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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글로벌 사모펀드는 먹튀? 요즘은 ‘유니콘 보육교사’

중앙일보

입력 2021.07.22 05:01

업데이트 2021.07.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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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는 최근 홍콩의 사모펀드 투자사 에스펙스매니지먼트 등으로부터 2200억 여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사진은 김슬아 컬리 대표. 임현동 기자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는 최근 홍콩의 사모펀드 투자사 에스펙스매니지먼트 등으로부터 2200억 여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사진은 김슬아 컬리 대표. 임현동 기자

‘단기 먹튀’ 아니었나? 글로벌 사모투자 전문회사(Private Equity Fund·PEF)가 한국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의 보육교사로 부상했다. 올해 들어 한국 스타트업에 수천억 원대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대부분이 PE 운용사다. 성장 잠재력은 크지만, 실패 위험도 부담해야하는 스타트업에 PEF가 과감히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이런 흐름의 배경과 미칠 영향이 뭔지, 우려할 점은 없는지 짚었다.

무슨 일이야

글로벌 사모펀드가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잇따랐다. ‘예비 유니콘’ 단계 스타트업이 PEF의 실탄 지원후 유니콘으로, 더 나아가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도약하는 사례도 연이어 나온다.

· 이커머스 마켓컬리(운영사 컬리)는 2254억원의 시리즈 F(6번째) 투자를 유치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컬리의 기존 투자사인 벤처캐피탈(VC) 세콰이어캐피탈·DST글로벌 외에 미국의 헤지펀드 밀레니엄매니지먼트가 참여했다. 홍콩 투자사인 에스펙스매니지먼트는 지난해 컬리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고, 이번 투자에도 참여했다.

· 금융 앱 토스(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달 4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KDB산업은행(1000억원) 외에 미국계 PEF 알키온이 800억원을 투입해 토스 주주가 됐다. 온라인금융투자회사 렌딧도 지난 9일 PEF인 H&Q코리아로부터 504억원을 투자받았다.

· 글로벌 PEF인 칼라일그룹은 카카오모빌리티에 지난 2월 2200억원을, 넉달 뒤 6월엔 TPG컨소시엄과 함께 1400억원을 투자했다. 최근 유니콘에 오른 인공지능(AI) 채팅 솔루션 기업 센드버드는 지난 4월 112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뉴욕 기반의 PEF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가 참여했다. 타이거글로벌은 올 상반기 상장한 로블록스·코인베이스·스포티파이 등 유망주에 투자해 상장후 큰 차익을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도 '실리콘밸리 유니콘을 싹쓸이하는 호랑이'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금융 앱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 6월 4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사진은 이승건 대표. [비바리퍼블리카]

금융 앱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 6월 4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사진은 이승건 대표. [비바리퍼블리카]

이게 무슨 의미야

벤처캐피탈은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모험 자본이다. 적게는 수억 원 정도를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이 중 1개만 성공해도 다른 대다수의 투자 실패를 만회할 수익을 낸다. 육성과 멘토링 등 지원도 한다. 반면, PEF는 성숙 단계에 접어든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주요 주주가 된 후, 기업가치를 올려 추후 되팔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아 수익을 실현하는 편이다. VC는 ‘훗날 잘 될 놈’에, PE는 ‘이미 잘 큰 놈’에 투자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새는 PEF도 아직 적자인 스타트업에 수백억,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 몇 년씩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VC와 PE의 경계가 흐려지는 모양새다.

· 칼라일은 KKR, 블랙스톤과 함께 세계 3대 사모펀드 운영사로 꼽힌다. 2000년 한미은행을, 2014년 ADT캡스 샀다가 각각 2년·4년 만에 팔아 6600억원과 9350억원의 차익을 거둬 국내에도 유명하다. 그런 칼라일이 올 상반기 2회 연속 카카오모빌리티 투자에 참여했다. 카모의 1대 주주는 카카오(지분 63.4%), 칼라일은 카모의 3대 주주(지분율 6.4%)로 지분율 차이가 크다. 그야말로 '투자'를 한 셈.

· 올 하반기 기업공개(IPO) 대어로 꼽히는 크래프톤은 한국 PEF인 IMM인베스트먼트가 2009년부터 투자한 ‘떡잎’이었다. 첫 투자는 10억원 미만이었지만 IMM은 블루홀(크래프톤의 전신)의 야심작(게임 '테라')이 부진했던 2014년에도 35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그 후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게 배틀그라운드(2017년 출시)다. 기업가치가 껑충 뛴 크래프톤에 IMM은 2018년 다시 2000억원을 더 넣었다. IMM은 크래프톤 외에도 배달의민족, 무신사, 위메프, 오늘의집, 스푼라디오, 스타일쉐어 등 유망주에 두루 투자했다.

2021년 투자 유치금액 기준 상위 10개 스타트업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사]

2021년 투자 유치금액 기준 상위 10개 스타트업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사]

왜 그러는 거야?

