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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도쿄 올림픽이 씁쓸한 후원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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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자랑스러운 올림픽 후원의 기억 

삼성전자와 코카콜라ㆍP&G 등 몇몇 글로벌 기업에서 마케팅을 오래 한 임원들이 공통으로 자랑스레 얘기하는 특별한 경험이 있다. 올림픽과 함께 한 기억이다. 한 달 또는 더 긴 기간 동안 해외 개최지에 머물며 세계 각국 선수, 자원봉사자, 관객들과 뜨겁게 교류하며 브랜드를 알린 얘기를 열변을 토하며 들려준다.

IOCㆍ일본 좌충우돌에 여론 악화 #역대 최고액 후원금 계약하고도 #이미지 추락 걱정하게 된 기업들 #올림픽 마케팅 시대 이제 저무나

삼성전자는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까지 올림픽 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199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올림픽 후원사로서는 가장 높은 등급인 ‘월드와이드 올림픽 파트너(WOP)’ 계약을 체결하고, 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부터 후원했다. WOP는 개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올림픽을 이용해 마케팅할 수 있다. 2028년 LA 올림픽까지 삼성의 메인 스폰서 자격은 유지된다.

23일 개막하는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한 WOP다. 삼성을 포함해 도요타ㆍ코카콜라ㆍ알리바바ㆍ비자 등 14개 글로벌 기업만이 WOP 후원사의 권리를 누린다. 그런 삼성전자지만 이번 올림픽을 대하는 마음은 편치 않아 보인다. 극도의 ‘로우 키(low key)’ 마케팅을 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선수 전원인 1만7000명에게 ‘갤럭시S21 5G 도쿄2020 올림픽 에디션’ 스마트폰을 제공한 것이나, 현지에 가상현실(VR)을 이용한 삼성 갤럭시 도쿄 2020 미디어센터를 운영하는 등의 활동을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도쿄올림픽 한국선수단 기수인 여자 배구대표팀 김연경이 20일 인천공항에서 출국하고 있다. 김 선수가 손목에 찬 것은 다음달 11일 언팩에서 공개될 '갤럭시워치4'다. 김 선수는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갤럭시 브랜드 홍보대사 '팀 갤럭시'의 일원이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한국선수단 기수인 여자 배구대표팀 김연경이 20일 인천공항에서 출국하고 있다. 김 선수가 손목에 찬 것은 다음달 11일 언팩에서 공개될 '갤럭시워치4'다. 김 선수는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갤럭시 브랜드 홍보대사 '팀 갤럭시'의 일원이다. 연합뉴스

톱 후원사 도요타, TV광고 접기로

삼성전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와 함께 WOP 후원사인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아예 올림픽을 주제로 사전 제작한 TV 광고까지 방영하지 않기로 했다. 도요타 홍보총괄 임원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올림픽이 되어가고 있다”고 간담회에서 직격탄을 날리며 취한 유례없는 조치다. 도요타는 2015년 10년 후원 계약에 무려 16억 달러(약 1조8000억원)를 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WOP 자격 말고 이번 올림픽 한번 후원에 약 30억 달러(3조4600억원)의 계약을 맺은 다른 일본 기업들도 울상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약 1억3500만 달러(1600억원) 거금을 내고 ‘올림픽 골드 파트너’가 된 일본 아사히 맥주도 그런 경우다. 2015년 후원 계약을 체결하고 올림픽 로고를 붙인 수퍼 드라이 맥주까지 팔아왔지만, 계획했던 오프라인 마케팅 상당 부분을 하지 않기로 했다. 불행히도 골드 파트너들의 이번 후원 계약 금액은 역대 최고액이었다. 여기에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이들은 계약 연장을 위해 2억 달러의 추가 후원금까지 지난해 내야 했다.

거액의 후원금을 내고도 TV 광고를 포기한 것은 IOC가 보여준 고압적인 태도와 일본 조직위의 코로나19 대처 부족에 여론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미지를 올리려고 거액을 썼는데, 올림픽 로고가 자랑스러운 마케팅 수단이 아닌 부담이 돼 버렸다. NHK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도쿄 시민 22%만 올림픽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국제 여론도 흉흉하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도쿄 올림픽 후원자격을 이용한 사전제작 TV광고를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올림픽 관계자들에게 하는 차량 제공은 그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1일 도쿄 올림픽 경기장 주차장에 정차된 도요타 올림픽 관계자용 차량.[AFP=연합뉴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도쿄 올림픽 후원자격을 이용한 사전제작 TV광고를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올림픽 관계자들에게 하는 차량 제공은 그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1일 도쿄 올림픽 경기장 주차장에 정차된 도요타 올림픽 관계자용 차량.[AFP=연합뉴스]

시작 전에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던 올림픽은 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2016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은 지카 바이러스의 공포와 준비 부족 비판 속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평가받는다. 도쿄 올림픽 후원 기업들은 멋진 올림픽 승부의 한 장면처럼 아직 실낱같은 ‘역전의 기회’가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분위기다.

선수들 투혼이 올림픽 이미지 살릴까 

올림픽의 이미지 추락은 이날만 바라보고 자신을 갈고닦아 온 선수들의 책임이 절대 아니다. 23일 올림픽이 개막한 이후엔 이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 좌절을 극복하고 승리한 선수들의 인간 스토리나, 패배했지만 도전의 과정 자체만으로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면 다시 올림픽 열기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후원 기업들은 울상이지만, IOC와 중계권자인 NBC만 웃고 있다. 마케팅 전문기관 애드에이지 분석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중계에 붙은 미국 TV 광고는 이미 2016년 올림픽보다 20% 늘었다. 장기 계약이 필수인 WOP 후원 금액도 2017년부터 4년간 2억 달러에서 2021년부터 4년간은 3억 달러로 훌쩍 뛰었다.(미 '스포츠프로' 분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거액을 들여 여러 권리를 누리는 올림픽 마케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한다. 선수들의 불꽃 투혼에도 올림픽 열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도쿄 올림픽은 이를 크게 앞당긴 대회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