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신규확진 3309명, 휴일에도 3000명대…위중증 629명

2021-11-29 09:31:28

[더오래]선거운동원이 돌리는 명함, 지지후보 아닌데 받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1.07.21 14:00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43)

취직하고 처음으로 명함을 받던 날, 내 이름이 적힌 명함이 신기하기만 했다. 주책없게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2세 실장처럼 한 손은 주머니에 꽂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명함을 끼워 멋지게 건네는 연습을 해보기도 했는데, 아마도 평생 그렇게 명함을 건넬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렇게나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명함이지만 지금은 정말 하나의 비품으로 느껴진다. 그간 열 번 정도 명함을 바꾼 것 같은데, 승진같이 즐거운 이유도 있었고 부서이동이나 이직과 같이 부담스러운 이유도 있었다.

백화점에 다닐 때 친구들이 종종 사회초년생에게 줄 선물을 물어보고는 했는데, 나는 한결같이 명함 지갑을 사주라고 추천했다. 사실 실용성보다는 신입사원으로서 명함을 처음 받았을 때의 그 마음을 축하해 주기 위한 것이다. 굳이 비싼 브랜드의 지갑이 아니어도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 직장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맛보고 나면 아무래도 명함을 대하는 마음은 설렘보다는 밥벌이 도구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함 지갑도 회사 비품처럼 사용하기 편하고 튼튼한 것이면 충분하다.

명함지갑은 한때 신입사원들에게 주기 좋은 선물 1순위였다. [사진 pxhere]

명함지갑은 한때 신입사원들에게 주기 좋은 선물 1순위였다. [사진 pxhere]

나도 몇 개의 명함 지갑을 선물 받았는데, 지금은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복장 자율화로 재킷을 입고 다니지 않게 되었고, 가방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다 보니 명함 지갑을 가지고 다니기가 번거롭다. 심지어 스마트폰 하나면 다 해결되는 세상이라 지갑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판국에 굳이 명함 지갑까지 챙길 이유가 없다. 외부 미팅이 있을 때만 수첩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신입사원의 내가 본다면 나는 지금 날라리 직장인으로 보일 것이다.

직장생활을 십 년 넘게 하면서 내 명함보다 남의 명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팅하고 나서 받은 명함을 분실하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연락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차치해 두더라도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상대방이 내 명함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그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져 기분 나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명함은 잃어버리더라도 상대방 명함만큼은 명함첩에 소중히 보관해야 한다.

명함첩을 잘 정리하는 것도 업무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Amazon]

명함첩을 잘 정리하는 것도 업무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Amazon]

처음에는 100개짜리 명함첩이었는데 ‘이걸 과연 다 채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새 명함첩을 사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케팅이라는 직군이 외부 사람을 많이 만나기 때문이겠지만, 왠지 열심히 일한 것 같아 뿌듯했다. 점점 용량이 큰 명함첩을 사게 되고, 한 권 두 권 명함첩이 늘어나니 나중에는 보관이 어려워 아예 가나다순으로 보관할 수 있는 명함보관함을 구매했다.

수많은 명함을 보다 보면 그중 눈에 띄는 명함이 있다. 디자인 회사의 경우 화려한 원색에 최소한의 정보만 담은 명함이 많고, 영업담당자 이거나 개인 사업자는 본인의 캐리커처를 넣기도 한다. 가끔은 명함규격을 다르게 해 반으로 접어 더 많은 메시지를 넣은 명함도 있고, 반짝이는 메탈 소재로 코팅된 명함도 있었다. 특이하게 씨앗을 품고 있는 명함도 있었는데, 화분에 꽂으면 꽃이 핀다고 했다. 레고의 임직원은 자신을 닮은 레고 인형에 연락처를 새겨 명함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함은 회사의 아이덴티티가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좋다. [사진 pinterest]

명함은 회사의 아이덴티티가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좋다. [사진 pinterest]

아마도 명함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때는 선거철일 것이다. 특히나 지방선거 때에는 지자체장부터 기초의원까지 다양한 후보의 명함을 색색별로 수집하게 된다. 아무래도 명함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피하려 하다가, 목에 걸고 있는 명찰에 직계비속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본인 아버지의 얼굴이 새겨진 명함을 돌리고 있던 것이다.

선거법상 후보자와 동행하는 선거운동원을 제외하면 직계비속과 직계존속만이 명함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될 수 있으면 명함을 받으려 한다. 종종 본인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명함을 거칠게 거절하거나, 받자마자 쓰레기처럼 바닥에 버리는 사람도 있다. 물론 정치에 대한 염증이나 본인 정치 성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표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다만 나누어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족의 얼굴이 새겨진 명함인데,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마음 아프지 않을까? 사람의 진면목은 명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런 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