PEF가 VC처럼 투자하는 이유, 주요 관계자들에게 직접 들어봤다.

① 망설임은 수익률을 낮출 뿐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돈이다. 금융·제조업과 같은 전통 산업과 IT 산업 간의 기대 수익률이 점점 벌어지고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PEF 고위 임원은 “IT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며 "다 클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다른 투자자에게 기회를 빼앗기거나, 몸값(기업가치)이 너무 높아져 지분을 많이 확보할 수 없다”고 했다. 성공할 가능성 높은 스타트업을 초기에 잡아야 하는 만큼, 투자 결정도 빨라졌다. 그는 "대규모 투자는 보통 몇 개월씩 걸리지만, 스타트업 투자는 창업자를 만나고 일주일 만에 결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② 키워야 내 몫도 커지지
과거 PEF는 경영권을 확보한 뒤 구조조정에 돌입, 단기간에 수익성을 개선해 회사를 더 비싼 값에 팔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컬리에 에스펙스매니지머트가, 센드버드에 타이거글로벌메니지먼트가 그랬듯 스타트업에 반복 투자하는 PEF가 늘고 있다. 최근 PEF로부터 500억 투자를 받은 렌딧의 김성준 대표는 “거액을 투자한 사모펀드는 전략적 파트너 역할도 한다"며 "스타트업이 잘 성장하면 PEF이 가져갈 과실도 커진다”고 했다.

③ 소프트뱅크 효과, 알토스 효과
한국 스타트업에 초기부터, 여러 번, 대규모 투자하기. 대명사는 소프트뱅크와 알토스벤처스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 쿠팡 같은 한국 유니콘의 성장에 관심이 높고, 배달의민족·토스·당근마켓·직방 등에 초기 투자해 큰 수익률을 기록한 알토스의 방식에 특히 주목한다”고 했다. 최근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의 동문 웨비나에선 알토스의 한국 스타트업 투자 사례가 발표되기도 했다고.

④ 뱀의 머리를 용의 허리로
마켓컬리, 토스, 카카오모빌리티 같이 글로벌 PEF가 주목한 유니콘은 대부분 국내 시장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러나 기술을 고도화하려면 더 큰 자금이 필요하다. 물류와 데이터 분석에 지속 투자한 쿠팡처럼. 한 벤처투자사 임원은 “버틴다고 혁신이 되지 않는다”며 “더 큰 시장으로 가려면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글로벌 PEF의 투자를 받으면 ‘후광 효과’로 해외 네트워크 확장에도 유리하다. 최근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야놀자에 2조원을 투자하며, 야놀자를 글로벌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최근 투자 유치를 마무리 한 김성준 렌딧 대표는 "최근 PEF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닌 스타트업의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렌딧]

최근 투자 유치를 마무리 한 김성준 렌딧 대표는 "최근 PEF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닌 스타트업의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렌딧]

스타트업, 환영과 우려

스타트업으로선 투자하겠단 돈이 늘어나니, 일단 환영이다. 벤처캐피탈 외에 PEF들과도 투자 협상을 하며, 이전보다 유리한 조건에 더 높은 '몸값'을 인정받는 편이라고. 한 유니콘 스타트업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좀 더 높게 인정받을 수 있고, IPO 이후에도 몇 년간 지분을 유지해 달라는 등 우리가 PE에 조건을 걸기도 한다”고 했다.

IPO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이점으로 꼽힌다. 투자자가 늘었으니,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기존 투자자들의 압박에 떠밀릴 필요 없다는 것.

다만, PEF의 투자러시에도 그늘은 있다. 글로벌 PE는 ‘확실히 될 놈’만 골라 거액을 몰아준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투자자들이 다양한 기업에 분산 투자하기보단, 성장가능성이 큰 몇 곳에 거액을 몰아 넣는 분위기”라고 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살아남을 기업들만 걸러진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외국 자본에 먹힐 수 있지 않으냐’ 우려하지만, “기존 업계와는 좀 다르다”는 게 스타트업계의 중론. 한 스타트업 대표는 “PEF가 점령군처럼 스타트업의 경영권을 교체해서 얻을 실익이 없다”며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고 창업자의 리더십이 중요하기에, 오히려 PEF가 창업자를 돕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PEF의 스타트업 투자열기는 글로벌 트렌드다. 스타트업 전문 해외매체 크런치베이스는 지난 19일 “올해 들어 탄생한 유니콘 기업은 291개로(7월 기준), 지난 1년간의 175개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며 “타이거글로벌 같은 글로벌 PEF가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한 결과”라고 분석 보도했다. 전세계 유동성이 큰 상황에서 PEF가 비상장기업 투자에 뛰어들며 '몸값 인플레이션'이 커졌다는 진단이다. 이를 투자 과열이라며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술 스타트업 투자 열기를 소개하며 “투자 이후 기업의 성과, 산업 규제로 인한 사업 불확실성 등을 제대로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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