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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민심, 환경평가 반려…국토부, 제주 2공항 포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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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2공항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동의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앞에 내걸린 모습. [강갑생 기자]

제주 2공항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동의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앞에 내걸린 모습. [강갑생 기자]

 "반려할 거라고는 예상을 못 한데다 이렇게 빨리 (반려라는) 결과가 나올지도 몰랐습니다."

 전날 환경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한 데 대해 21일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의 고위 관계자는 꽤나 당혹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뉴스분석]

 제주 2공항 사업은 기존 제주공항의 항공기 포화 등을 고려해 2025년까지 서귀포시 성산읍 약 540만㎡ 부지에 5조원을 투입, 3200m 규모의 활주로를 갖춘 공항을 지어 항공교통량을 분산시킨다는 게 골자다

 환경평가서 반려에 국토부 당혹 

 국토부가 재보완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이하 환경평가서)를 환경부에 제출한 건 지난달 11일. 그러니까 한 달 하고 9일 만에 반려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관계자는 "환경부가 보낸 반려 사유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한 뒤 보완이 가능한 문제인지 어떤지를 판단해서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반려 사유로 ▲ 비행안전이 확보되는 조류 및 그 서식지 보호 방안에 대한 검토 미흡 ▲ 항공기 소음 영향 재평가 시 최악 조건 고려 미흡 및 모의 예측 오류 ▲ 다수의 맹꽁이(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 서식 확인에 따른 영향 예측 결과 미제시 ▲ 조사된 숨골에 대한 보전 가치 미제시 등을 꼽았다.

제주 2공항 후보지 주변에서 발견된 철새들. [사진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

제주 2공항 후보지 주변에서 발견된 철새들. [사진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

 박찬용 환경부 환경영향평가과장은 "반려 결정은 종전 사례를 봐도 빠른 건 아니다"며 "국토부가 공항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반려 사유를 해소해서 환경평가서를 작성한 후 다시 협의를 요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흑산도공항처럼 환경에 발목" 우려  

 2년 전 환경평가서를 처음 제출한 이후 세 번의 보완 요청과 두 번의 보완서 제출 절차가 이어졌지만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게다가 공도 다시 국토부로 넘어왔다.

 얼핏 보면 반려사유에 대한 보완책을 수립해서 다시 협의를 요청하면 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 간단치가 않다. 환경 문제는 보완이 쉽지 않은 데다 환경단체 등의 입김도 상당히 거세기 때문이다.

흑산도공항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심의가 보류돼 사업이 사실상 중단돼 있다. [출처 국토교통부]

흑산도공항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심의가 보류돼 사업이 사실상 중단돼 있다. [출처 국토교통부]

 국토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추진하던 흑산도공항 사업도 환경 문제로 발목이 잡혀 전혀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 사업은 주민과 관광객 편의를 위해 1900억원을 들여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흑산도 68만㎡ 부지에 길이 1200m짜리 활주로 1개를 갖춰 50인승 이하 항공기를 운항할 수 있는 소형공항을 짓는 내용이다.

 2013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고 2015년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마칠 때까지는 순조로웠지만 2016년 11월 거의 마지막 단계인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서 철새 보호를 명목으로 보류되면서 여태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

 갈라진 제주 민심이 더 큰 난제   

 이러한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환경부의 지적사항을 국토부가 원만하게 해소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제주도민의 갈라진 민심 탓에 추진이 어려운 제주 2공항에 환경문제까지 겹치면서 자칫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부에서 나온다.

 서울 여의도 국회본관 앞 계단에서 제주 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등 시민환경단체 주최로 제주제2공항백지화 촉구 시민 서명 보고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중앙일보]

서울 여의도 국회본관 앞 계단에서 제주 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등 시민환경단체 주최로 제주제2공항백지화 촉구 시민 서명 보고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중앙일보]

 앞서 지난 2월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2공항 찬반 여론조사에선 건설 반대 의견이 높게 나왔다. 반면 2공항 후보지인 성산읍민 조사에서는 찬성이 더 높았다. 2공항을 둘러싼 제주도 민심이 확연히 갈린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원희룡 제주지사는 "도민과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건설을 추진하겠다. 국토부는 계획대로 공항 건설을 정상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토부가 책임지고 추진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제주도의 쪼개진 민심을 중앙부처인 국토부가 수습하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거란 지적이다. 김병종 한국항공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제주도 내부 문제를 스스로 풀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토부가 이를 해결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업 장기 표류 또는 철회 가능성  

 국토부 내부 의견도 다소 엇갈린다고 한다. 항공 안전을 위해 2공항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지만, 도민 반대가 심한데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공항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제주 2공항을 건설을 촉구하는 주민들. [연합뉴스]

제주 2공항을 건설을 촉구하는 주민들. [연합뉴스]

 실제로 지난해 국토부의 고위 관계자가 "그렇게 반대가 심하면 2공항 사업을 포기하고, 대신 안전을 위해 운항 편수를 적정 수준으로 줄이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사업 추진을 가로막는 난제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제주 2공항의 앞날은 그야말로 안개 속이다. 흑산도공항처럼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거나 자칫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토부와 제주도의 향후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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