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누굴 위한 국가교육위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천인성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24부디렉터(EYE)
천인성 EYE디렉터

천인성 EYE디렉터

거대여당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을 강행 처리한 지 하루 뒤인 지난 2일, 교육부 블로그엔 민트색 바탕에 아기자기한 그림과 글씨가 가득한 카드뉴스가 올랐다. ‘미래교육의 대전환!’이란 거창한 문구로 시작하는 카드뉴스는 이르면 내년 7월 출범할 국가교육위가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과 장기적 비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리 여기지 않는 이들도 꽤 많다. 1일 국회 본회의 통과 당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의원들은 일제히 반대표를 던졌고, 정의당 의원들은 기권했다. 국가교육위를 향한 우려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정치적 입김에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걱정이다. 21명 위원 중 대통령·여당 몫만 합쳐도 10명이기 때문이다. ‘옥상옥’이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자칫하면 국가교육 체제가 국가교육위-교육부-교육청이 권한을 다투는 ‘세 머리의 괴물’이 될 수 있다.

노트북을 열며 7/22

노트북을 열며 7/22

한때 교육부를 출입했고 이젠 중학생 학부모가 된 기자에겐 또 다른 걱정도 든다. 국가교육위가 학생·학부모 같은 ‘교육 수요자’ 대신 ‘교육계’, ‘교육 가족’이라 불리는 ‘교육 공급자’의 이해에 더 충실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뭔 얘기냐고? 사실 국가교육위 설치 논의는 지난 20여년 간 교육계 안팎에서 되풀이됐다. 교육계 인사들로부터 정치권·정부의 간섭을 배제하자는 취지를 들을 때면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듣다 보면 의구심도 생겼다. 그들의 주장이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사·교원단체, ‘전문성을 갖춘’ 학자·교수가 정책 수립을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단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학생·학부모는 한두 번 스쳐 가는 수식어에 그쳤다.

국가교육위법은 학생·청년 위원을 2명 이상, 학부모 위원을 2명 이상 두게 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들과 몇몇 직능 대표를 제외한 다수는 교사·교수 출신일 거다. 참여위원회, 온라인 플랫폼으로 국민과 소통한다는 데 전신인 국가교육회의의 대입 공론화 과정을 비춰보면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다.

국가교육위의 설립 이유로 정부와 여당은 “4차 산업혁명과 인구절벽에 대비한 미래교육 개혁”을 내세웠다. 미래교육을 위한 대수술은 교육과정과 교원 양성제도의 혁신, 대학구조 개혁 등을 전제로 한다. 당연히 기득권을 지키려는 교원단체, 교수사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테다. 국가교육위가 그들을 물리치고 미래세대를 위한 과감한 개혁의 청사진을 입안할 용기가 있을까. 툭 하면 학원보다 먼저 문 닫는 학교, 학비만 들 뿐 취업엔 도움 안 되는 대학, 교원단체에 휘둘리는 교육정책에 국민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1년 뒤에 모습을 드러낼 국가교육위는 누구보다 교육의 수요자, 미래세대와 학부모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