "마스크 의무화 규정 폐지할 것"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마스크 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처음 마스크를 씌울 때보다 더 힘들 거란 전망이다.
이미 한 달에 수백만 명이 영화관을 찾고, 수천 명의 관중이 실내 경기장에서 마스크 없이 프로농구(NBA) 결승전을 즐기는 것을 TV로 지켜본 마당에 좀처럼 다시 마스크를 쓰려 하지 않을 거란 이야기다.

미 프로농구(NBA) 결승전이 열린 지난 20일(현지시간) 위스콘신 밀워키 피저브 포럼 앞에 팬들이 모여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프로농구(NBA) 결승전이 열린 지난 20일(현지시간) 위스콘신 밀워키 피저브 포럼 앞에 팬들이 모여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공화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은 이달 초 비행기 등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시민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이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모 브룩스 하원의원(앨라배마)은 지난 19일 "마스크 성분이 폐에 들어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의무화 움직임에 반대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쉽게 '리셋 버튼'을 누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마스크를 쓴다는 것 자체가 취임 이후 가장 공들인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샤드 마바스티 애리조나대(약학) 교수는 "마스크 착용은 자율 시행에 맡겨선 안 됐다"면서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WP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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