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지영의 문화난장

무용가 안은미의 코로나 나기

중앙일보

입력 2021.07.22 00:22

업데이트 2021.10.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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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지영 문화팀장

이지영 문화팀장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공연계가 또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면서 공연 무산과 중단이 다반사다. 진행 중인 공연들의 고민도 깊다. 띄어앉기 시스템 속에서 티켓을 다 팔아도 수익률은 형편없고, 또 언제 확진자가 나와 공연이 중단될지 살얼음판이다. 기약없이 계속되는 코로나 시대. 하지만 가만히 앉아 역병의 종식만 기다릴 수는 없는 게 창작자의 운명이다.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지난 1년 반이 그랬다.

잇따른 공연 취소·연기 속
온라인 접목 전략 진화
해외무용수 3D 영상 출연
공연 스케줄 2023년까지

20일 낮 서울 서빙고동의 안은미컴퍼니 연습실을 찾아갔다. 간판도 없는 소박한 연습실이었지만 방역은 엄정했다.

“자가진단부터 하실래요?”

해외 무용수의 3D 영상(왼쪽)을 실제 춤 공연에 결합한 ‘드래곤즈’. [사진 안은미컴퍼니]

해외 무용수의 3D 영상(왼쪽)을 실제 춤 공연에 결합한 ‘드래곤즈’. [사진 안은미컴퍼니]

예술감독 안은미는 키트를 내밀었다. 양쪽 콧속에서 검체를 채취한 면봉을 추출액 튜브에 넣어 휘저은 뒤, 추출액을 판독기에 세 방울 떨어뜨리고 15분 기다리면 결과가 나오는 키트였다. 음성이 확인된 뒤에야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안은미컴퍼니 단원들은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8월 영등포아트홀 공연과 9월 유럽 공연이다. 진짜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한다. 코로나 이후, 공연 취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 돼버렸다. 시작은 지난해 3월 유럽에서였다.

‘북한춤’ 투어 공연을 위해 2월 중순 출국할 때만 해도 이 전염병은 중국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스위스와 벨기에 공연을 마치고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유럽의 상황이 심각해졌고 이후 공연이 미뤄졌다. 하지만 모두들 2주 뒤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프랑스 서부 브레스트의 민박집에서 2주를 기다릴 계획이었는데, 그곳에서 셧다운을 체험했다. 1주를 버티다 귀국을 결정했다.

지난해 계획했던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가능한 공연은 온라인밖에 없었다. 단순히 공연 실황을 온라인으로 송출하는 것 이상의 아이디어는 없을까, 예술가의 상상력이 필요한 때였다.

20일 서울 서빙고동 안은미컴퍼니 연습실에서 만난 안은미 예술감독.

20일 서울 서빙고동 안은미컴퍼니 연습실에서 만난 안은미 예술감독.

안은미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1분 59초’를 온라인과 접목시켰다. 2014년 초연한 ‘1분 59초’는 일반인을 모아 음악·무용·즉흥연기 등의 수업을 진행한 뒤, 이들이 각각 만든 1분 59초짜리 공연을 무대 위에서 펼치는 작품이다.

이 모든 과정을 비대면으로 해야 했다. 참가자들 교육은 석 달 동안 줌을 통해 진행했다. 참가자들이 각자 만든 공연 영상을 모아 90분짜리 작품으로 구성했고, 이를 지난해 8월 유튜브로 공개했다. 온라인의 장점도 있었다. 40팀 선착순 모집으로 모인 참가자들은 미국·영국·브라질·체코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었다. ‘거리두기’ 덕에 거리가 가까워진, 아이러니한 효과였다. 제작비는 서울문화재단 코로나19 피해 긴급예술지원 사업으로 해결했다. 지원 프로그램을 잘 챙기는 일은 코로나 시대 창작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돼있었다.

당초 지난해 9월 발표 예정이었던 신작 ‘드래곤즈’ 제작은 2021년으로 미뤘다. 아시아 5개 지역의 무용수가 함께 만들 작품이었는데, 해외 무용수들이 입국할 수 없어서였다. 대신 인터넷 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게이머가 화상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면 그 움직임을 포착해 게임 속 아바타가 똑같이 춤추는 ‘언틸 다이 땡스 댄스’. 안은미는 “게임 용어부터 배워가며 만들었다. 춤추는 재미와 현실적 교감을 게임 형식 안에 녹여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현재 교육 기능을 더하기 위해 시스템 보완 중이다.

기대했던 2021년이 됐지만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드래곤즈’ 기획을 전면 수정했다. 해외 무용수들을 현지에서 연습시키고 각자 공연 영상을 찍어 보내게 했다. 무용 레슨은 줌으로 했고, 무대·조명 등 촬영 매뉴얼을 일일이 만들어 보냈다.

올 3월 사흘 동안 영등포아트홀에서 오프라인 공연을 한 ‘드래곤즈’의 무대에는 해외 무용수들이 3D 입체영상으로 등장했다. 실제 무대에 오른 한국 무용수들의 춤과 이역만리에서 온 영상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빚어내는 광경은 그 자체로 감탄스러웠고 감동스러웠다. 세계 무용계의 반응도 뜨거웠다. 올 9월 프랑스 파리와 리옹, 룩셈부르크 등의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2023년까지 해외 공연 스케줄이 잡혔다.

1988년 데뷔 이후 줄곧 파격과 도발의 아이콘으로 무용계를 흔들어온 안은미는 코로나발 변화를 혁신의 계기로 삼은 듯했다. 안은미는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온라인의 비중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마당에서 했던 공연이 극장 무대로 들어가지 않았냐”면서 “이제 가상 공간으로 소통 무대가 바뀌었다. 영상으로도 감동이 잘 전달되도록 잘 만들어야 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예술의 힘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미 이겨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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